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되어주는 삶 - 정경화 사모
2011.02.16 15:51
친구가 되어주는 삶
정경화 사모
‘주다가 망하자!’
우리가 사역하고 있는 현장은 자유당 시대부터 형성된 윤락가 속이다.
일명 ‘쪽방 촌’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폭력적인 강력사건이 많이 발생하는 슬럼가이며, 전과자들이 많기 때문에 ‘별들의 고향’이라고도 불린다. 여기에 어떤 사연(이혼, 사업 실패, 직장에서 구조조정 당함, 알코올 중독 등)이 되었든지 길거리로 내몰린 노숙인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는 동네가 우리 사역의 장이다.
거대하고 화려한 백화점을 옆에 두고 조금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사람들의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초라한 쪽방 촌의 모습이 전개된다. 어떤 사람들은 이곳을 ‘천국과 지옥’ 같다고 말한다. 화려한 불빛으로 도시의 세련된 모습과 잘 어우러져 있는 백화점, 그 뒤로 한쪽은 어두침침하고 냄새나는 낡은 판잣집으로 더덕더덕 둘러싸인 주택들이 밀집되어 있기에 이렇게 ‘천국과 지옥’으로 비유되리라 생각한다. 그동안 많이 철거되었지만 아직도 560여개의 쪽방이 남아있고, 600여 세대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쪽방 주민 중, 220여 명은 장애인과 독거노인들이고, 이들을 포함한 350여 명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이다. 나머지는 일용직으로 그날그날 벌어먹고 산다. 이들은 대부분 단신 가족으로 살고 있다. 아직도 수십 명의 여인들은 윤락을 생업으로 삼고 있고, 이곳의 펨푸(호객꾼)들은 밤낮으로 자기 구역을 지키다가 늦은 밤이 될수록 더욱 활보하며 왁자지껄한 골목의 분위기를 만든다.
광야교회에서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100여 명의 형제들과 그 외에 역, 공원 등에 산재해 있는 노숙인들까지 모두 우리의 사역에 있어서 섬김의 대상자들이다. 쪽방 촌에 기거하시는 분들 중,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나 독거노인에게는 도시락 밑반찬을 준비하여 일주일에 세 번씩 공급해 드리고 있다. 도배와 방 청소, 빨래를 도와드리고 있으며, 몸이 아프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병원에 보내드린다. 돌아가신 분의 가족을 찾을 수 없거나, 찾더라도 가족이 장례를 치르러 나타나지 않을 때에는 장례를 대신 치러드리기도 한다.
노숙인들에게 하루 세 끼, 사랑의 무료급식을 제공해 드리고 있는데, 식사 때가 되면 끝없이 줄지어 서 있는 노숙인 형제들을 본다. 우리 사역의 표어 중 첫 번째 표어가 ‘주다가 망하자!’이다. 어느 날인가 한 형제가 막 뛰어 오면서 숨이 차오르는 가운데 말을 이어갔다. “저기요, 우리 교회의 기도제목을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 것 같아요!” “왜요? 무엇을 보고 하나님이 응답하신 것 같습니까?”라고 묻자 “사람들이 너무 길게 줄을 서 있어서 광야교회가 이제 망할 때가 됐습니다. 우리의 기도제목 가운데 하나가 ‘주다가 망하자!’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기도응답을 받아서 망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
한 손에 복음 들고 한 손에 사랑을 들고
우리도 여느 사람들처럼 어떤 때는 밥을 주기 싫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미운 짓거리’를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그러한데 특히, 밥을 먹고도 감사는커녕 오히려 욕하고 대드는 사람, 반찬 투정하는 사람을 볼 때는 더욱 그렇다. 가끔 ‘언제까지 이 사역을 계속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스쳐갈 때도 있다. 하지만, 빵을 주어야 복음 전하는 것이 가능하고, 이들이 빵을 잘 먹어야 육신의 회복과 더불어 정신적․영적 회복이 되어지며 더 나아가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 복음을 전해야 하는 우리이기에 보통 사람들보다 더 잘 대접하고,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도록 이 조그마한 식탁에서부터 더 잘 섬겨 드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그래서 ‘밥은 생명이며 사랑이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식사를 제공한다.
역 주변과 거리 및 쪽방 촌 주변은 밤낮없이 무리를 지어 술을 마시는 사람들, 아무 곳에나 대․소변을 보는 사람들, 땅을 담요 삼고 하늘을 이불 삼아 아무 곳에서나 뒹굴며 자는 사람들의 모습이 뒤섞여 진풍경을 이룬다. 이들은 내일이 없고, 아무런 희망도 없이 정력과 시간과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 마치 벼랑에서 굴러 떨어진 송아지같이 영혼도, 정신도, 몸도 모두 망가져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이들이 이렇게 된 데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있다. 경제적인 이유와 가정적인 상처, 그리고 사회적인 실패의 쓰라림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타락한 죄의 본성이 방탕과 방종으로 이끌었고, 경마나 도박, 춤 등 못된 중독의 사슬이 이들을 더욱 망가뜨린 것이다, 아직도 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조금만 더 자세히 그들의 내면세계로 들어가 관찰해 보면 바로 마귀가 그들의 배후가 되어 멸망으로 이끌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회복시키기 위해 한 손에는 빵을, 그리고 다른 손에는 복음을 들고 다가가야 한다. 이들에게는 편히 잘 수 있는 잠자리와 일할 수 있는 일자리와 치유 등의 일반적인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복음과 사랑, 장기간의 정신적인 지지와 돌봄이 병행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24년이라는 세월 동안 종합적으로 이 사역을 해오면서 깨닫고 절감하게 된 결과물들이다. 단시일 내에 어떤 열매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저희들은 교회입니다”
사역을 해오면서 있었던 일 중 몇 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사역 초창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와 있으면 전도하기 위해서 남편과 함께 골목으로 들어가곤 했다. 어느 날도 여전히 골목으로 들어가서 잠깐 서 있는데 어떤 젊은 남자가 열심히 돈을 세고 있다가 갑자기 “이 정도면 되요?” 하고 돈을 내밀었다. 1,000원짜리 여덟 장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돈을 주면서 나에게 흥정하는 것이었다. “젊고 괜찮구먼.” 하면서. 우리 동네 사람들은 가정에 대한 개념이 일반인들과 많이 다르다. 부부가 함께 살 때만 부부이고, 오늘 헤어지면 그 다음날은 다른 사람과 살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기에 어느 여인에게나 접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땅에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완전히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이다.
남편과 함께 쪽방 동네로 들어서면 아내인 내가 옆에 함께 가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펨푸들이 잡으며 “쉬었다 가세요!”라고 말했다. “저희들은 교회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대답하고 지나가기를 계속했지만 그들은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고, 1년, 2년, 3년이 가도록 끈질기게 “쉬었다 가세요!”를 외쳤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 온 펨푸가 또 “쉬었다 가세요.”하니 그 때 옆에 있던 펨푸가 하는 말, “거기는 교회야!!!” 어느 새인가 ‘교회’라는 단어가 이들 머릿속에 박혀 들어갔던 모양이다. 이들은 교회에서 전도하러 온 우리에게 3년여 정도 지난 후에야 “쉬었다 가세요!”라는 말을 포기한 듯싶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어이없는 일들이 자주 일어났다. 한 번은 아들 녀석이 길을 가다가 갑자기 눕더니 뒹굴고 다녔다. 그래서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아저씨들도 이렇게 하잖아요?”라고 대답하는 게 아닌가! 아이들이 자라면서 매일 보는 모습은 아저씨들이 대낮부터 술에 취해서 길거리에 나뒹구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언젠가는 아이들 셋이서 담배를 주워 빌딩숲 사이에 서서 피우기도 했다. 어느 날은 큰아이가 “엄마! 이것 좀 사 주세요.” 하는데 때마침 한 푼도 없는 상황이어서 돈이 없다고 했더니 아이가 하는 말 “엄마도 친구 엄마처럼 아저씨들한테 돈 달라고 하면 되잖아요. 그러면 아저씨들이 돈 주잖아요. 그러면 살 수 있잖아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동네가 윤락가이다 보니 함께 어울려 노는 친구들의 엄마가 윤락업을 통해서 아저씨들에게 돈 받는 모습을 보아 온 것이다. 단순히 친구 집에 가서 노는 줄만 알았더니 어른들이 돈을 주고받는 모습,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아주머니들이 아저씨들에게 돈을 받는 모습들을 자주 본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행동들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사역도 중요하지만,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 캐나다 출신의 미국 심리학자)의 사회학습이론과 함께 맹모삼천지교가 생각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의 행동은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주어진 상황을 관찰하고 모방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것,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서는 교육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서
이들을 위한 돌봄 사역을 하면서 가정의 필요성을 느끼고 가정을 만들어 주는 ‘사랑의 합동결혼식’을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35쌍의 가정을 탄생시켰다. 이 결혼식을 통해 태어난 아이들이 벌써 초등학생이 되었다. 몇 달 전에는 한 분이 아들이 공부를 잘해서 반장이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감사헌금을 가지고 찾아왔다. 어떤 아이는 달리기를 너무 잘해서 육상선수로 활동한다고 했다.
알코올을 친구삼아 찌들게 살았던 백철민(가명) 형제는 이제 완전히 알코올에서 벗어나 새 삶을 찾았고 ‘노숙자 굿바이’라는 노래까지 자작하여 부르고 있다. 펨푸 생활에서 벗어나 새롭게 삶을 정리하신 분들도 있다. 36년 동안 술과 담배로 찌든 삶, 포주의 삶을 청산하고 권사가 되어 교회를 섬기는 분도 있다. 전과 27범이었던 사람은 복음 안에서 변화되어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자살하려고 결심했다가 실패하고 교회에 발 들여놓은 어떤 분은 주님 안에서 거듭나 이제 열심히 직장에 다니며, 자기와 같은 자들을 위해 제 2의 인생을 헌신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오랜 세월의 아픔 속에서 인고의 날을 보내며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했더니 서서히 열매가 하나 둘 알알이 맺혀져 간다. 이것이 사모된 자의 기쁨이요, 행복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랜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은혜를 주셨지만 힘들 때마다 붙잡고 힘을 얻으며 사역했던 구절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7)라는 말씀과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 16:10)라는 말씀이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 주신 부분은 전체 사역 가운데서 보면 정말 작은 일부분이다. 그러나 작은 부분에 충성하지 않고서는 큰일을 주셔도 충성할 수 없다는 것과, 하나가 회개하고 돌아올 때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다는 말씀을 생각하며 이 사역에 최선을 다해 충성하고 있다. 언젠가 그만두더라도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해서 충성하자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지낸 세월이 어언 24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주님의 사역을 살펴보는 가운데 특별히 내가 감동을 받았던 부분이 있다. 성경을 보면 당시 종교 권력가나, 사회적인 지배층으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았던 세리, 창기, 죄인들에게 주님이 직접 다가가 친구가 되어 주셨고, 같이 거하시며, 그들의 희망이 되어 주신 점이다. 우리는 힘이 없고 너무 나약하고 미약하다. 그렇지만 주어진 달란트를 가지고 주님의 뜻을 조금이나마 실천하기 위해 이들을 품고 친구가 되기 위해 지금까지 달려왔고, 현재도 달리고 있으며, 앞으로도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달려갈 것이다.
글/ 정경화 사모
영등포역 부근 쪽방지역에 위치한 광야교회는 이곳 주민을 위한 쪽방 상담소와 공동체시설인 노숙인 쉼터 외에 여러 가지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며 주민의 재활을 돕고 지역의 복음화에 전력을 쏟고 있다. 정경화 사모는 남편 임명희 목사(광야교회 담임)와 함께 ‘선한 사마리아인’으로의 사명을 가지고 묵묵히 사역을 감당해 가고 있다.
영등포역 부근 쪽방지역에 위치한 광야교회는 이곳 주민을 위한 쪽방 상담소와 공동체시설인 노숙인 쉼터 외에 여러 가지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며 주민의 재활을 돕고 지역의 복음화에 전력을 쏟고 있다. 정경화 사모는 남편 임명희 목사(광야교회 담임)와 함께 ‘선한 사마리아인’으로의 사명을 가지고 묵묵히 사역을 감당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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