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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소원을 이루는 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 이영례 사모



‘천사 사모’라는 이름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소원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바보 같고, 부족한 저를 사모로 세우셔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울 엄니, 엄니는 너무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요.”
제 딸아이의 말입니다. 맞습니다. 저는 정말 행복한 아내이자 사모이고, 엄마입니다.
우리 남편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권위와 지도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 철학이고, 사상입니다. 그래서 저는 남편 의견에는 무조건 순종하고 인정해주며 세워줍니다.

20여 명의 교인이 전부였던 때부터 2000여 명의 성도들로 성장한 오늘에 이르기까지 저는 새벽예배를 마친 후 어김없이 두부나 작은 생필품 등을 챙겨서 자식들이 도시로 떠나 홀로 외롭게 아침을 맞이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먼저 찾아가 섬기는 일을 빼놓지 않습니다.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소외된 분들과 어려운 이웃, 그리고 교우들의 병문안 등을 꼼꼼히 챙기며 그들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하기에 아마 ‘천사 사모’라는 별칭이 붙여진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매주 등록카드를 개인 노트에 옮겨 적는 일도 빼놓지 않습니다. 인상착의와 특이사항을 꼼꼼히 체크하고, 전도한 분의 이름과 함께 기록한 뒤 등록하고 일주일이 지나기 전에 전화를 드립니다. 자신을 기억해주고, 전화로 안부를 물으며 다음 주에도 꼭 교회에서 뵙자고 하면 세상과 사회에서 낙심했던 분들은 너무 감사해 하고 감동을 합니다. 이렇게 기록해놓은 13권의 등록노트는 소망을 잃었던 분들에게 희망을 주는 메신저가 됩니다. 그래서 처음 발을 들여놓으신 분들 대부분이 교회에 정착하게 되고, 전도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지칠 줄 모르는 전도의 열정
부산 광안남교회의 부교역자로 있으면서 담임목사님께서 총력 전도주일을 공포하시면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우리 부부는 항상 앞장서 전도했습니다. 병원 주사실에서 근무할 당시였는데 환자들에게 “주사 안 아프게 놔 드릴 테니 저 따라 우리 목사님 말씀 들으러 광안남교회에 한번 가요”라고 말하며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서 일주일에 한 번씩은 확인 전화도 드리고, 치료받으러 오시면 치료비도 대신 계산해 드리면서 전도했습니다. 어떤 위암 말기 환자에게는 짧은 점심시간을 쪼개어 택시로 30분 정도 거리를 오가며, 영양제를 주사해드리면서 그분과 온 가족들도 전도했습니다.
큰아이를 임신하고 9개월이 되었을 때까지도 근무를 마치고 무거운 몸으로 얼마나 다녔던지 발뒤꿈치가 갈라져서 양말엔 항상 피가 엉겨 붙어 있던 기억이 납니다. 양말을 벗을 때마다 얼마나 아팠던지… 그렇게 열심히 복음을 전한 결과 89명을 전도하였고 우리 부부가 1등을 하게 되었습니다.
1993년 3월 10일, 세계로교회(구 녹산제일교회)로 부임해오면서 사례비를 모두 털어 김해 축협에 가서 속옷을 사서 온 동네를 다니며 전도를 했습니다. “이번에 새로 온 전도사님 가족인데 녹산제일교회 한번 놀러 오세요. 저희가 열 명을 데려가지 못하면 교회를 사임하고 쫓겨나야 됩니다.” 하면서 가는 곳마다 그런 식으로 전도했는데, 한번은 598명, 또다시 299명, 405명, 198명……. 10년 넘게 우리 부부가 전도 1등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도들이 7만 원짜리 구두티켓 한 장을 주면 그 구두티켓과 돈 5만 원을 다시 봉투에 넣어 “나 선생님(동네 아주머니들이 잘 모여서 노는 집), 친구들 열 명만 모시고 오면 저희가 이 교회에 계속 있을 수 있으니 꼭 부탁드립니다.” 하며 건넸습니다. 그랬더니 “사모님, 이사 가시면 안 돼요.” 하며 그분이 25명을 데리고 오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좋아하지도 않는 자장면이나 짬뽕을 시켜먹고 그릇을 깨끗이 씻어주면서 온 가족을 전도했고, 건강이 나쁜 분들에게 영양제 주사를 놔드리면서 전도를 하기도 했으며, 파밭에 가서 파를 다듬어 주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전도 왔다고 물을 뿌리던 사람, 물에 소금을 타서 우리 몸에 뿌리던 사람, 너나 잘 믿으라며 밀어붙이던 사람, 도끼를 휘두르던 사람, 난데없이 문을 열고 우리 집에 들어와서 뺨을 때리던 사람, 밤중에 술을 먹고 들어와서 행패를 부리며 울고불고하던 사람, 밤 12시에 형님 형수님 보러왔다며 밥을 해달라던 사람, 때로는 차비가 없다며 차비를 달라던 사람, 그 모든 분이 우리의 전도 대상자였고, 결국은 그분들 중 대부분이 전도를 계기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회심하여 장로, 권사, 직분자로 섬기며 지금도 우리와 한 가족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섬기는 삶의 진정한 행복
이렇게 우리가 전도한 분들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후 변화되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손수건이 없어 양말을 벗어 주체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기도 하고, 변화된 모습으로 다시 친구들을 전도하며, 부모님을 모시고 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을 보면 너무 행복하기만 합니다. 우리 교회는 평균적으로 세 사람이 들어오면 한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습니다. 그렇게 전도된 분들을 귀하게 여기며 자녀를 양육하듯이 사랑과 기도, 격려와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며 섬기는 우리의 삶은 행복 그 자체입니다. 목회자 가정이 전 교인의 가장 낮은 자리에 있다는 마음으로 성도들을 섬기고, 그분들의 필요를 채워 드릴 수 있는 삶이 정말 행복합니다.
에베소서 2장 19절의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하신 말씀처럼 모든 교인은 나의 가족입니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새 가족을 많이 등록시킨 구역이나 교구, 또는 반대로 힘들어하는 구역이나 교구 가족을 저희 가정에 초대하여 간단한 식사와 다과로 즐거운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가까이 둘러앉아 직장의 문제점이나 가정에서 힘들었던 점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계기가 되니 한층 더 가까워지게 되고, 다락방과 집안 구석구석을 신나게 뛰어다니며 노는 어린자녀들의 모습에서 즐거움은 배가됩니다.
지금도 전도대상자를 정하여 50번이고, 60번이고 꾸준히 방문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찾아가고, 배려하고, 또 찾아갑니다. 욕을 듣고, 야단을 맞고, 쫓겨나더라도, 복음을 전하는 전도는 우리 하나님의 소원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많은 핍박을 감수하고 받아들이며 전도를 하다 보니, 성도들도 우리를 따라 전도대상자를 끊임없이 찾아가고 또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 부부와 똑같은 방법으로 전도하면서 이 어촌 마을에 하나님의 기적을 이루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헌신된 자에게 부어주시는 사랑의 선물
우리 교회는 지난 5년 동안 2,550명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구석진 촌마을에서 지역주민의 10배 가까운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다는 사실이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힘쓴 결과 우리 하나님은 제게 더 큰 은혜와 섬김과 사랑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사모인 내가 깨어지고, 자존심을 버리고, 보이는 남편을 주님처럼 섬길 때 이 모든 것이 기적처럼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미 없는 다수의 사람을 통해 역사 하는 것이 아니라, 헌신된 한 사람을 통해 역사를 이루심을 굳게 믿으며, 주님께 더한 헌신의 마음이 부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전도는 하면 되고, 안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있는 곳이 어디든지 현실이나 상황을 바라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나아가서 전하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행하십니다. 저같이 부족한 사람이 사모가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지금까지 저를 인도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글/ 이영례 사모
세계로교회는 “좋은 이웃 감동을 주는 사람들” 슬로건아래 이웃을 돕는 일을 적극 실천하는 한 편, ‘세계 복음화’를 위하여 역동적으로 참여하고 행동하는 교회이다. ‘천사 사모님’으로 불리우는 이영례 사모는 남편 손현보 목사(세계로교회 담임)와 1녀 2남의 자녀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