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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목회를 위한 부부 레시피

- 오주환 목사(예안교회)



대전의 모 교회에 집회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A목사님이 저를 B집사님의 댁에 초청해서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대화 도중에 A목사님의 사모님이 자신의 어떤 생각을 표현했습니다. 그러자 A목사님이 안색을 바꾸면서 갑자기 화를 벌컥 내는 것이었습니다. “왜 사모가 남의 이야기에 끼어들어 경거망동하게 행동하느냐?”, “여자가 말이 많다” 하면서 질책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자리에 저와 A목사님 부부만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저희를 초대한 B집사님도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분도 어찌할 바를 몰라 하셨습니다. 와! 이런 일은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밥을 먹는데 도대체가 불편해서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A목사님은 전혀 아무렇지 않은 듯이 말을 하고 식사를 마쳤습니다. 드디어 그 교회에 가서 2박 3일 집회를 인도하는데, 그 목사님은 아주 천사와 같은 목소리와 태도로 성도들을 대하시며 사회도 보고 찬양 인도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목사님의 사모님은 지혜로우신 건지 아니면 포기하신 건지, 그처럼 몰상식한 남편을 목사로 두고도 겉으로는 태평해 보이셨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저에게 몇 년이 지난 후에도 굉장한 아픔이 되었습니다. 사모가 할 말을 좀 한다고 저렇듯 교인들 앞에서 닦아세우고 무시해도 되는 것인지…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목회자들 부부간에 보이지 않는 갈등과 상처가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목회자 사모를 위한 세미나가 그렇게 인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목회자 부부간의 정서적 친밀감이 목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것을 5C로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1. Communication, 충분한 대화입니다.
일반적으로 목사는 교인들한테 친절하고 교인들의 말을 다 들어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자기 아내와는 진지하게 대화를 하거나 심지어 들어주려고 하질 않습니다. 남편이 집안에 들어와서 아내가 뭔가 이야기하려고 하면 “아, 피곤해. 나중에 얘기해, 차차 얘기해.” 하면서 아내와는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교인한테서 전화가 오면 피곤한 기색은 다 사라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싱싱팔팔하고 상냥하게 대화를 나눕니다. 이럴 때 사모는 속상하고 화가 납니다. 그리고 남편을 경원시하게 되는 것이지요. 교인과의 대화는 진지하게 하고 아내와는 피곤해서 나중에 얘기하자 해놓고는 또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 볼 기운은 있습니다.
한 통계에 의하면 현대사회의 부부들이 하는 대화를 시간으로 모아보니 하루에 4분밖에 대화를 안 한다고 합니다. 그 결과 일주일의 대화는 28분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TV는 일주일에 47시간이나 본다고 합니다. 남자는 하루 평균 2만 마디의 말을 하고 여자는 3만 마디의 말을 하는데, 남자는 퇴근 후에 50마디 이상을 안 한답니다.

이것이 목회자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라고 봅니다. 목회자 부부가 서로 대화를 해야 합니다. 저는 아내와의 대화를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솔직히 아내와 대화를 하다 보면 아내 속에 감추어진 지혜가 흘러넘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묵직한 이야기도 좋지만 희로애락의 모든 이야기를 같이 나눔이 서로에게 정감을 주고 친밀감을 더 가져다준다고 봅니다.
이것을 위해 반드시 부부가 단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거의 일주일에 한 번은 단둘이서 산행을 하며 두런두런,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가고 옵니다. 솔직히 이 세상에서 하나님 다음으로 가장 소중한 대화의 상대는 아내밖에 없습니다. 아내가 화병이 생기고 속병이 생기고 얼굴에 기미가 많이 서리는 것은 남편 목회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남편 목사가 아내의 속을 풀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지요. 아내는 ‘안의 해’인데 어둡게 하면 마침내 남편목사에게도 어두움이 찾아오게 됩니다. 아내가 빛을 발하게 하려면 아내와 ‘늘 대화하고, 틈나는 대로 대화하고, 시간을 내어서 대화하는 것’이 아내로 하여금 내면에서 빛을 발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봅니다.

2. Consideration, 충분한 배려입니다.
배려란 무엇입니까? 관심을 가지고 상대를 생각하여 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아내는 남편의 건강을 챙겨주고 남편을 존중해주고 생각해주는 데 비해서 남편은 아내의 수고를 배려해주지 않습니다. 사실 아내들 중에는 결혼생활을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특히 목회자의 아내가 그러한 경우가 많습니다.
교인들은 충분히 배려해 주면서 아내는 실컷 부려먹으려고만 하지 배려해 주질 않습니다. 저는 아내를 배려하기 위해서는 아내의 사생활도 소중히 여겨야 된다고 봅니다.종종 목회자 중에는 아내의 입장은 생각하지도 않고 성도들을 쉽게 집안으로 들여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손 대접을 잘해야 한다는 명목이 있지만, 성도들을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일단 아내의 사생활이 침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늘 신경을 써야 합니다.
집안에 들어오면 아내의 세상이 될 수 있도록 가족 외에는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심지어 누가 명절에 선물을 가져와도 잠시라도 들어오게 하지 않습니다. 바깥에서 영접합니다. 왜냐하면 집안에 들어와서 기도하고 오래 앉아있다 나가는 사람이 꼭 말을 만들어내는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어디에 멀리 나가 있거나 세미나를 가서도 전화 한 통 해서 상대를 생각하고 아끼고 있음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친구들이나 동창모임 등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혼자만 날름 먹고 와서는 입을 싹 씻는 것이 아니라, “참 맛이 있었는데 당신도 그것을 먹었으면 좋겠다.”고 말 한마디 할 때 상대방은 정말 마음이 녹는 것입니다.
특히 하루에 한 번쯤은 문자를 날려서 아내를 기쁘게 해 줄 수 있습니다. 문자를 보내도 흥분과 감동을 주는 문자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핸드폰으로 “중전! 어떻게 지내고 있소. 그대를 생각하니 가정이 안심빵 되고 나도 든든하오.” 어떻습니까?
그러면 사모들은 뿅 갑니다. 남편이 아내를 중전으로 생각하면 아내도 남편을 임금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나라의 역적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문자로 배려해주길 바랍니다. 또 웬만하면 세미나를 갈 때 꼭 부부가 동행하는 것이 서로에게 배려해주는 좋은 기회라고 봅니다.

3. Commitment, 서로에게 헌신해야 합니다.
여성들은 특히 나이가 들고 중년이 지나가면 몸이 부슬부슬해집니다. 뼈의 콘크리트가 다 마모되는 것과 같습니다. 자식 낳느라고 떨어져 나가고, 남편 뒷바라지하느라 떨어져 나가고, 자나 깨나 자식, 남편 챙겨주고 생각하느라 몸이 허(虛) 해집니다. 그래서 골(骨)이 비게 됩니다. 그 결과 골다공증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컬어서 ‘중년기 장애’라고 하지 않습니까? 남편들은 아내가 신음소리를 내고 어디 아프다고 할 때 “엄살 부리지 마라.”고 몰아붙일게 아니라 자꾸 주물러 주어야 합니다. 안마를 자주 해주어야 합니다. 남편의 손처럼 효과 좋은 보약은 없습니다. 한 번씩 손바닥과 발바닥을 주물러 주고 특히 몸이 차다고 할 때는 온돌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별로 돈이 들지 않으면서도 아내에게 헌신하는 따뜻한 행위입니다.
특히 목회자들은 성도들에게 아내에게 헌신한다는 표를 공개적으로 해야 합니다. 저는 반드시, 어떤 일이 있어도 승용차 운전석의 옆 좌석에 단 한 번도 아내 외의 여성을 태운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어머니가 계셔도 뒤에 태웁니다. 제 옆에 유일하게 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내임을 공개적으로 발표합니다. 그만큼 아내에 대해서 헌신한다는 표시가 되지요. 아내에게 헌신을 하면 할수록 성도들은 자기 아내밖에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아름답게 생각합니다.

헌신과 행복은 정비례합니다. 헌신해주는 만큼 행복합니다. 상대방만 나에게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거나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상대의 헌신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나도 헌신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서로가 행복을 느낍니다. 우리 주님도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부가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고 목회를 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 보이지 않는 재앙의 근원이라고 생각합니다.

4. Confession, 솔직한 자백이 필요합니다.
목회자 부부가 서로에게 늘 진솔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허물도 쉽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 목회자의 성적(性的)인 문제로 교회와 사회의 문제가 되는 사례가 많습니다. 성적인 죄는 부부가 같이 짓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목회자가 교인 여성 중에 어떤 사람과 짓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서로가 감시(?)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서로에게 평소에 자백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어느 유능한 부흥사 겸 목회자가 성적 스캔들로 인한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해서 끝내 교회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온 케이스를 알고 있습니다. C라고 하는 목사는 굉장히 설교도 잘하고 모 지역에서 큰 부흥을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과부가 된 집사가 상담한답시고 자기의 사연을 그 목사에게 메일로 보냈고 그것을 서로가 주고받은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그 목사님이 메일에 앞으로 우리끼리 기회가 주어지면 타국에 가서 살자고 했답니다.
그러다가 그 목사님이 과부 집사와 무슨 약속을 어겼는지 그 여집사는 목사에 대한 흉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실을 알게 된 목사님의 사모님이 너무 열이 나서 그 과부 집사의 집에 찾아가 혼쭐을 내주었습니다. 그러니까 격분한 과부 집사는 너무나 화가 난 나머지 그동안 C목사와 주고받은 메일을 공개해 버렸고 이 일로 인해서 C목사는 교회에서 쫓겨나고 그 지역에서도 부끄럼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이 문제가 얼마든지 부부끼리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고 봅니다. 먼저 C목사님이 자기한테 어느 과부 집사로부터 메일이 오고 있다고 사모에게 말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부 집사의 어려운 문제를 사모가 맡아서 상담하고 관리했더라면 그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한테도 종종 어떤 여자 집사들로부터 메일이나 문자가 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원칙적으로 항상 단답형 내지 단문으로 답신을 보냅니다. 문장은 굉장히 사무적입니다. 만일 문장 속에 어떤 식으로든 애정(?) 비슷한 표현을 하게 되면 나중에 화근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목회자들은 문장으로 답신을 보낼 때 정말 신중하고도 조심해야 합니다. 또 어떤 여집사가 만나서 상담을 하자고 하면 반드시 아내와 같이 나간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여집사들이 말하는 이야기들은 항상 아내가 알고 있습니다. 그래야 서로를 지켜주고 보호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서로가 어떤 문제로 감정이 있을 때는 솔직하게 ‘나로부터의 대화’를 시작하면서 풀려고 합니다. 부부지간에 왜 말다툼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항상 ‘너 때문이 아니라, 내가 상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나로부터의 대화를 할 때 일이 쉽게 풀리게 됩니다. 이것은 바로 서로를 고백하면서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죠.

5. Christ, 그리스도 중심의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사실 목회자들도 목회를 하면서 감정이 상하게 되면 그리스도는 잠시 뒤로 제쳐 놓고 자기의 감정과 분노로 해결하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목회자의 가정 가운데도 결혼생활을 하면서 위기를 만나지 않거나 경험하지 않고 사는 가정은 없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목회자 가정은 체념하면서 살거나 운명이려니 하면서 삽니다. 초두에 말씀드린 가정의 사모님은 아마도 체념하고 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흔히 쓰는 말로 ‘앞에서 보면 실망, 옆에서 보면 낙망, 뒤에서 보면 절망’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사망에 이른다고 합니다. 인간적인 시선으로 보면 서로가 서로를 향해 충돌할 일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좋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부 두 사람만의 인격이 그 가정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로 절대적인 ‘제3의 인격’을 의지하고 사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전에는 나 중심으로 서로를 바라보니 시행착오와 오해와 다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같은 방향에서 충돌하거나 쌍방향으로 계속 평행선만 달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중심으로 바라보고 방향을 설정하면 다르게 보게 됩니다. 어떻게 다르게 봅니까? 서로를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로 보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항상 그리스도를 향해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주님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서로에 대해서 솔직하게 고백하고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해 줄 때 가능합니다.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와서 간절하게 기도하고 기도해 줄 때, 바로 그리스도 중심의 올바른 가정생활을 영위할 수 있고, 비로소 그리스도 중심의 목회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글/오주환 목사
총신대학원 졸업, 사랑의교회 부목사로 10년간 사역, 이리중앙교회 담임을 거쳐 현재 익산 예안교회의 담임으로 사역하고 있다. 가족으로는 김단순 사모와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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