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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뻐! 예뻐! 기뻐! - 지은영

2012.02.29 12:17

조회 수:1508



바뻐! 예뻐! 기뻐!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 (빌하이벨스 저)를 읽고



새벽 4시 반, 매일 제자반 인도와 교회 사역을 마치고 밤 11시가 넘어 들어오는 남편을 깨우는 일부터 나의 일상은 시작된다. 피곤에 지친 남편을 위해 따뜻한 홍삼차 한잔을 준비해 주고 집을 나서는 남편을 배웅한다. 그리고 나도 서둘러 씻는 둥 마는 둥, 모자를 푹 눌러 쓰고 교회로 향한다. 새벽기도 자리에 앉아 있지만 이미 내 머릿속에는 오늘 할 일들이 가득하다. 앞에서 인도하시는 목사님의 찬양이나 말씀, 통성기도와는 상관없이 오늘의 ‘나의 일들’을 정리한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6시 30분, 재빨리 밥솥의 취사 버튼을 누르고 큰아들을 깨워 어젯밤 마치지 못한 숙제와 오늘의 준비물을 챙기게 한다. 다시 작은아들을 깨워서 반찬 투정하는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준비물을 챙겨 9시에 스쿨버스에 태워 보낸다. 가족들이 모두 나간 후, 남편을 포함한 세 명의 남자들이 어질러 놓은 것을 치우기 시작하면 이미 점심때가 된다. 밀린 공과금 등을 정리하러 은행에라도 다녀올라치면 어느새 유치원을 끝내고 온 작은아들, 학교에서 돌아온 큰아들과 다시 전쟁을 치를 시간이다. 청소, 뒷정리, 식사 준비… 또 반복되는 삶의 사이클(cycle)에 들어가게 된다.
오늘은 심방이 없어 일찍 들어온다는 남편의 전화에는 가끔 짜증이 나기도 한다. ‘지금 전화하면 어떻게 식사 준비하라는 거야?’, ‘남편은 고기반찬 아니면 안 먹는데…….’ 라는 생각에 다시 마음이 바빠진다. 저녁상을 물리고 아이들과 독서를 하고 나면 밤 10시, 귀가한 남편은 피곤하다는 말과 함께 시원한 물과 과일을 찾는다. 하루 종일 정말 많은 일들을 해내고 몸은 녹초가 된다. 하지만 그뿐이다. 성과 없는 그런 분주함이 이제 나의 일상이 되었다.

‘기도’, ‘하나님의 음성 듣기’, ‘삶 속의 예배’… 이런 것들은 너무 당연한 것이지만, 부끄럽게도 ‘사모’라고 불리는 내게는 어느덧 껍질만 있고 내용이 없는 형식적인 것들의 반복이 되어 버렸다. ‘나에게는 기도할 시간과 여력이 없어.’, ‘하루 종일 아이들과 남편, 사역에 치인 나로서는 기도보다 쉼이 필요해.’ 이것이 내가 기도를 거르는, 또 습관적이고 형식적으로 기도하는 이유였다. 마치 그 어떤 목사님의 말씀처럼 은혜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모, 바로 이것이 나의 모습이었다.  
남편의 서재를 청소하던 중, 예전에 접했던 책의 제목이 눈에 띄었다. 표지 디자인은 바뀌었지만 잊을 수 없는 제목,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 여전히 남편의 어질러진 책상, 널려있는 아이들의 장난감들, 수북이 쌓인 설거지감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나를 보았다. “도대체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어떻게 너무 바쁘기 때문에 기도할 수 있다고 하시는 거지?” 이런 속상하고도 절박한 질문이 나를 이 책으로 이끌었다.

기도하지 않는 이유 - “난 너무 바쁘다”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우리가 바쁘기 때문에 기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바빠졌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삶에 있어서 기도만 빼고 모든 일을 한다. 다른 친구들에게 기도 부탁을 하기도 하고 단호함이나 굴복 내지는 자기 부인이나 적극적 사고방식 등을 실천하기도 하며, 또 기도의 능력에 대해서 되새김질해 보기도 하지만 사실 기도는 하지 않는다. 기도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우리의 삶은 점점 더 바쁘고 분주해져 간다. 하지만 그 열매는 찾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 속에 있는 불가능한 상황을 변화시키기 원하시며 우리가 하나님께 얼마나 소중한 존재들인지 말씀하신다. 또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우리의 요청을 들어주시기 원하며, 우리를 이끌어가기 원하신다. 우리의 고집과 정욕이 삶을 바쁘게 만들 수는 있지만 열매 맺게 할 수는 없다. 진정 하나님의 임재를 원한다면 영적인 건강을 증진시켜 줄 좋은 영적인 습관을 다지는 것이 필요하다.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그냥 넘어갈 때가 있지만 예수님처럼 규칙적으로 은밀히 진실하게 구체적으로 기도하는 습관! 이것이야말로 나의 심령을 가장 견고케 하는 기도 습관이라고 목사님은 이야기하고 있다.  
가만히 내 삶을 들여다보면 정말 그렇다. 기도하지 않는 이유, 또 기도의 자리에 앉아 있다고 해도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이 아니라 내 정욕으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모른 척하고 못 본 척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 분주함 내가 기도하지 않는 이유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바빠지기를 원하신다. 내 정욕과 자랑을 위해서 바빠지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일에, 하나님의 임재와 그분의 능력을 경험하는 일에 바빠지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기본으로 돌아가 기초부터 다시 시작하길 원하신다. 나의 심령이 견고해지는 기도습관을 가지기 위해 말이다.
오늘 아침 또 남편을 깨우고, 아이들을 깨우고, 밥을 준비하고, 집안일을 한다. 그러나 이제는 바쁘지 않다. 내가 먼저 기도했기 때문이다. 기도로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지름길(short-cut)이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경험하면서 하는 일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면서 하는 일에 바빠지는 내 삶이 즐겁다.

하나님의 음성 - “넌 존귀하고 예쁜 자다!”
출산으로 말미암아 내 몸에 붙은 살들… 너무 바쁜 일들 때문에 나를 가꿀 수 없었다. 사역자의 아내로서 나를 위해 투자할 수 있는 물질도, 여유도 없었다. 남편을 돕고, 아이들을 양육하는 일 때문에 항상 나는 맨 뒷전이었다. 나를 위해 BB크림도, 링클케어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겉모습은 점점 후패해져 갔다. 운동할 여유도, 나를 가꿀 여유도 없는 나, 아니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너무 바빠서 예뻐질 겨를조차 없다. 내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고 내 기도가 냉랭해질 때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왜 이렇게 초라해 보일까? 대학 시절 가졌던 상큼함도, 처녀 때 가졌던 신선함도 없는 내 모습이 결코 예뻐 보이지 않았다. ‘이런 나를 누가 예쁘다고 찾아줄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내 모습을 아시며 나의 기도를 듣고 싶어 하신다. 이 책에서도 가련한 과부와 같은 실패한 여인, 교육도 받지 못하고 직업도 없으며, 돈, 재산, 권력, 지위가 없고 보살펴줄 가족도 없는 자의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켜주시고 그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다. 그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예뻐해 주신다. 겉모습은 늙어가지만 나를 자녀 삼으신 하나님께서 기쁘게 나를 받아 주신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하신다. 나의 삶의 흔적들, 몸에 붙은 살들까지도 사랑한다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주님의 뜻대로, 예수님처럼 구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시겠다고 말이다.
나의 외모와 가진 것 때문에 예쁘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바라는 마음과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모습을 예뻐하신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영혼의 아름다움과 건강을 유지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내 속사람은 아름다워져 간다. 내 삶과 신앙의 활력을 통해서 매일매일 아름다워져 간다. 너무 바쁘기 때문에 기도할 수 있을 때, 나는 더욱더 아름다워져 가는 것이다.

기쁨이 충만한 삶  
시간은 돈이라는 말 때문에 내 입에서는 계속 “바쁘다.”는 말이 늘어갔다. 그러나 한편 하루하루 살아가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만큼 내게서 “기쁘다.”는 말은 줄어갔다. 남편과 함께했던 날들, 자라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기뻐했던 것이 이제는 당연하게 생각되었고 더 이상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남편의 부재와 아이들의 성장에 따른 불평불만들만 마음속에 가득했다.
그런데 기도는 내 삶의 속도를 늦추게 한다.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 하신 하나님의 그 능력으로 말미암은 기도가 가득할수록, 나의 삶의 속도는 안정되고 나를 향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온다. 그리고 그 음성 속에서 그분의 사랑을 깨달을 때 나의 삶엔 여유와 기쁨의 말이 넘치게 된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는 지속적인 연습을 통해 영혼의 눈과 귀가 열리는 것을 경험하는 것은 큰 기쁨이다. 하나님의 길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을 때 느끼는 그 기쁨! 하나님께 계속 무언가를 아뢸 수도 있지만, 잠잠히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듣는 그 기쁨! 그때야 비로소 남편과 아이들을 내 뜻대로 조정하려던 욕심을 버리고 그들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다. 내가 이루고 싶고, 하고 싶었던 일을 하지 못해서 나오던 불평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간다는 은혜로 말미암아 기쁨과 찬양으로 바뀌게 되었다.

난 바쁘다. 그러나 난 예쁘다. 난 바쁘다. 그러나 난 기쁘다. 분주한 내 삶속에서 하나님과의 고요한 만남의 시간, 그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바쁘기 때문에 기도한다. 우주를 다스리는 하나님께서 못난 내 안에 계시고, 나를 위해서 말할 수 없는 탄식을 하시기 때문에 나는 예쁘다. 내 뜻, 내 욕심과는 다른 길로 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그분의 능력을 날마다 경험하며 살아가는 것이 너무 기쁘다. 반복되는 일상과 분주함 속에서도, 어려운 환경과 여건 속에서도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기도하는 것이다. 찬미, 고백, 감사, 간구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나에게는 늘 큰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
오늘도 기도하며 남편을 깨운다. 기도로 아이들을 축복하고, 기도하면서 가정을 돌본다. 오늘도 기도하며 사역한다. 기도와 함께 일할 때, 마음에는 분주함 대신 평안함과 기쁨,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너무 바빠서 기도한다’는 이 책의 제목처럼 나도 분주함 속에 기도한다. 이것이 내가 지금 존재하는 이유이다.

글/ 지은영 사모
성남 금광교회 청년대학부 사역을 하고 있는 남편 임남규 목사와 슬하에 2남의 자녀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