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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라는 이름 속엔 눈물이 있습니다

- 이희정 성도(울산 늘사랑교회)



‘사모’라는 단어는 ‘눈물’이란 단어를 떠오르게 합니다. 한 영혼 한 영혼을 바라볼 때에 내 자녀를 바라보는 듯한 애달픔이 그 마음 가운데 있기 때문이겠지요. 어쩌면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며,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는 듯한 마음의 고통을 겪을 수도 있겠습니다. 자신이 가야 할 길, 그 길에 닥칠 수난을 알면서도 자신보다 아버지의 영광과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인간으로서는 다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영광과 맡겨진 사역과 영혼들을 위해 자신의 전 삶을 하나님 앞에 드리고 있는 분들이 바로 ‘사모’라 불리는 어머니들입니다.
이 길,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따르는 이 길이, 눈물 없이는 걸을 수 없는 길이기에 그러한가 봅니다.

제 어머니는 사모입니다.
어머니는 큰 교회 부교역자로 계셨던 아버지를 만나면서 목회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6년간은 연년생으로 삼 남매를 낳아 기르고 시댁 식구들을 돌보느라 사모이기보다는 엄마와 아내, 그리고 며느리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7년이 되던 해인 1990년, 담임 목사님의 권유로 아버지께서 단독목회지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서 우리 가족은 울산으로 거처를 옮겨 개척 목회와 함께 단란한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다섯 명의 가족이 한 상에 둘러앉아 식사할 수 있는 집이 생겼고, 작지만 우리 교회도 생겼습니다.
30대 후반의 젊은 목사가 가진 개척의 꿈, 그리고 그 꿈에 함께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열정과 설렘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요? 몇 안 되는 성도들이었지만 모두가 그런 열정을 가지고 고(故) 김덕신 목사님을 비롯한 대구 동부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작은 교회를 가득 채워 설립예배를 드렸습니다.

컴퓨터가 귀해 문서작업이 쉽지 않던 그 시절, 어머니는 주보부터 시작하여 교회 전도, 심방, 청소, 주일 점심준비 등 교회와 성도들에게 모든 정성을 쏟으셨습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동네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주택가 2층 상가, 약 30평 규모에 세 들어온 교회당과 타지 목회자, 그리고 문제가 생겨 다른 교회에서 떨어져 나온 성도들…….’ 바로 우리 교회에 대한 수군거림이었습니다.  
그런 소문이 있는지도 잘 알지 못했던 초등학생 시절, 억울하게도 우리 교회가 ‘이단’이라는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지금도 이단이라면 믿든 안 믿든 경계부터 하는데, 그때의 괴로움은 말로 할 수 없었겠지요. 소문과 함께 교회가 흔들리게 되면 성도들도 흔들리게 마련일 겁니다.
아버지의 까맣던 머리는 점점 희어졌고 어머니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쓰디쓴 마음을 오직 하나님께만 눈물로 아뢰었을 것입니다. 자녀들에게도 내색하지 않은 채 말입니다.

시간이 지났지만, 이단이란 소문에 시달린 교회의 어려움은 다시 시작하기도 힘들만큼 치명적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한때는 C 코스까지 차량운행을 하면서도 아버지께서 굳이 운전을 하지 않으셔도 되었는데, 교회가 소문에 휩쓸린 이후로 아버지께서 직접 차량운행까지 하셔야 했고 할 일들이 계속 늘어났습니다. 어머니는 전도와 교회 봉사에 전보다 더 신경을 쓰셔야 했기에, 집에 일찍 오는 저학년 때는 어머니 없이 어린 동생들과 집에 있어야 했던 적도 많았습니다. 철야기도를 위해 기도원을 갈 땐 저희도 따라가야 했지요.
그러다 아버지께서 허리 통증으로 차량운행조차 하실 수 없게 되자 어머니는 운전을 배우셨습니다. 면허를 따고 한 달도 되지 않아 어머니는 차량운행을 하셨고, 어머니의 하루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전도와 심방, 수요예배와 구역예배, 기도회, 주일학교, 아침·저녁예배, 중고등부예배 등 모든 행사를 위한 차량운행, 성전꽃꽂이, 청소, 주일 식사준비 등을 하시며 일주일 내내 쉴 틈이 없으셨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어머니의 또 다른 인생은 잠시 교회에 전도사님이 계셨던 시간과 아버지와 교대로 일을 나누시던 때를 제외하고는 21년이 지난 지금도 똑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 때는 성탄절 당일 전체 예배에 앉을 자리가 없어 중․고등부가 강대상에 올라가 예배를 드리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교회라도 보란 듯이 커졌다면 그 힘겨운 세월의 보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련만,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어도 당회가 없어 ‘담임목사라 인정할 수 없다’는 말까지 들어가며 여전히 그곳, 그 자리에서 목사와 사모로 살아가고 계십니다.
진리는 변함이 없는데, 시대를 따라 변하는 우리의 신앙생활이 교회 공동체의 위기를 만들어내는 요즘이지요. 주일학교에서부터 50명도 채 안 되는 교인들마저 다른 교회로 옮겨가거나 삶이 바쁘다고 나오지 않아, 우리 교회는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무능력한 작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때론 성전을 청소할 사람도 없고, 주일 식사를 준비할 사람도 없어 토요일이면 어머니는 하루 종일 교회에 계시기도 합니다. 예전보다 더 많이 교회에 가셔야 하고 더 오래 계셔야 합니다. 너무 오랜 시간 한결같이 달려와 이제는 좀 쉬고 싶은데, 마음대로 쉴 수조차 없는 그런 삶을 살고 계신 것이지요.

한 선교단체의 제자훈련 후, 목회자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것은 다른 20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무게의 짐을 지는 삶이라 생각했습니다. ‘나는 간접 목회를 하는 자’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Pastor’s Kids, PK)라 여겼지만, 그럼에도 그 자리를 벗어나 떠나고 싶은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지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삶의 끝을 소망하며 눈물로 밤을 지새우던 2년여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어머니의 정말 특별한 자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상한 마음이 주는 강력한 힘은 죄인 됨을 아는 것의 찢어지는 고통과 그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에 대한 깨달음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와 성전 된 영혼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닮아가게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노력과 결과는 비례한다는 이 시대의 가치와 무능력함의 기준에 비교될 수는 없겠지요.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린 후에야 알았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믿음과 헌신, 충성됨이 -비록 인간적인 상함으로 눈물 흘린다 할지라도-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가는 은혜로운 항해의 과정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어머니의 자녀는 저희 삼 남매만이 아닐 것입니다. 아이의 신앙을 가진 영혼뿐 아니라, 보살피고, 가르치고, 가꾸고, 양육하는 교회 성도들 모두가 기도와 눈물로 세워가는 어머니의 자녀들일 것입니다. 그 삶의 이야기 속 사건과 거기서 느끼는 감정의 깊이와 넓이를 다 알 수는 없겠지만, 복음의 사명을 따라 자녀를 대하는 것 같은 애달픔으로 맡겨진 영혼을 향해 대가 없이 떼어주시던 삶의 눈물을, 그리고 진리 위에 바로 서지 못한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시던 예수님의 마음과 같은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사모’라 불리는 제 어머니의 삶의 이야기는 교회의 이야기와 함께 마쳐질 것입니다. 자신의 헌신과 섬김을 다하여 구주되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것으로 만족하면서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어머니가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나의 사랑, 나의 기뻐하는 딸 박영순’으로 불렸으면 좋겠습니다.
평생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이들을 향해 역설하듯, 어머니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를 부르며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라는 찬양의 고백으로 지금도 저의 신앙의 본이 되어 서 계십니다.

글/ 이희정 성도
울산 늘사랑교회 이동주 담임목사님과 박영순 사모님의 장녀로서 현재 예수전도단 울산지부 협력간사를 맡고 있으며, 어린이집에서 햇살 같은 아이들과 사랑을 나누며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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