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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이 만난 사람 - 김정영

2011.12.01 17:09

조회 수:1583



라일락이 만난 사람

캄보디아 사역자 김정영


  
‘킬링필드’로 잘 알려진 캄보디아는 30년이 넘도록 전쟁과 내전이 끊이지 않았다. 또한 폴 포트가 이끈 크메르루주 정권은 4년의 통치기간 동안 역사상 유례없는 잔인하고 무자비한 대학살을 저질렀다. 이로 인해 캄보디아는 경제가 마비되고 국민들은 심각한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다행히 1991년 평화협정으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토대가 마련되었고, 정치의 새 출발이 가능해졌으며 1999년에는 마지막 남아 있던 크메르루주 세력이 해체되었다.
선교사들이 캄보디아에 들어가기 시작한 1995년은 내란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선교단체와 선교사들은 인구의 과반수인 거리의 아이들과 또 일반 아이들, 여행인을 대상으로 중점적인 사역을 시작하였고, 김정영 선교사가 속한 단체는 12세 미만의 아이들 중 위기 가운데 있는 아이들, 거리에 방황하는 아이들, 국경에서 매매되는 여아들과 어려움 가운데 방치된 고아들을 사역의 대상으로 정했다.
많은 선교사들이 수도인 프놈펜에서 사역을 시작하였지만 김정영선교사는 내란의 스트레스가 많고 여차하면 피난을 가야 하는 수도를 피해 따끄마오를 사역지로 정했다. 따끄마오는 수도에서 10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지대가 낮아 비가 오면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길 정도의 열악한 지역이었지만 집세가 싸고 수도에서 떨어져 있어 내란의 스트레스와 긴장감을 조금 완화할 수 있는 이곳을 선택하여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은 수상의 관저와 고관들의 별장이 들어와 도로와 가로등, 물, 전기가 가장 좋은 지역이 되었다.

Miss A 사역자 김정영
김정영선교사는 캄보디아를 방문하기 전에 동유럽에서 사역을 했다. 김선교사가 장기간 사역할 나라에 내란이 일어나 잠시 기다리는 중 캄보디아에 방문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이 나라에서 계속 사역 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친구인 외국인 선교사가 바이블스쿨에서 교수 사역을 하고 있어서 2주 동안 바이블스쿨을 하게 되었는데, 그러던 중에 동유럽에서 보지 못했던 부분을 캄보디아에서 보게 된 것이다.  
“캄보디아에 가서야 그 나라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 곳에서 첫눈에 들어온 것이 많은 아이들이었습니다. 오랜 전쟁과 내란을 통해서 생겨난 길거리 아이들이 누군가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며 그들을 도와야만 되는 형편이었어요. 그래서 언제 돌아갈지 모르는 동유럽을 막연히 기다리는 것보다는 2년 정도 이 아이들과 여자들을 위해서 작게나마 함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고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1995년에는 인구의 과반수가 15세 미만의 아이들과 여인들이었다. 그때는 캄보디아가 구호, 구제사역을 통해서 선교사역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김선교사는 97, 98년 내란이 종식되고 캄보디아가 급변하고 있는 상황까지 2년 정도 이 아이들과 함께할 것으로 생각하고 시작했다. 그런데 아이들의 사역이라는 것이 2년으로 단정 짓는다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살면서 깨닫게 되었다. 2년만 돌보고 가면 다시 이 아이들이 또 버려짐을 당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자연스럽게 그 이후로부터 2년씩 계속 연장 계약을 하게 된 것이다.
“언젠가는 동유럽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캄보디아에서 장기로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어요. 여름 캠페인으로 간 2개월이 2년이 되었고, 지금까지 사역하고 있는 것을 보면 사람이 계약하는 그 몇 년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짧은 생각이었는가 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김정영 선교사는 싱글 사역자다. 싱글 사역자이기 때문에 가정을 가진 다른 여자 선교사들처럼 섬세하게 배려하지 못할 때도 있다고 말한다. 특히 고아들 사역을 할 때 아이들에게 하라고 하는 것보다 하지 말라고 하는 게 더 많을 때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만 싱글이기 때문에 고아 사역을 하면서 더 많은 시간을 내어 자유롭게 사역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싱글 선교사들은 서로를 격려하기 위해 그들을 A팀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Anytime, Anyway, Any kind work를 할 수 있는 하나님을 향한 A팀인 것이다.

팀 사역 리더로서의 김정영
김정영선교사는 5개국의 선교사 15명과 현지인 30명과 함께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저는 그 분야의 전문인도 아니고 제가 다른 선교사님들보다 좀 더 먼저 왔다는 것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일을 감당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늘 일 때문이 아니라 부족함에서 오는 그런 긴장감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사역마다 한 두 명의 책임선교사들과 4-7명의 현지인이 구분되어 책임을 지고 있는데, 그 사역자들이 김선교사보다 더 구체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함께 생각하고 결정한다고 한다.
15명 중에 4명의 매니저 팀이 있는데 팀 사역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장점들이 많다고 한다. 다양한 국가에서 온 팀들의 장점이 많기 때문에 팀 사역을 권장하고 그렇게 계속 진행될 것을 기대한다. 그렇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국가에서 모였기 때문에 그만큼 다양한 생각을 갖고 있고, 이것을 한 의견으로 일치시키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배 한 척이 다른 길에 들어서면 그 큰 배 전체를 다시 움직여야 하듯이 여러 사람의 생각을 하나로 좁히기는 쉽지 않습니다. 팀 사역은 한 사람의 리더십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팀 선교사님들의 생각을 듣고 자기의 의견도 충분히 이야기해서 의견을 조율해야 하는데, 개인감정이 있을 수 있고 또 본인의 생각이 관철되지 않으면 비협조적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작은 것들이 모여 큰 어려움을 만들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의견이 좁혀지지 않을 때는 2주의 여유를 두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그 후 모여서 또다시 이야기하고 그래도 안 되면 한 달의 시간을 두고 기도한다. 그러다보면 하나님께서 자연스럽게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인도해 주심을 경험한다. 때로는 그들의 생각과 다르게 응답해 주시는 일이 더 많고 그런 과정 가운데 배우는 것이 더 많다는 겸손한 고백을 한다.

하나님께 맡긴 아이들  
김정영선교사가 사역을 하면서 경험한 은혜와 간증은 무궁무진하다.
위기 가운데 있는 아이들을 구조해서 그들에게 꼭 필요한 장소를 놓고 절실하게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 장소를 허락해 주셨고, 급한 재정이 필요할 때에 통장에 꼭 필요한 만큼의 재정이 들어오기도 했다.
“한 번은 치안이 급박한 상황에서 구호물자를 받아 트럭에 양식과 구호물자를 싣고 오다가 강도를 만나 다 빼앗겼어요. 이 아이들이 한 달을 어떻게 살 것인지, 특히 개인 것이 아닌 선교단체의 차량이었는데 어떻게 할 것인지 정말 걱정이 되었어요. 제가 놀러 간 것도 아니고 하나님 일하는 중에, 그것도 밤이 아닌 대낮에 이런 일을 당했다는 것이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사실 그 상황에는 총을 맞지 않고 목숨을 건졌다는 것만도 감사한 일이었지만요. 그런데 그 하나를 잊어버렸지만, 하나님께서는 후에 둘을 주셨어요.”

김선교사가 정말 변화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있었다. 거리에서 동냥하던 아이가 의과대학을 가고 영어통역사로 사회에 배출되었을 때 그런 감동은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밖에 고백할 수 없었다. 김선교사는 오히려 그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들이 더 상처를 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처음에 그 아이로 인해 무력감에 빠졌을 때도 있었지만 고아원의 1기생 아이들이 스타트를 잘 끊어준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잘못으로 교도소에 간 아이들도 그곳에서 하나님을 전하고 고아원에서 기타며 악기 배운 것들을 그 안에서 하고 있다고 오히려 저를 위로하는 편지를 보냈어요. 한 번은 재활센터에서 2년 동안이나 자살소동을 피우던 아이가 재활을 다 마친 후에 이제는 나가서 자신을 힘들게 했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이모 집에 보냈는데 2주 만에 강간을 당해 시체로 발견된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곳에 어느 선교사님이 교회를 세웠다는 말을 듣고 ‘그 아이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구나!’라고 생각했지요.”
한 아이는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 중에서도 정말 열악한 환경에 있었던 아이인데 7개월 전에 수술을 받다가 먼저 천국으로 가게 되었다. 캄보디아의 화장(火葬)문화는 절에서만 치러지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절에서 기독교식으로 장례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 아이의 먼 친척들이 많이 와서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김선교사는 믿는다. 그 아이의 죽음을 통해 후에 친척들에게 복음이 전해졌다는 것을 말이다.
‘정말 그 사람은 안 될 거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데 이것도 아닐 거야’ 하는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해 다양하게 일하시고 가능케 하셨다고 김선교사는 간증한다.
“우리가 인내하지 못했을 뿐이지 하나님은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방법대로 일하셨습니다.”

땅 밟기, 기도의 빛을 비추다
김정영선교사는 특별히 선교지에 오는 팀마다 찬양하고 기도하며 학교 부지를 7번 도는 ‘땅 밟기’ 프로그램에 참여시킨다.
“우리가 7번의 땅 밟기를 하며 마음을 집중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어떠한 상황으로든 자연스럽게 인도하시는 것을 항상 목도하게 됩니다. 기후가 덥기 때문에 한 시간 반씩이나 걸리는 땅 밟기를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기도회 자체를 통해 아이들과 사역팀이 받는 은혜도 참 큽니다. 개인의 기도 응답을 받거나, 다른 사람을 통해 주시는 메시지를 공유하는 때가 참 많습니다.”
이들은 땅 밟기 기도회를 통해 권면하시는 하나님, 위로하고 격려하시는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응답의 간증을 수없이 경험하고 있었다.
“땅 밟기 기도를 통해 느끼게 된 것들이 많습니다. 믿음이 없는 눈으로 바라볼 때는 이 빈 곳을 어떻게 채울까 염려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곳에는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 오는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개인기도뿐 아니라 모든 기도에 응답이 있으며, 하나님이 현장의 주인이신 것과 우리가 그 주인 의식을 가지고 이곳에 있다는 것을 함께 공감하며 피부로 느끼는 역할이 되어주는 것을 깨닫습니다.”
김정영선교사는 캄보디아에 기독교 학교가 세워지기를 위해서도 기도하지만, 그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사람을 변화시키고 만들어 가시는 것을 경험한다. 그래서 기도함으로 받는 각자의 은혜가 있고, 그렇게 기도하는 이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많은 격려와 깨달음, 혹은 책망도 듣게 됨을 고백하고 있다.
“땅 밟기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가 책임의식을 가지고 책임자이신 하나님의 사역 가운데, 그 땅 가운데에 서 있다는 사실과 공감대를 느낄 수 있는 장소입니다. 이것은 저뿐만 아니라 우리 선교사님들의 동일한 생각입니다.”

“처음 선교단체의 훈련을 받을 때 사역의 정책이 믿음사역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힌트도 주지 마라’, ‘기도로 하나님께 올려 드릴 때 여러 손길을 통해 하나님께서 붙여 주신다’는 것을 캄보디아에 오기 전 동유럽에서 사역할 때부터 철저하게 훈련받았습니다. 군인이나 기동대훈련과도 같은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채우심을 경험하였습니다. 그 선교단체에서의 2년간에 걸친 다양한 훈련과 경험이 아니었다면 제가 그 부분을 익히지 못했을 것이고 캄보디아의 열악한 상황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대처했을지 몰랐을 것입니다. 이처럼 선교지의 선교사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채우심의 과정을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김정영 선교사는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요즘 세태에 선교사들이 익숙해져 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것이 모두 유익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분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때때로 하나님이 이해되지 않고 기다림과 간구에 대한 침묵이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지만, 그것이 결코 오래가지 않는다는 믿음과 즐거움으로 때를 기다리는 법을 알아야 한다. 그 안에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기도제목
캄보디아는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유일하게 선교사들이 많이 들어가 있고 아직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상황 가운데 있는 나라이다. 김정영 선교사는 우리나라가 복음으로 복을 받은 것처럼 캄보디아가 하나님의 축복으로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불교가 국교인 캄보디아는 모든 형식과 절차가 불교식이다. 그러므로 오히려 돈이 있는 중산층이 복음을 듣기가 쉽지 않다. 김정영 선교사는 이 중산층을 만나 좋은 교육과 함께 복음을 전하기 위한 통로로 국제학교를 세우고 싶어 한다. 하나님께서 이 문을 어떻게 여시고 인도하실지 기대하며 기도하고 있다.
“95년부터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과 사역들의 시작과 진행, 인도를 해주신 것처럼 앞으로 더 많은 사역자와 기독교 학교사역의 일환으로 이제 시작된 유치원 사역과 초등학교 진학을 위한 기도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착하고 좋은 선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캄보디아에는 지금 사역자들이 많이 들어가 있지만, 더 많은 사역자가 필요하다. 이 사역자들이 캄보디아 전 지역 곳곳에 들어가 사역하며 캄보디아의 변화를 주도하고 주변국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인도차이나 반도에 복음의 전초지역이 되기를 우리가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글/김정영 선교사
김정영 선교사는 한국오엠(OM) 국제선교회 소속 선교사로 동유럽 사역에 이어 캄보디아에서 16년째 사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