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의 목회서신] 말하는 벙어리 - 박희천목사 (내수동교회원로)
2016.12.19 18:07
말하는 벙어리
(시 38:12-15)
박희천 목사(내수동교회 원로)
필자는 목회자로서 말하는 벙어리 다윗을 좋아한다. 그의 생명을 찾는 자, 그를 해하려는 자가 “괴악한 일을 말하며 종일토록 궤계를 도모하오나”(시 38:12) 그는 귀먹은 자 같이 듣지 아니하고 벙어리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오니 그는 듣지 못하는 자 같아서 입에는 변박함이 없었다(시 38:13-14). 그는 벙어리가 되기 전에 우선 귀머거리부터 되었다.
귀머거리부터 먼저 되어야 벙어리가 될 수 있다. 왜? 아무래도 먼저 듣고 신경의 건드림을 받으면 인간인지라 말도 하게 된다. 그러나 아예 듣기부터 안 하면 신경의 건드림도 안 받게 되니 자연히 벙어리가 되기 쉽다. 이렇게 괴악한 말과 종일토록 궤계를 들으면서도(시 38:12) 벙어리처럼 있던 다윗은 어디에 가서 입을 열었는가? “여호와여”(시 38:15) 하면서 하나님 앞에 가서 비로소 입을 열었으니, 그는 말하는 벙어리였다.
이러한 사실은 시 39:1-4에서도 또 나온다. 그는 악인이 자기 앞에 있을 때 자기 입에 재갈을 먹였다고 한다(시 39:1). 그는 잠잠하여 심지어 선한 말도 발하지 않았다(시 39:2). 그러니 자기 마음에 화가 날 수밖에 없지 않은가(시 39:3). 그러나 여기에서 다윗은 다시 한번 벙어리가 되었다. 그러던 다윗이 언제 어디에서 그 입을 열었는가? “여호와여”(시 39:4)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비로소 입을 열었으니 그는 여기에서 다시 한번 말하는 벙어리가 되었다.
다윗은 시 55편에서도 말하는 벙어리로 나온다. 그는 한때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의 연고로 인한 근심으로 편치 못하며 탄식하였다(시 55:2). 그들은 죄악으로 다윗에게 더하며 노하여 그를 핍박하였다(시 55:3). 그러므로 다윗의 마음이 그의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그에게 미쳐 두려움과 떨림이 그에게 이르고 황공함이 그를 덮었다(시 55:4-5). 그는 하도 괴로워 자기가 날개가 있으면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거하고 피난처에 속히 가서 폭풍과 광풍을 피하고 싶다고까지 하였다(시 55:6-8).
이러한 가운데 그는 사람들에게 대하여서는 일체 귀머거리와 벙어리로 지내면서 오직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하나님께 부르짖는(시 55:16-17) 말하는 벙어리의 자세를 취하였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그를 치는 전쟁에서 그의 생명을 구속하사 평안하게 해주셨다(시 55:18). 다윗은 다시 한번 말하는 벙어리의 자세로 그에게 부닥친 난국에서 구원을 받았다.
시 69:1-4에서 물들이 다윗의 영혼까지 흘러들어와 그는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졌다. 그러한 자리에서 그는 부르짖으므로 피곤하며 목이 마르고,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그의 눈이 쇠하였다. 무고히 그를 미워하는 자가 그의 머리털보다 많고, 무고히 그의 원수가 되어 그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여 그가 취하지 않은 것도 물어주게 되었다. 심지어 그의 형제에게는 객이 되고 그의 모친의 자녀에게는 외인(外人)이 되었다(시 69:8). 성문에 앉은 자가 그를 말하며, 취한 무리가 그를 가져 노래까지 하였다(시 69:12).
이러한 자리에서 그는 자기를 비난하는 자들에 대하여서는 일체 귀머거리와 벙어리가 되고 오직 “여호와여” 열납하시는 때에 나는 주께 기도하는 방법으로(시 69:13)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말하는 벙어리가 되었다.
시 109:1-5에서 다윗의 원수들은 다윗을 4가지 면에서 괴롭혔다. ①악한 입으로(시 109:2) ②무고히(시 109:3) ③거짓된 혀로(시 109:2) ④사랑을 대적과(시 109:4) 미워함으로(시 109:5), 선을 악으로(시 109:5) 갚았다. 이러한 가운데서 다윗은 어떠한 자세를 취하였던가? 나는 입과 혀가 없느냐고 하면서 그들에게 대들었는가. 아니다. 자기를 괴롭히는 그들에게는 일체 귀머거리와 벙어리를 지키면서 오직 “나는 기도할 뿐이라”(시 109:4)의 자세, 즉 하나님 앞에서만 입을 여는 말하는 벙어리의 자세를 취하였다.
“나는 기도할 뿐이라”가 히브리어로는 “나는 기도다”이다. 다윗 자신이 기도하는 말은 무슨 뜻인가? 다윗은 바로 기도하는 것만으로 그의 특색을 가진 사람이란 뜻이 아닌가. 다윗은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들의 비난에 대하여는 일체 귀머거리와 벙어리로 지내다가 오직 이 모든 괴로움을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로만 해결하려는, 즉 기도하는 것만을 특색으로 가진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기도다”이다.
필자는 우스갯소리로 목회자의 고막은 조금 두꺼워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목회자의 귀에는 험한 말이 말할 수 없이 많이 들어온다. 목회자의 고막이 얇으면 그 고막이 터지고 만다. 고막이 터질 정도로 험한 말이 한없이 들려올 때 목회자는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면서 이렇게 변명하고 저렇게 변명하는 일이 목회자가 하는 일이 아니다. 이때 목회자는 말하는 벙어리가 되는 것이다. 우선 다윗처럼 귀머거리가 되어야 한다. 이 말 저 말 다 듣고 신경의 건드림을 받으면, 아무래도 인간인지라 말도 하게 된다. 그러니 다윗처럼 아예 귀머거리가 먼저 되어야 벙어리가 될 수 있다.
다윗처럼 내 생명을 찾는 자, 나를 해하려는 자가(시 38:12) 괴악한 말을 하며, 종일토록 궤계를 도모하는 자가 많을 때(시 38:12) 우선 귀머거리가 되고 벙어리로 있다가(시 38:13) “여호와여”(시 38:15, 39:4) 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입을 열고 말하는 벙어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대해 주시는가?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주께서 저희를 주의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구설의 다툼에서 면하게 하시리이다”(시 31:19-20)이다. 말하는 벙어리 다윗 같은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주신다.
한나도 다윗처럼 말하는 벙어리였고, 또 그랬었기 때문에 문제의 해결도 받았다. 그는 대적 브닌나의 심한 격동을 인하여 말할 수 없는 번민을 당하던 중(삼상 1:6), 어느 누구에게도 입을 벌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여호와여”(삼상 1:10-11) 할 때 사무엘을 낳는 기적을 이루었다. 욥이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나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고”(욥 16:20)라고 한 것을 보면 욥도 말하는 벙어리였다.
위에서도 말한 대로 목회자의 고막은 조금 두꺼워야 한다. 고막이 터질 정도로 험한 말이 수없이 들려올 때 목회자는 절대로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녀서는 안 된다. 그 모든 말에 우선은 귀머거리가 되고 벙어리로 있다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비로소 입을 여는, 말하는 벙어리가 되는 것이다. 필자는 50년 목회에 이 ‘말하는 벙어리’가 되므로 시 31:19-20의 재미를 많이 경험하였다. 목회자에게 있어서 말하는 벙어리가 얼마나 유효(有效)하다는 것을 실증(實證)하기 위하여 필자 자신의 경험을 보기로 들어보겠다.
때는 1982년도 연말과 1983년도 연초를 사이에 둔 때였다. 일반적으로 교회의 시험이 연말과 연초 사이에 일어나게 되는데 필자가 목회하는 교회에서도 1982년도 연말과 1983년도 연초 사이에 일어났다. 1975년도에 그 교회에 부임했으니 필자가 부임한 지 7년이 지난 때였다. 그때 필자는 그 교회에 부임한 후 최악의 때를 맞았다. 구석에 몰릴 대로 몰려서 더 이상 물러설 여지가 없었다.
그때 필자는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면서 이 변명 저 변명 하지 않고, 고막이 터질 듯한 험한 말에 귀머거리가 되고 벙어리가 되어, 오직 기도의 밀실(密室)에 들어가 “여호와여” 하고 입을 여는 말하는 벙어리가 되었다. 필자가 목회하다가 어려움을 겪으면 보통 3일 금식기도를 하는데 그때에도 3일을 금식하면서 오직 “여호와여”의 입만을 열었다.
필자는 결코 신비주의자도 아니고 신비주의를 용납하지도 않는데, 3일이 끝날 무렵, 이상한 확신이 마음에 떠올랐다. 광산의 광차(鑛車)를 윈치(winch)로 끌어올리듯이, 구석에 몰릴 대로 몰리고 깊은 구덩이에 빠질 대로 빠진 필자를 하나님께서 높은 중앙 고지에 끌어올리시는 것 같은 확신을 주셨다. 바로 시 31:19-20의 경험을 문자 그대로 경험하였다. 그 후 1983년도부터의 목회는 무난한 길을 걷게 되었다. 부끄럽지만 목회는 기도로 한다는 교훈을 처음 경험하였다. 그래서 필자는 말하는 벙어리 다윗을 좋아한다(시 38:12-15, 39:1-4).
필자는 후세 목회자들에게도 이 사실을 권하고 싶다.
* 본문에 인용된 성경은 <개역한글판>입니다.
글/박희천 목사
평양신학교 수학, 숭실대학교와 고려신학교 졸업, 미국 Westminster신학교(Th.M)와 미국 Calvin 신학교에서 수학하였다. 28년간 총신신대원 교수 역임. 현재 내수동교회 원로목사이며, 저서로는『사무엘상·사무엘하 강해』, 『다윗과 솔로몬의 통일왕국』, 『북국 이스라엘』(이상 생명의말씀사) 외 수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