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협] 나의 목회비전
2007.11.10 15:09
본 내용은 지난 11/9(금) 서울 강변교회(김명혁목사)에서 있었던 한국복음주의협의회에서 "나의 목회비전"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신 내용입니다.
생명얻고, 사람 세우는 목회
Winning the Soul & Equipping the Saints Ministry
(Praise the LORD & Raise the People)
오정호 목사(대전 새로남교회)
※ 양해를 구하는 말씀 ※
이 시간의 주제인 “나의 목회 비전” 이라는 큰 제목은 부족한 종에게는 진실로 감당할 수 없는 주제이며 또한 설 수 없는 자리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지만 부르심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섰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납해 주실 줄 믿고 용기를 냅니다.
실천적인 신앙인에 대한 요청(순종을 통한 삶의 변화를 도모하라!)
(야고보서 2:14-17)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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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와 기독교에서 일어난 것 사이에는 한 가지 분명한 유사점이 있다. 그것은 두 가지 모두 실천을 진리, 또는 진정성의 시금석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실천에 따라 평가하는 것이지 교리의 경향이나 순수성, 혹은 교리의 근원이나 본래의 진리에 따라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독교는 행위를 진리의 시금석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사상과 유사하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의 가르침은 기독교의 가르침과 너무 대조적이어서 반성경적으로 뒤틀려졌다.
(쟈크 엘룰/Jacques Ellul 뒤틀려진 기독교/ 도서출판 대장간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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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한국교회의 형편을 진단한다.
• 목회현장 3허 현실 ①허수(虛數) ②허세(虛勢) ③허상(虛像) (은보(恩步) 옥한흠(玉漢欽)목사 진단)
• 내우외환
① 내부 정체 혹은 숫적 감소, 자기연민 혹은 자기모순(목회지 세습 & 교단임원을 제비뽑기할 수 밖에 없는 일그러진 자화상) 금년여름 아프칸 사태로 돌아본 교회의 모습, "자정능력과 조정능력이 과연 있는가?" 에 대한 한국교회 교인들과 일반 국민들의 교회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
② 외부의 도전(못 믿겠다 예수쟁이! 너나 나나 무엇이 차이가 있느냐?)
③ 냉소적 반응(당신이나 잘 하세요!)
사도바울은 복음전파와 수호 때문에 미말에 처한 존재가 되었지만(영광의 상처/고전 4:9) 한국교회는 자기 미성숙과 사려의 천박성에 의하여, 신뢰의 미말, 영향력의 미말에 처해졌다.(이러한 신뢰의 하향조정에는 소위 큰 목회하는 목회자들과 교회 주변 단체를 통하여 입지를 구축하고자하는 평신도 지도자들도 한 몫하고 있다. 최근 대선 정국에 목회자의 본연의 사역을 이탈하여 대선 예비후보에게 빌붙은 목회자 그룹이나 평신도 지도자들의 “하나님의 뜻”을 들먹이며 자기의 정치적 욕망을 채우려는 시도 역시 비기독교들의 뇌리에 기독교 이미지 하향조정 및 평가절하에 한 몫하고 있다. 과거 오순절주의의 공은 가슴이 벅찰 정도지만 동시에 기독교인의 천박성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키는 우려스런 결과도 가져왔다. 보수주의 진영이나 진보주의적인 진영은 사사건건 대립하여 싸우고 분열하는 예수 믿는 사람에 대한 인식의 심화를 국민들에게 가져다주었다.)
국민들은 기독교뿐 아니라 타종교까지 몽땅 싸잡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집단”으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변양균, 신정아 사건이나 극우 기독교를 표방하는 목회자들은 “공공의 적”으로 네티즌이나 젊은이들이 분류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제는 국민들이나 교회 주변의 이웃이 우리의 말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다.
능력을 보여 달라고 한다.(고전 4:19-20)(신앙의 순수성, 고도의 윤리성, 혼돈 가득한 사회의 마지막 대안 세력이 되어 주시오! 불 꺼진 등대가 아니라 민족에게 희망의 빛을 비추는 체감 종교, 체감 기독교를 갈구한다.)
특히 젊은 세대 가운데 안티 기독교적인 분위기가 증폭되고 있다, 실로 가슴을 칠 일이다. 적극적으로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이나, 긍정의 힘만 강조하는 이들은 뭐 별일 있겠느냐고 눈감아 버리려하지만 내 눈 감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님이 문제의 핵심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터진 웅덩이 신드롬”을 보는 듯하다.(렘 2:13)(렘 6:14)
목회자는 시대의 양심이며, 교회는 민족의 희망의 등불이다.
마비된 양심을 통하여 선한일이 나올 수 없고, 꺼진 등대가 난파선에게 올바른 방향을 결코 인도할 수 없다.
막무가내식의 무례한 기독교, 말만 늘어놓는 힘없는 기독교, 현실을 등지고 신비를 추구하는 뜬구름 잡는 기독교, 대안 제시 없는 추상적기독교 이미지는 벗어버리라.(삼실의 목회현장(실수(實數), 실세(實勢), 실상(實像))으로 영적인 백의종군하는 심정으로 나아가야 한다)영적인 실사구시의 치열함으로 주님과 복음 그리고 양떼에게 온몸을 던져야 한다.
Ⅱ. 목회의 원리(正道牧會, 牧羊一念)
(잠 29:25-26)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으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
1. 은혜목회(恩惠牧會)/ 은혜감각지수가 목회충성지수를 결정한다. 은혜에 대한 각성은 사역에 대한 각성으로 열매 맺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도바울의 심정처럼 진실로 하나님의 은혜가 목회의· Α 와 Ω임을 절감한다.(고전 15:10) 필자의 목회는 은혜로 둘러싸여 있음을 본다. 섭리적인 만남을 통한 은혜 곧 개척교회 목회자의 가정에서 태어난 은혜, 한국교회의 순절과 말씀사랑(내수동교회 원로 박희천 목사)평신도를 깨우는 목회를 주창한 시대의 선각자와 선구자(사랑의교회 원로 옥한흠 목사)를 만나는 멘토의 복, 신학적인 건전성을 가진 학교에서의 신학훈련(총신대 신학대학원), 청년의 때 복음의 감격에 젖을 수 있는 기회(내수동교회 대학부 증인들), 신학의 넓이와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미국 풀러 신학대학원) 길선주, 주기철, 손양원 목사의 일사각오의 신앙과 민족애, 청교도들의 영성에 대한 개안 이 모든 것이 오직 주님의 은혜로우신 섭리적 접촉임을 감격한다. 나의 목회사역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빼어버리면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가? 사실 우리교회 이름도 은혜교회(Grace Church)라 명명하고 싶었지만 이미 많은 교회들이 그 이름을 가지고 있기에 새로남교회라는 명칭에 만족하기로 했다. 새로남교회라는 명칭도 그 참신성과 의미성과 용이성 때문에 교우들이 좋아하는 이름이기에 그대로 채용하기로 한 에피소드가 있다.
은혜목회는 반드시 감동목회로 이어진다. 감동이 상실된 은혜목회는 존재할 수 없다. 최근에 받은 교우의 메일을 통해 성도와 목회자의 만남이 얼마나 감사를 창출할 수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정OO 집사
존경하는 목사님!
이단 구원파 박옥수와의 기나긴 법정 싸움에서 외롭고 힘들어 하셨을 목사님을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뭉클 합니다. 진리 편에 서신 주님께서는 이번 일을 통하여 모든 성도가 하나 되어 같은 기도 제목을 놓고 마음모아 기도하기를 원하셨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저는 이번 일을 기도 하면서 개인적으로 많은 은혜와 간증을 주셔서 삶의 주관자이시고 인도자 이신 주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찬스가 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승소판결을 받은 날 새벽1시까지 너무 기쁘고 좋아서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교회 전체 떡을 돌리고도 싶었으며 아니 대전 전체 시민들에게 떡을 돌리고 싶었습니다.
우리 목사님과 사모님께서는 얼마나 더 기쁘실까? 그리고 비대책과 교역자, 교회지체들...
승소판결을 자축하며 조용하게 있는 다락방 순원들과 직장 동료들의 마음을 부축이어 자원하여 점심을 사주고 한주간은 구름 위를 떠다니듯 날아다니며 하마터면 승천 할 뻔(?) 했습니다. 제 개인적인 기도 응답이기도 했으며 간증이 있는 승소판결이었기에 목사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한 주간 동안 식사비만 수억(?) 날렸지만 마음은 천국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목사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이와 같이 무슨 일이든지 저희들이 마음모아 항상 목사님 우편에서서 돕겠습니다.
목사님과 함께 하는 곳 어디든지 ,,,,..^_~
사자 굴에도 갇히게 된다면 저희도 함께 갇힐 것이며 애매히 감옥에 갇히더라도
기도하면서 함께 갇히겠습니다.
목사님! 기나긴 법정과의 투쟁에서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우리 새로남교회를 선택한 것이 저희 가정에는 탁월한 선택이며 목사님과 사모님을 만난 것이 인생 최고의 축복이며 자랑입니다. 11월4일에는 믿음의 2세대인 아들 지훈이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너무 감사하고 감격스럽고 하나님께서 내려다보고 계시는 같아 예배시간 많이 울었습니다. 외롭고 힘들었던 믿음의 세대이었기에 기도하고 축복해주는 부모가 있어서 좋을 지훈이를 생각하니 더 많은 기도의 저축을 해주어야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저희 부부의 신앙과 인생의 멋진 멘토이시며 자랑이신 목사님과 사모님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여호와 닛~~시!!!
2007년 11월 5일 정 OO 집사 올림
목회자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의 감격을 누린다면 그 사역 역시 주님의 은혜의 반석위에 견고히 서야 하리라. 평생 은혜를 호흡하며, 은혜를 전파하며, 은혜속에 살고, 은혜속에서 주님의 품에 안기고 싶다.
한 목회자가 주님의 허락하신 목회지에서 맡겨진 사역을 감당할 때 은혜의 샘물, 은혜의 폭포수를 경험하지 않고서 어떻게 위기를 정면돌파할수 있겠는가. 필자는 새로남교회라고 하는 목회현장과 교우들을 섭리적으로 만나게 하신 하나님을 찬송하는 마음으로 목이 메인다.
돌아갈 교회가 있다는 사실
오늘 낮
피렌체 한인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미켈란젤로 광장을 오른 후에
아내가 나를 향하여 말을 건넸다.
“여보, 돌아갈 교회가 있다는 사실이 행복이예요”
“여보, 돌아갈 교회가 있다는 것이 은혜예요”
어찌 아내만의 마음일까
내 마음속에도
새로남교회가 있다는 사실이
우리교회가 있다는 것이
돌아갈 교회가 있다는 사실이
서로 기쁨으로 손잡고, 안길 수 있다는 사실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주님의 은혜이며, 감사의 제목이어라.
돌아갈 데가 없는 목회자
돌아갈 교회가 없는 교인
돌아갈 데가 없는 나그네
돌아갈 품이 없는 죄인
돌아갈 가족이 없는 가출 청소년
살아있으나,
기쁨과 감사를 상실한 인생 아닌가!
육체의 먹고 마심에 취해
영혼이 둔감해질까 두렵다.
일상의 번잡한 왕래에 점령되어
속사람이 빛을 잃을까 조심스럽다.
어차피 한번은 돌아갈 인생,
어차피 한번은 상황종료를 맞아야 하기에
주후 2007. 5. 27 이태리 피렌체에서 새로남가족을 그리워하며
2. 한 생명 목회/ 주님과 사도바울의 열정이 온 몸에 체감되는도다!
엡 4:11-12, 골 1:28-29, 마28:18-20
기업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기본이 강할 때 모든 사역은 안정적으로 열매를 맺게 된다. 기본이 강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미한다. 깨어진 관계에서 열매맺는 관계로! 서먹서먹한 관계에서 영적인 친밀감을 누리는 관계로! 소외의식에서 용납과 자기존중의식으로! 우리시대의 아픔중의 하나가 물량주의의 희생자들이 교회내에도 넘쳐난다는 사실이다. 학원 선생은 아이들이 많을수록 수입이 많아지기에 양적인 싸이즈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부모는 자신이 낳은 아이 하나를 키워내기에 얼마나 에너지가 소모되는지 알고 있다. 영적인 어버이 의식 혹은 목자의식의 핵심은 한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뼈에 새기는 것이다. 모두가 존중받는 사역의 현장, 모두가 인정받고 자기발전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열린목회는 한 생명 목회의식으로부터 출발한다. 수천명의 성도를 대상으로 할 때 늘 자책감이 되는 부분이 이 부분이다. 삯군 목자는 자기 유익이 사역의 동기가 되지만, 선한 목자는 양떼의 유익이 동기가 된다. 아무리 교인들의 숫자가 많아진다 할지라도 한 생명 소중하게 생각하는 의식이 희미해지기를 결코 원치 않는다. 목회자가 한 생명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잃어버리면 사역은 변질되고 목회의 현장에는 조종(弔鐘)이 울리게 된다. 예수님으로부터 한 생명 목회의 정신을 치열하게 배워가기를 소원한다. 필자는 때때로 기도원에 올라가서 금요 심야집회에 의도적으로 참여한다. 금요일 밤 기도원에는 여러 승합차들이 올라온다. 사연인즉슨 개척교회 하시는 목회자들이 교우들을 태워다가 함께 금요심야기도회에 참여하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필자가 집회에 참석하면서 가슴깊이 새기고자 하는 것은 개척교회 목회자의 심정-한 사람의 교인이 얼마나 소중하며 그리운가!-을 반추하고 싶기 때문이다. 요사이 유아원이나 유치원에서도 놀라우리만큼 잘 짜여진 교과 과정(Curriculum)이 제공된다. 그 의미는 “부모님께서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자녀들을 우리에게 맡겨주시면 성심성의껏 잘 양육하겠습니다.”이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성도를 각 지역교회에 맡기실 때 어떤 목회원리를 가지고 양육하기를 원하는 목회자에게 맡기실까는 물어보나 마나 아니겠는가.
3. 신학이 있는 목회
번지수가 불명확한 편지는 배달될 수 없다. 동일한 원리로 신학적인 바탕이 희미하거나 정체성이 애매모호한 목회는 목회자 자신과 회중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최근 한국교회의 광풍처럼 몰아치는 여러 가지 성장세미나와 이론은 그 뿌리를 불명확한 신학적 바탕에 두고 있음을 안다. 건전한 목회자는 숫자 늘이는데 도움이 된다고 하여 무조건 그 방법을 채용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필자는 신학이 신앙을 다스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신학이 신앙을 충분히 도울 수 있고 깊이를 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신학적인 체계가 세워지기 까지는 수많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의 땀과 눈물이 뒷받침되었다.
요사이 신학의 춘추전국시대를 살아가는 목회자들은 자기 입장과 원리에 대한 분명한 선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월간목회와 목회와 신학, 복음과 상황, 기독교사상, 빛과 소금, 뉴스앤조이, 교회성장, Disciple등을 정기적으로 구독하면서 신학적인 정체감을 날카롭게 다듬고 있다. 완성된 신학이란 주님 오실 때까지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적어도 현대교회사상적인 깊이와 방향성 정립에 영향을 끼친 신학자들이 칼빈주의자라는 사실을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라고 영적 뿌리 의식을 일깨웠다. 필자 역시 위대한 신앙의 멘토들을 통하여 균형 잡힌 신학의 길에 접어들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자체가 감사의 제목으로 가슴에 담겨 있다.
제자훈련 목회는 견고한 신학적 바탕위에서 꽃피어 열매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4. 개혁 목회
개혁목회는 말씀 중심의 목회이며 자아성찰의 목회이다.
개혁은 목회자의 전공필수이지 선택과목이 아니다. 개혁에는 힘이 든다. 웬가하면 의식과 제도 혹은 조직에는 관성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변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변화를 추구하는 마음은 항상 목회자의 뇌리에서 충돌하고 있다. 그러므로 개혁은 저절로 되는 법이 없다. 엄격한 자기 다스림과 주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소위 Reformed Church에서 머무르지 말고 Reforming Church로 나아가야 할 이유는 교회가 과거형으로 멈추어버리면 생명력은 약화된다. 개혁은 현재진행형으로 우리의 삶에서, 우리의 목회현장에서 호흡되어야 한다. 의식개혁과 더불어 제도개혁은 성경이 우리에게 교훈하는 바이다. 이 두 가지는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새로남교회는 당회실이 따로 없다. 오히려 목회협력사역실이 있을 뿐이다. 필자는 교회 공간 어느 곳에도 특정한 교인들만의 공간을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만약 당회실이 장로님들의 독점점유물이라고 생각할 때 성도들은 장로의 이미지를 기득권자로 오해하게 될 것이다. 당회가 열릴 때 당회실의 기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지, 자기 책상과 의자에 이름표까지 부착된 당회실이라면 전통적인지는 모르지만 개혁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교회에서도 당회실 설치문제에 대하여 패러다임을 바꾸기까지는 설득과 만남의 시간이 필요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굳어진 부분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리스도 중심적인 교회의 모습을 이루어가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교회건축에 있어서도 이 원리는 적용되지 않겠는가. 자라나는 세대에 대한 배려가 없는 교회건축이라면 아무리 돈이 많이 들고 화려하게 지은 건물이라 할지라도 전혀 개혁적이지 못할 것이다. 개혁은 궁극적으로 말씀의 성취와 성도들의 영혼성장에 맞물려 있다. 개혁은 목회자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치열한 싸움이기도 하다.
필자가 속해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교단은 명목상에 있어서는 대한민국 최대의 교단이다.(약 1만1천 교회) 규모가 큰 만큼 기대되는 바도 적지 아니한 형편이다. 그런데 교단 개혁의 로드맵중에 무지역노회가 있다. 무지역노회건은 반세기 이상 지내온 것이기 때문에 좋건 싫건 굳을 대로 굳어져 있는 부분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무지역노회 문제는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되어야 된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아무런 변화도 없다. 북한의 문이 열리면 노회의 이름으로 들어갈 것도 아니고 교단의 이름으로 들어갈 것도 아니다. 새로운 차원의 교단이 북한에 형성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무지역노회로서의 사명과 임무는 충분히 인식되고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때 무지역노회는 어떤 형태로든지 개혁되어야 하리라. 세상에서도 개혁을 밥 먹듯이 노래한다면 가장 개혁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묵상하는 우리가 어떤 형태로든 무지역노회 문제를 영적인 재조정을 통하여 주님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이루어가야 하리라 생각한다. 지금 합동 교단의 개혁의 문제는 외부의 문제가 아니라 내부의 문제이다. 개혁은 이렇듯 어렵다.
5. 현장이 있는 목회
지역교회가 Ghetto로서 존재하면 복음의 영향력은 단절된다. 섬김과 사랑과 나눔의 현장이 있어야 한다. 필자는 월드비전과 연계하여 종합복지관의 운영이사장으로 섬기고 있다. 일견 목회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질문할지 모르나 지역사회와 동떨어진 목회자와 지역사회와 단절된 교회는 빛으로 소금으로 나타날 수 없다. 어둠이 있기에 빛을, 부패가 있기에 소금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교회내의 사역에서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된다. 추측성 사역, 카더라 식의 사역은 건강한 현장을 제공할 수 없다. 처음에 언급한 허수, 허세, 허상 역시 사실을 바탕하지 아니했기에 열매를 맺을수 없다. 제자훈련 사역을 하는 필자 역시 현장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교회안에서의 성도의 모습과 가정에서의 모습 그리고 삶의 일터에서의 모습 가운데 성도다움이 나타나야 한다면 현장이 있는 목회를 더욱 강화하고 싶다.
우리교회 핵심가치중에 가정과 직장에 대한 언급이 있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들의 행복을 가정사역을 실천한다.”
“회사생활에 성실하고 창의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임하여 동료들에게 모범이 된다.”
우리교회의 모토중의 하나가 이웃과 함께 하는 교회, 영혼이 미소짓는 교회이다.
하나는 사역의 현장을 표현하고 있고, 또 하나는 교회의 지향점을 보여주고 있다.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성도의 비율이 많기에 그들의 삶의 현장에서 복음으로 영향을 끼치기를 깨우치고, 구체적 방법들을 함께 논의하며 실천하고 있다.
6. 투명성 있는 목회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반드시 추문(Scandal)으로 나타난다. 필자는 부임 초기부터 재정문제의 투명성과 인사문제의 투명성에 대하여 고민했다. 심지어 뜬금없는 투서에 시달리기도 했다. 재정문제는 전문성을 고려하고, 인사문제는 합의인사 원칙을 실천해 왔다. 담임목사가 밀실에서 개인적으로 인사문제를 처리할 시기는 이미 지나도 한참 지났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경상도 출신의 목사이다.(경상북도 의성) 자라날때부터 부모로부터 “지방색은 죄다.”라는 가르침속에 인식을 키워왔다. 새로남교회에서는 목회자를 청빙할 때 전문성과 조화 그리고 사역의 경험, 열정, 가정사 특별히 하나님의 부르심의 관점에서 면담한다. 서류심사와 1시간여 동안의 면담을 통하면 대부분 지원자의 인격과 사역의 경험과 열정이 드러나게 되어있다. 인사문제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담임목사의 지도력은 흔들리게 된다.
담임목사가 누구를 선발하느냐의 관점보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이 자리에 보내시기를 원하시는가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문제가 쉽게 해결됨을 본다.
필자는 지금까지 편벽되게 인사문제를 처리하지 않으려고 고민했다. 그리고 그 고민은 계속될 것이다. 지금 우리교회에서는 호남과 영남, 충청과 서울, 모든 지역 출신들로 교역자의 진영이 구성되어 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투명한 곳에 임하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7. 십자가 목회
십자가 목회는 성공목회, 번영목회와 또 다른 원리이다.
성공의 의미를 재조정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무엇을 위한 성공인가 역시 중요하다.
십자가 목회는 나누는 목회이며 희생의 목회이다. 제자훈련은 십자가를 지는 훈련으로 점철되어 있다. 십자가를 분별해내고 회피하려는 동기는 불순하다. 주님을 사랑하는 동기가 아니다. 한국교회가 그동안 성공을 노래 불렀지만, 십자가의 희생을 강조해야 될 시대가 도래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총회적으로 누군가는 짐을 져야하고 언젠가는 짐을 져야 한다면 깨달은 내가 먼저 동역자들과 더불어 비아 돌로로사를 가야 하리라.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구원파 박옥수 측과의 3년 소송이 종교개혁 490주년을 맞을 즈음에 대법원 승소로 열매를 맺게 되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례적으로 기독신문에서 우리교회의 기사를 사설에서 다루었다. 조심스럽지만 사설을 실어 본다.
[기독신문사설] 새로남교회의 의미 있는 승소
대전 새로남교회가 이단과의 법정 투쟁 끝에 승소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대전기독교연합회의 승리다. 내용은 이른바 체육관집회로 알려진 박옥수 집단과의 명예훼손 시비였다.
발단은 2004년 부활절 연합예배. 대전기독교연합회는 ‘이단으로부터 우리 교회, 가정, 고장을 지킵시다’라는 전단지를 배포했다. 당시 대전지역은 구원파 부류인 박옥수 측이 언론을 통해 무차별 홍보와 포교를 일삼고 있었다. 사태를 단순히 여기지 않았던 대전기독교연합회 이단대책위원회는 그해 10월 전단지를 제작, 배포했고, 박옥수 측이 이를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이단대책위원장은 새로남교회의 오정호 목사였다. 오 목사는 위원장으로서 자연히 이에 개입할 수밖에 없었고 새로남교회 또한 담임목사를 도와 대응에 나서게 되었다. 소송 과정은 험난했다. 1차 검찰조사에서는 무혐의 처리되었으나 상대가 항소한 정식 1심 재판에서 벌금형이 나왔으며 이후 역전, 재확인의 험난한 다툼 끝에 최종으로 대법원에서 승소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법정 승리를 기뻐하는 게 아니다. 지루하고 피곤한 법정 투쟁에서 진리의 승리를 장식했다는 그 점에서, 그리고 또 오 목사와 새로남교회를 위시하여 역내 여러 교회들이 힘을 합쳐 이단 박멸을 위해 분연히 일어나 싸웠다는 점을 두고 기뻐하는 것이다.
사실 박옥수 집단은 조직과 재력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개 교회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상대다. 그런데다 재판은 승율 반반의 게임이기에 가슴 조렸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기에 새로남교회 교인들은 더 뭉쳐 기도했고 자금을 모았다. 역내 교회들도 격려와 함께 후원금을 보내주며 힘을 보탰다.
이번 새로남교회의 대법 승소는 단순히 개교회나 지역 교회의 승리가 아니다. 한국교회 전체에 박옥수의 이단성을 증명시켰으며 진리 파수가 얼마나 힘든지도 보여줬다. 그러면서 무사안일에 빠져있는 한국교회에 할 수 있다는 의지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일깨워 줬다.
교회사는 이단과의 투쟁이 언제나 멀고도 험한 길임을 알려주고 있다. 그래서 웬만한 교회들은 이단 비판 집회 장소로 빌려주는 것조차 회피하려는 게 요즘 세태다. 그런 형편이기에 금번 새로남교회의 승소 소식은 희미해져 가는 한국교회의 이단척결의지에 경종을 울려주었다는 점에서 아주 값진 의미가 있다. 총회는 이단과의 싸움에 단호히 대처하여 진리를 사수해야 한다.
누군가 주님사랑 교회사랑, 영혼사랑으로 십자가를 질때 생명의 역사는 왕성하게 일어나리라.
8. 다음세대를 세우는 목회
영적인 세대계승은 하나님의 계획이며 동시에 사람의 계획이다.
딤후 2: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주님 다시 오실때까지 세대계승은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역중의 하나이다. 필자는 필자의 교회에서 우리 시대의 여호수아와 갈렙이 구름떼처럼 일어나기를 원한다. 이러한 마음으로 각 주일학교 부서와 젊은이 각 부서에 목회자들을 세웠다.
수도권을 벗어나서 지방에서 대학부를 1,2부로 청년부를 1,2부로 나누어서 지도자를 배치한 예가 쉽지 않다. 이렇게 역동적인 조직을 만든 이유는 영적세대계승에 대한 목마름 때문이다. 제자훈련의 본질은 주님 닮은 다음 세대를 세우는 일이다. 그리스도의 주권을 경험한 사람들만이 복음의 전사로서 쓰임을 받을 수 있기에 영적인 세대 계승은 지상교회의 중점사역이다. 투자 없이 열매 없다는 진리는 영적 세대계승의 현장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9. 연합과 형제애 목회
교회연합은 우리 시대의 요청이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필자는 대전광역시기독교연합회의 부회장으로서 섬기고 있다. 또한 이단사이비대책위원장으로 섬기고 있다. 연합에는 돈이 든다. 에너지도 소모된다. 회의를 많이 해야 한다. 사실 심방 갈 시간과 설교준비 할 시간에 공적모임이 발생하면 곤혹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 교회만 잘 된다고 모든 교회가 잘 된다는 보장이 없다. 이기적인 목회자와 이기적인 교회는 대단한 사역을 할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못하다. 연합은 완벽한 사람끼리의 모임이 아니라 부족함이 있기에 상호 보완하는 지혜요 기술이다.
필자는 대전에 부임한 이후로 교단의 명예를 걸고 또한 지역교회의 목사로서 협력하고 격려하는데 마음을 쏟았다. 그 결과 신뢰받는 교회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역에 있는 목회자들과의 아름다운 관계는 목회의 생산성을 높인다. 9년째 교파를 초월한 목사님들과의 모임을 통해 많이 배우기도 하고 ,함께 기도하기도 하고 공격을 방어한 일도 있다. 한국교회만 잘 된다고 세계복음화가 이루어진다는 보장이 없다. 모든 교회가 잘 되어야 한다. 상대를 축복하는 마음을 가질때에만 진정한 연합을 경험할 수 있다. 새로남교회는 지역교회와 목사님들을 힘 주는 교회, 기쁨을 주는 교회, 축복하는 교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원한다.
지난번 우리 지역의 어떤 감리교회가 설립 100주년을 맞이했을때 진심으로 함께 감사하고 축복하며 헌금하였다. 그 교회 담임목사님께서 너무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최근 이웃교회가 교회당을 새로 신축하여 입당하였다. 우리교회 장로님들이 방문하여 함께 기뻐하며 예물도 정성껏 드렸다. 입당교회 목사님과 교우들이 기뻐하였을 뿐 아니라 더 큰 기쁨은 방문한 우리교회 장로님들이었다.
연합에는 담임목사의 열린 마음이 필수적이다. 성도는 담임목사를 닮게 되어 있다. 나의 뒷모습을 보고 우리교회 중직자들이 무엇을 배울지 늘 조심스럽다.
10. 철학 있는 목회
목회철학은 하루아침에 생성되지 않는다. 필자는 창문 갈아 끼우다가 은퇴하는 목사가 아니라, 목회의 기둥과 철학을 세워 힘 있게 전진하는 목회자가 되고 싶다. 예측 가능한 목회는 깊은 통찰력과 전략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전략은 목회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세상의 돈 버는 기업들도 경영철학을 말한다면, 왜 지역교회 목회자가 목회철학이 희미해야 한단 말인가? 방법은 다르더라도 원리는 분명하게 이리저리 표류하는 목회자가 아니라 올곧게 한길로 달려가는 목회를 이루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목회역시 도상(途上/道上)의 목회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완성된 철학이 없는 것처럼 완성된 목회도 없기에 늘 주님앞에서나 회중앞에서 공사중(工事中) 목회임을 부인할 수 없으리라.
Ⅲ. 목회현장에 생기를
1. 목회철학(Ministry philosophy)
→교회론 정립
2. 목회전략(Ministry Strategy)
→제자도의 실천
3. 목회방법(Ministry Method)
→제자훈련
4. 목회현장(Ministry Field)
→그리스도를 닮은 제자들
● 새로남교회의 비전 선언문(Vision Statement)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여 천국의 확신
(영생의 선물)을 가지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하여,
하나님 나라의 정병(예수그리스도의 군사/복음의 증인)으로 세운다
*전도- 양육-훈련-영적재생산 (복음의 증인)
● 새로남교회의 핵심가치(Core Value)
새. 새생명 탄생을 위하여 복음전파에 전력 투구한다.
로. 로마서의 기록자 바울 같은 인재 양성에 힘써 통일을 대비한다.
남.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들의 행복을 위하여 가정 사역을 실천한다.
교. 교회가 속해있는 지역사회에 적극적으로 봉사한다.
회. 회사생활에 성실하고 창의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임하여 동료들에게 모범이 된다.
핵심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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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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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실현을 위한 구체적 행동(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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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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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생명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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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남전도대, 새가족 첫걸음마 양육교재 출판,
전도폭발(E.E.Clinic), 새가족모임, 전략적 선교지원,
기독교전도사역연구소(GEMI)와 연계, 대전성시화 운동 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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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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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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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여 제자훈련, 사역훈련, 순장훈련, 차세대품기, 성경대학,
교회 교육연구소 설립, 장학사업(외부 포함) 자체 교재제작,
리더십세미나, 단기선교, 대북한 돕기(정기적), 평양과학기술대학,
대전충청 학원복음화 협의회 지원, OM, GMP선교회 협력,
국제제자훈련원 협력사역, 크리스천과학기술인포럼 적극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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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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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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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가정생활 세미나, 기독교 가정사역연구소와 네트워킹
기독교 가정문화 정착운동, 부부다락방 활성화 및 역할모범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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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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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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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과 협력, 지역 경로당 협력, 구청 연계 정기적 성금전달(환경미화원 포함), 독거노인, 결식아동 결연후원, 교회 이미지 제고, 장애우 돌아보는 사역, 대전광역시 기독교연합회와 협력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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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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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된 직장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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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 정부대전청사, 타게트 그룹, 직장생활세미나,
전국직장인 성경공부(BBB)연계, 삶으로 뒷받침되는 직장생활 강조, 직능별 모임 활성화, 대한민국 대표 공무원, 연구원, 교수, 의사, 사업가 직업소명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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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뒷모습이 아름다운 목회자가 되기 위한 소원(Finishing Well Leader)
• 목양실 그림이야기
• 발바닥을 닮은 돌 이야기
존 후스와 개혁자들의 순교의 현장에 서다
오늘의 신앙고백과 신앙의 자유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님을 마음의 비석에 각인한다.
600년전 이 땅을 살았던 존 후스와 개혁자들의
치열한 개혁정신과
신앙고백이
오늘의 내 영혼의 자양분이 된 것임을
나는 잊고 살 때가 많았다
성경을 성경대로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권위의 진리로 고백하고,
성도를 향하여 모국어로 설교하고
교회의 전통보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드러내려고
분연히 일어섰던 개혁자들에게
돌아온 것은
화형과 참수형이었다.
신앙의 선조들은
육신이 무덤에 묻히지도 못한채
로마교회의 반역자로 분류되어
20년 동안 프라하 시민들이 오가는 다리위에 높이 목매달아졌다.
내가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어떤 고백을 하였을까?
나는 어떤 죽음을 당했을까?
더욱 엎드리어
더욱 치열하게
주님과 개혁자들로부터
배워야겠다.
이전 세대의 존귀한 신앙의 유산을
후세대에 전해야겠다.
나는
과연
후세대에
어떤 모습으로,
어떤 존재로 기억될까?
두렵고도 두렵다
주후2007. 5. 18
위대한 선각자이며 개혁자 존 후스의 터전 체코 프라하에서의 첫 날 순교광장에서
<담임목사에 대한 축복과 기대가 담긴 마음>
오. 오매불망(寤寐不忘) 예수사랑 불꽃같은 패기열정
정. 정도목양(正道牧羊) 영혼사랑 바다같은 깊은속정
호. 호연지기(浩然之氣) 제자사랑 친구같은 섬김우정
목. 목인석심(木人石心) 성경사랑 한결같은 말씀애정
사. 사생취의(捨生取義) 진리사랑 반석같은 승리확정
(이OO 집사)
Ⅴ. 행복한 목회자 입니까?
이미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읍한다. 목회자의 행복은 목회사이즈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주님과의 살 깊은 소명의식, 동행의식, 임재의식, 쓰임 받는 의식에서 출발한다.
영적 실사구시(實事求是)가 있는 목회자로 쓰임 받고 싶다.
주님사랑과 양떼사랑, 교회사랑의 흔적을 지닌 목사로 쓰임 받고 싶다.
다음은 필자가 늘 부르는 찬송중의 하나이다.
무익한 종을 들어 쓰시는 주님의 신묘막측(神妙莫測)하심에 그저 눈물지을 뿐이다.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아멘
(찬송 141장 5절)
※구체적인 새로남교회 목회현장은
“성장하는 14교회 장년부 부흥전략”/기독신문사 (P.74-105)
“월간 디싸이플” 2004년 8월호에 취재가 되어 있습니다.
새로남교회 홈페이지: www.saeronam.or.kr / 새로남교회
* 강훈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11-2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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