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십자가 그 뒤안길의 목회자의 아내 - 박용규 교수
2011.07.19 14:17
영광의 십자가 그 뒤안길의 목회자의 아내
- 박용규 교수(총신대 신학대학원)
기독교 역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역사를 빛낸 수많은 믿음의 지도자들 곁에는 신앙의 아내가 있었다. 칼빈의 아내인 이들레뜨 드 뷔르, 루터의 아내 카타리나, 그리고 휘필드가 그토록 예찬했던 1차 대각성운동의 주역 조나단 에드워즈의 아내인 사라 피에르 폰트 에드워즈 모두 기도로 무장된 경건한 여인이었다. 1727년 7월, 당시 17살의 나이로 에드워즈와 결혼한 사라는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했다. 그녀는 말씀과 기도로 특징되는 남편의 목회를 잘 이해하며 남편의 목회를 도왔고, 상당히 깊고 경건한 은혜를 체험했다. 남편이 노댐프턴 교회를 담임하는 동안 사라는 목회자의 아내로서 딸 여덟과 아들 셋, 모두 열한 명의 자녀를 낳아 훌륭하게 양육했다.
한국 여성 그리스도인들의 헌신도 대단하다. 오늘날의 한국교회 성장의 신화 그 상당한 몫은 한국의 헌신된 여성 그리스도인들에게 돌려야 할 것이다. 한국 여인들의 헌신은 개신교 복음이 전해지던 당시부터 특별했다. 이 땅에서 여인으로 산다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특별히 우리 민족이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고 있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엽 우리의 정치 경제적 상황은 너무도 열악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가문과의 단절을 의미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우상 타파는 물론 제사를 지낼 수 없고 첩을 거느릴 수 없으며 술·담배를 금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목회의 길은 세상적으로 가시밭길이었다.
그런 시대 목회자의 아내가 된다는 것은 곧 자신의 인생과 비전은 물론 여인으로서의 삶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했다. 더구나 초창기 복음이 서구의 종교로 인식되며 편견이 가득한 시대, 남존여비 사상이 뿌리 깊어 여성에 대한 편견이 가득했던 이 땅에서 여자로, 게다가 목회자의 아내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들의 기록을 거의 찾을 수 없는 오늘의 현실이 이 사실을 단적으로 반증해준다. 그러나 여인들은 남자들보다 더 복음에 민감했고, 더 열심이었다.
평양대부흥운동의 주역 길선주 목사가 기독교인이 되는 데는 그의 아내가 중요한 몫을 했다. 길선주는 진리에 대한 사모함 때문에 혹한이 몰아치는 그 추운 겨울, 얼음으로 눈을 비비면서까지 열심히 도를 닦다 결국 시력을 잃고 말았다. 앞을 제대로 볼 수도 없었고 책도 읽을 수 없었다. 절망 가운데 진리의 길을 찾아 헤매던 길선주에게 우리 주님께서 찾아오셨다. 게일 선교사가 번역한 천로역정을 접한 길선주는 아내에게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아내가 읽어주는 천로역정 이야기를 들을 때 성령께서 그 안에 역사하셔서 주님을 믿게 되었다. 그는 아내에게 그 책을 몇 번이고 다시 읽어 달라고 부탁했고, 아내가 읽어주는 천로역정을 들으면서 말씀이 그의 영혼 안에 깊이 침투되는 것을 느꼈다. 드디어 길선주는 주께 완전히 굴복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헌신하기로 다짐했다.
그 후 아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길선주의 저술이나 기록에서는 찾을 수 없다. 하지만 길선주가 위대한 부흥사요 목회자로 전국을 누비며 부흥운동의 주역으로 쓰임 받을 수 있었던 배후에는 아내의 희생적인 내조가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1911년 사랑하는 아들 길진형이 105인 사건으로 구속되어 극심한 고문을 당하였고, 그로 인해 결국 세상을 떠나야 하는 아픔을 그녀는 온몸으로 감내해야 했다. 또한 1919년 삼일독립운동 33인 서명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남편 길선주가 투옥되어 2년간 옥고를 치를 때 자녀들을 돌보며 가정을 지켜야 하는 일은 당시 여인으로서, 게다가 일제의 감시가 극심한 상황에서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남편이 담임으로 있는 장대현교회가 이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을 것이다. 훌륭한 목회자의 배후에는 언제나 희생과 사랑과 헌신, 그리고 눈물의 기도를 그치지 않는 목회자의 아내가 있었다. 그것은 영광스러운 자리가 아니라 언제나 고통과 고난의 자리였다.
모든 것을 참아내야 하는 것이 목회자의 아내이다. 미국의 어느 분이 쓴 “목회자의 아내들을 위한 십계명”은 목회자의 아내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잘 말해준다.
목회자의 아내들을 위한 십계명
첫째, 당신은 결코 좋지 않은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둘째, 당신은 결코 아파서도 안 됩니다.
셋째, 당신은 언제나 당신의 자녀나 다른 사람의 자녀나, 모든 자녀들을 완전히 다스려야 합니다.
넷째, 당신은 언제나 당신 남편의 양 떼의 모든 요구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다섯째, 당신은 남편의 교회가 잘되도록 온 지식을 다해 좋은 사교자(a proper diplomat)가 되어야 합니다.
여섯째, 당신은 어떤 사전 주문 없이도 어떤 상황에서 어떤 종류의 음식이라도 받들어 올릴 수 있는 준비가 된 능력 있는 요리사가 되어야 합니다.
일곱째, 당신은 어떤 사전 통보 없이도 교회에서 어떤 악기를 대신할 수 있는 재능 있는 음악가가 되어야 합니다.
여덟째, 당신은 2달러 예산으로 15명을 먹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아홉째, 당신은 사전 계획 없이도 주일학교에서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을 대신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열 번째, 당신은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목회자의 아내가 미국에서도 그렇게 힘든 위치였다면 당시 한국에서 목회자의 아내가 된다는 것은 더욱 험난한 길이 아닐 수 없다. 오직 교회와 남편을 돕기 위해 자기 자신은 물론 자녀들의 희생이 전제되지 않으면 쉽게 갈 수 없는 길이었다.
오직 남편과 전처의 자녀들의 양육을 위해, 그리고 섬기는 산정현교회를 위해 자신의 교사직을 포기하고 온 생애를 불태웠던 순교자 주기철 목사의 아내 오정모는 단적인 예일 것이다. 주기철 목사가 그 영광스러운 순교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아내 오정모 사모의 희생과 눈물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산 문창교회에서 평범한 한 여자 집사로 교회를 섬기던 그녀는 주기철 목사의 아내가 세상을 떠나면서 주 목사님과 결혼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녀는 바르고 강직한 여인이었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신앙심이 참으로 돈독한 여인이었다. 주기철 목사가 그녀를 만난 것은 참으로 축복이었고 주님의 거룩한 인도하심이었다.
한국교회에 신사참배의 거센 바람이 불어오고 있는 그런 상황에서 주기철 목사는 평양 산정현교회 담임으로 부임했고, 조만식 장로와 김동원 장로를 비롯한 민족주의자들이 즐비한 산정현교회에서 주기철 목사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신사참배반대운동에 앞장설 수 있었던 것은 그 뒤에 든든한 후원자인 기도의 여인 오정모 사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앞장섰던 이들 가운데 가족들 때문에 할 수 없이 배도하는 목회자들이 적지 않았다. 남편의 구속은 곧 가족들의 희생과 고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일제의 감시를 받아야 하고, 굶주림에 시달려야 하고, 자녀들이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도 없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신사참배가 죄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중간에 신사에 참여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정모 사모는 주기철 목사님에게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도전을 주었고, 전체 한국교회를 위해서라도 끝까지 신앙의 절개를 굽혀서는 안 된다고 환기시켜주었다. 그것은 잔인할 정도였다. 실제로 오정모 사모는 남편의 구속으로 산정현교회 교우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신앙으로 독려하고, 자녀들을 돌봐야 했고, 남편의 옥바라지를 감당해야 했다. 먹을 식량이 없을 때는 자녀들과 금식하며 하나님께 매달렸다.
주기철 목사가 마지막 순간까지 흔들리지 않고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순교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오정모 사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도의 어머니, 오정모가 없었다면 주기철 목사의 영광스러운 산정현교회 목회와 신사참배 도전에 맞선 순교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의 배후에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사모의 길을 걸어간 그의 아내 정양순 사모가 있었다. 애양원에서 나환자들을 대상으로 교회를 섬기는 일은 특별한 사명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투옥된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나이 든 시어머니와 자녀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옥중에 있는 남편을 얼마나 지극히 섬겼는지는 1942년 10월 14일 옥중에서 손양원 목사가 아내에게 보낸 다음 편지에서 읽을 수 있다.
“이상하기도 합니다. 그동안 달마다 한 번도 어기지 않던 당신의 면회가 이렇게 늦은 걸 보니 아마도 집안에 무슨 변이 생긴 것 같습니다.”
아내 정양순은 순교한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의 시신을 묻어야 했고, 그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자신의 집에서 아들로 삼으며 같이 살아야 했고, 급기야는 남편이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순교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의 배후에는 이처럼 거룩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 묵묵히 사모의 길을 걸어간 정양순 사모가 있었다.
어디 이들 뿐이겠는가? 한국교회의 오늘의 기적 배후에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고난의 자리를 지켜온 목회자의 아내들이 있었다.
다음 글은 베키(Becky)라는 한 미국 목회자의 아내가 쓴 글이다. 목회자의 아내로 살아가면서 자신이 경험한 아픔과 시련, 영광을 신앙적으로 잘 그려내고 있다. 원 제목은 목회자의 아내를 향한 “격려의 말”이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목회자들의 아내라는 사명과 책임은 같기 때문에 사모들에게 격려가 될 것이라 생각하며 이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목회자의 아내에게
베키(Becky)
목회자의 아내인 우리들은 종종 교회의 필요 때문에 무시를 당할 때가 많다. 우리는 상처를 입고 있는 자들이지만 그것을 드러낼 수 없으며, 남편도 우리가 상처 입은 것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남편들이 설교한 어떤 내용으로 성난 자의 분노를 정면으로 맞게 되지만, 사람들은 그때에도 우리가 미소 지으며 완벽하기를 기대한다. 우리가 실의에 빠져 울부짖을 때에 우리의 사랑하는 남편들(항상 교회의 필요에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도 우리 목회자의 아내들이 교회의 한 일원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는)은 우리를 바라보며 무엇이 잘못되었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이제 잠시 나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보냈던 그 시간으로 당신의 관심을 돌리고 싶다. 모세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우려하는 모든 일상의 일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을 구원하고 돌보시는 하나님을 모시고 있었어도 자신들의 작은 근심의 세계에 갇혀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을 잊어버리고 아론에게 그들이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우상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아론은 세상의 압력과 주위의 끊임없는 불평에 순응하고 말았다. 모세는 자신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동안 아래의 모든 책임을 아론에게 맡겼었다. 아주 종종 그것은 목회자의 아내들에게 일어나는 사례다.
하나님의 사역으로 분주한 남편들은 방앗간을 돌리는 일을 우리 아내들에게 남겨놓는다. 자신들은 양들의 필요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아내인 우리가 일선에서 가정을 잘 돌볼 것이라고 믿는다. 남편들은 자신들의 작은 세계에 쌓여 있어 일들이 잘못되기 시작하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이 우리의 필요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불행하게 되고 기쁨을 잃는다. 성경은 우리에게 ‘주님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라고 말한다. 만약 우리의 힘이 약해진다면 사탄이 그 틈을 쉽게 이용할 것이다. 불평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했던 것처럼 똑같이 우리 안에 들어올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남편의 눈을 열어 모든 일이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할 수 있을까? 다른 양 떼처럼 우리도 남편의 교회 회중의 일원이며, 우리 역시 그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어떻게 깨닫게 할 수 있을까?
애석하게도 이에 대한 손쉬운 대답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돌보아 줄 누군가를 소유하고 있다. 우리가 불행할 때 우리는 하늘 아버지에게 나아가 그 짐들을 모두 내려놓고 빈손으로 돌아올 수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기도다. 교회를 위해, 우리의 남편을 위해, 우리의 가족들을 위해, 그리고 우리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베드로후서 5장 7절은 말씀한다. “네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주님은 우리가 모든 문제를 가지고 최우선으로 그에게 나오기를 원하신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짐을 지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나는 목회자의 아내가 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대단한 소명이다. 오직 충성스러운 자로 입증된 자들만이 그러한 소임을 감당할 것이다. 당신은 목회자인 남편들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는 아내들에게 밝은 빛을 제공할 수도 있다. 하나님의 돌봄이 필요한 가정의 양 떼에게 자신의 눈을 여시기를 기대하며 기도하자. 하나의 부부로서 당신을 위해 시간을 만들라. 한 가정보다는 부부로, 또 그와 함께 하는 자로서 말이다. 당신의 결혼이 강력할수록 사탄이 틈을 타기가 더 힘들 것이다. 두 겹줄로 꼰 끈은 한 줄보다, 또 심지어 풀린 두 가닥 줄보다 더 강하다. 당신의 결혼 끈을 견고하게 유지하라. 사탄이 당신의 기쁨을 도적질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글/박용규 교수
웨스턴복음주의신학교(미국 포틀랜드)에서 수학,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대학원(미국 시카고)에서 신학석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현재 총신대 신학대학원 역사신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교회사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역사신학자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수많은 저서와 수상경력을 갖고 있다.
웨스턴복음주의신학교(미국 포틀랜드)에서 수학,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대학원(미국 시카고)에서 신학석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현재 총신대 신학대학원 역사신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교회사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역사신학자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수많은 저서와 수상경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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