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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에는 제일 어린아이들이 예배드리는 부서가 있다. 대부분 너무 어린아이들이라 선생님들이 칭얼거리는 아니들을 업고 예배를 드리기도 한다.

 

어느 주일, 예배를 드리기 전에 한 아이가 '초코송이'라는 과자를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선생님 한 분이 "나도 하나 주세요."라고 장난으로 말했는데, 그 아이가 과자 하나를 꺼내기에 속으로 '참 기특하기도 하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는 그 과자를 자기 입속에 넣고 오물오물하더니 초콜릿은 먹고 막대기가 남겨진 과자를 내밀더란다. 선생님들은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한바탕 웃었고 그 선생님은 순간, 이 과자를 먹어야 하나 고민이 되어 입속으로 넣는 척 연기를 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맛있는 부분은 자기가 다 먹고, 그래도 과자라고 선생님에게 내밀던 아이의 당당함이 마치 우리의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누리고 있는 것 모두 하나님이 주셨는데, 우리는 인색하게 당당한 표정으로 주님께 바친다며 헌금도 하고, 시간도 내고 마음도 드린다고 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주님은 그 선생님의 마음처럼 조건 없이 사랑해 주시니까 우리는 오늘도 어깨 펴고 당당히 살아가는 것 같다.

 

사랑하는 이에게 주는 것은 아낌이 없다. 주고도 더 주고 싶은 마음에 이것저것 생각하며 더 챙겨준다. 인심 쓰듯 내가 준다는 마음이 아니라 그저 사랑하니까 더 주고 싶고, 살뜰히 챙겨주고 싶은 것이다.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향유를 붓고 그분의 발을 눈물로 씻기던 여인에게서는 '내가 준다'는 마음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까워하는 마음이 없이 자신의 사랑을 내어드린다. 사랑으로 내어드리는 가치는 얼마나 커야 할까? 과부의 두 렙돈을 생각할 때 주님은 많고 적음이 아닌 그 마음을 귀하게 여기셨다. 우리의 드림도 이와 같았으면 한다.

 

'무엇을 드릴까' 하는 사랑의 마음에는 향기가 느껴진다. 비록 세련되거나 거창한 무엇이 아니어도 '내가 준다'는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저 작고 투박한 손일지라도 그 드림에는 향기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다. 또한 우리에게 받으신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어떤 마음으로 주시며 어떤 마음으로 받으실까?

 

- 목회자사모신문 아침에 쉼표에서 발췌(25. 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