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신뢰지수 회복을 위하여
2006.06.20 16:41
교회신뢰지수 회복을 위하여
“아, 이렇게까지!” 필자의 입에서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장탄식이었다. 지난 5월26일 총회주관 평양대부흥운동 집회 인도차 빛고을 광주로 내려가던 KTX에서 접한 한국개신교인구 10년만에 1.6% 14만 4000명이 감소했다는 통계청의 “인구주택 센서스”결과를 접하던 첫 순간에 하나님께 대한 송구함과 목회자로서 가지는 자괴감이 빚어낸 신음이었다. 한국교회는 지난 10년(1995-2005)간 극상품 포도가 아니라, 들 포도를 맺었다.
우리들이 그렇게 자신있게 외치던 5만교회 1200만 성도라는 구호는 거짓임이 드러났다. (통계기독교인구 8백61만 6천만) 물론 통계청의 통계는 100% 완벽하지는 못하다. 그러나 여타종교 인구를 감안한다 해도 너무했다. 통계청 발표 후 후폭풍이 적지 않다. 교계 각 신문은 앞 다투어 적나라한 통계를 제시하고 자기반성의 목소리로 높이고 있다. 우려하는 일들이 현실로 나타난 지금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과거를 반복 답습할 것인가? 아니면 현실에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하여 미래를 영광스럽게 열어갈 것인가 그 몫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이제 우리는 교역자의 의식의 갱신과 사역의 역동성 제고를 위하여 노회와 총회의 역할과 기능을 재조정해야 한다.
노회는 교역자들이 전통 계승과 친목도모 이상의 현장이 되어야 한다. 목회적 안목을 넓히고 영성 갖춤에 대한 진지한 토론의 장으로 열릴 뿐 아니라 미래 지향적인 목회의 로드맵(Road Map)을 제공받을 수 있는 현장이 되면 얼마 좋을까? 노회가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는 영적 각성의 현장으로 쓰임 받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일인가? 신앙 선배들의 교회 사랑과 민족복음화에 대한 끓는 열정이 후배들에게 전수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 노회의 정치성을 가능한한 내실있게 발전시키고 교회의 역사성과 목회적인 과제를 진지하게 논의 수렴할 수 있는 차원 높은 현장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왜 진지하게 목회하며 성실하게 사역에 임하는 동역자들이 노회활동에 소극적으로 임하는지 그 원인을 파악하여 처방하지 않으면 사역자들로부터 외면당하는 노회가 될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우리 총회 역시 소속되어 있는 수많은 교역자들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자긍심과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원래의 기능을 회복해야 된다. 필자 역시 태어날 때부터 골수 합동측임에도 불구하고 총회의 정체성과 미래 지향성에 대하여 걱정이 없지 아니함이 어찌 된 까닭인가?
이제는 우리 총회가 말로만의 환골탈태가 아니라 영적인 실사구시를 이루기 위하여 중대한 결단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 장자의 명분 주장만으로는 부족하다. 장자의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 장자의 능력 회복은 자기 희생과 겸손 그리고 한국교회에 대한 연합 및 대사회적인 겸허한 봉사에 있다.
개교회나 노회, 총회가 진실을 바탕한 정직과, 인적, 재정적 투명성이 세상의 논리를 압도할 만큼 이루어지지 않으면 결코 세상은 교회를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사회가 교회를 바라볼 때 교회의 허수, 허세, 허상을 짐짓 눈치 채고 소망의 줄을 끊어버린다면 교회는 용도 폐기처분당한 불량제품처럼 취급을 받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영적 헝그리정신을 추스려 개척자의 심정으로 우리를 의혹의 눈초리로 냉소하는 이웃을 향하여 달려가야 하리라. 한국교회의 가슴 아픈 현실이 미래를 위한 양약이 되도록 현실 진단이라는 확성기를 통해 들리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열어야 할 것이다.
전략을 세워 우리의 다음 세대를 복음으로 얻어내야 한다. 교회 신뢰지수 회복은 이웃을 향한 교회의 생명력 회복이라면, 다음세대를 전략적으로 얻는 것은 교회의 미래를 얻어내는 작업이다. 총회차원에서 경천동지할 차세대를 향한 교과과정 완비와 교재계발을 서둘러야 한다.
미래의 주기철 목사나 손양원 목사 박관준 장로를 얻어 세우려면 주일학교와 청년을 얻는 영광스러운 일에 확실하게 인적, 재정적 투자를 해야 한다. 일만 교회가 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일만 교회의 미래를 담보 할 만한 비전과 방향제시의 농도가 짙은가 하는 것을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어떤 비상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썰물 빠져나가듯 교회에서 사라지고 있는 우리의 다음세대를 다시금 돌이키도록 해야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결정적인 때를 잃어버리고 나서 탄식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한국교회의 대사회적인 이미지를 높이는 일과, 교회내부의 본래의 기능을 회복하는 일 그리고 우리의 다음세대의 생명을 얻는 일의 바탕은 교회 신뢰지수를 높이는 것이다. 믿음이 믿음을 낳고, 불신은 또 다른 불신을 낳는다. 과거 우리는 신뢰를 선택과목으로 생각해 온 경향이 있었다. 신뢰는 결코 선택이 아니다. 신뢰는 교회와 뭇 성도의 전공필수이어야 한다.
“오 사랑의 주님! 한국교회에 주의 긍휼을 부으소서”
“우리 합동교단에 주님의 은총의 빛을 비추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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