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위력 있는 기도 - 최기채 목사
2011.09.28 15:19
가장 위력 있는 기도
- 최기채 목사(광주동명교회 원로)
아주 바르고 높이 자라는 대나무에도 마디가 총총 들어 있듯이 쭉쭉 뻗어가는 성공적인 목회생활에도 위기라는 마디가 사이사이에 끼어들기 마련이다. 나의 40여 년의 목회 여정에도 위기라고 하는 수 없이 많은 마디가 나타나서 곤두박질을 치려 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급브레이크를 밟아 주는 위력 있는 기도가 항상 옆자리에 있었다. 그 위기를 호기로 전환시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 싸움의 주역은 나였지만 유일한 전우는 역시 아내였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 4:12)”라고 하는 말씀처럼 목숨을 걸고 같이 싸워준 아내를 자랑하는 팔푼이가 되고자 펜을 들었다.
내가 목회를 하는 동안 세 번의 큰 위기가 있었다.
아내가 목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첫 번째 위기였다.
아내는 처음 사귈 때부터 “나는 목사와는 결혼하지 않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자기는 사모의 무거운 멍에를 메고 살아갈 자격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나와 결혼하고 싶거든 신학을 포기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또 아내뿐 아니라 친정의 온 식구들이 목사는 가난하고 고생만 하는 직업이니 나와의 결혼을 승낙할 수 없다고 완강히 버티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사랑하는 사람을 순순히 놓아줄 내가 아니었다. 나는 스토커는 아니었지만 강력한 대시로 결혼을 성립시키고 말았다.
당시 사모가 되겠다는 여러 사람의 프러포즈를 받은 바 있었지만, 사모의 역할이나 그 험난한 길을 이해하지 못하고 덤비는 것 같아 그들의 인품이나 가벌(家閥)에 현혹당하지 않았다. 오히려 목사 사모는 자신이 없다고 솔직히 거절한 아내가 가장 적격자라고 판단했다. 더구나 아내는 심각한 가난이나 고생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기 부친의 뒤를 이어 정치인이 되고자 하는 웅대한 꿈을 꾸고 있었기에 조용히 숨은 그림자로서의 사모의 길은 자신과 맞지 않은 협곡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결혼한 후에도 남편이라는 사람은 날마다 금식기도, 철야기도, 산기도 혹은 부흥회 인도차 집을 비우는 때가 부지기수였다. 그렇게 되니 부부생활을 비롯한 모든 것이 맞지 않았다. 더구나 교회의 모든 일에 전혀 관여치 말고 나의 아내와 5남매의 엄마 역할만 잘해달라는 나의 간곡한 요청 때문에 즐겁게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개척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교회에서 쪼들린 생활을 해야 했다. 한번은 기진맥진한 끝에, “날마다 놀고 있어도 좋으니 제발 목회를 그만두자.”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자기가 직장에 복직해서 자녀 교육이나 생계유지에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나의 유일한 내조자요, 영적 전쟁의 전우인 아내가 이렇게 목회 생활에 적응을 못하니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정말 목회의 꿈을 접어야 할 것인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 시점에 광주의 대표적인 교회를 담임하고 계신 목사님을 모시고 3일 저녁 동안 부흥성회를 열게 되었다. 그때에 아내가 깨어지는 기적이 나타난 것이다. 아내는 한없이 울면서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는 위력 있는 기도를 하기 시작했고, 나는 천군만마와 같은 유일의 전우를 얻게 되었다. 참으로 위력 있는 기도의 동역자를 얻게 된 것이다.
둘째, 내가 모교회(母敎會)의 청빙을 받게 된 때는 교단 분열과 교회가 양분될 위기상황이었다.
당시 교단이 분열되는 시점에 광주 전남지방의 합동 측에 속한 600여 교회 중 거의 대부분이 개혁 측에 합세하거나 중립에 서게 되었고, 광주시내에 있는 교회 중 합동 측 교회는 여섯 교회밖에 남지 않았다. 그 여파로 본 교회도 양 갈래로 균열되어 냉온기류가 흐르고 있어 교회는 일촉즉발의 상태였다. 노회에서는 나를 처벌하기 위해 재판국을 설치해 놓고 위협을 가하고 교인들을 파송하여 목회를 흔들어대며 밤마다 잠을 잘 수 없도록 전파로 겁박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내가 38세에 부임하였을 때 교회는 나를 당회장으로 세워 주지 않고 어린아이 취급을 했다. 당회에서 무슨 안건을 제시할 때마다 “자네가 무슨 경험이 있고 무엇을 안다고 그래? 그것은 안 되는 일이야.” 이렇게 깔아뭉개 버리는 때가 많았다. 그뿐 아니라 권사들은 이른바 영파(靈派)들이 포진되어 있어서 떼 지어 다니며 병자 안수를 하는가 하면 방언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이었다. 이들의 행동은 나의 영적 권위를 인정할 수가 없다는 암시요, 교회를 일방적으로 끌고 갈 수 없게 만들겠다는 위협이기도 했다.
이 같은 내부의 반발이 외부의 정치적 세력보다 더 무서운 압력단체로 군림하고 있었고, 진퇴유곡에 빠진 상태에서 의지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했다. 그러한 위기에서는 정말 힘으로도, 능으로도 안 되고 오직 하나님의 권능밖에는 기대할 것이 없었다. 결국 이런 상황들이 우리 부부를 기도의 장으로 몰아가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그즈음 교회 안에는 건장한 청년이 사탄에게 사로잡혀 흉기를 휘두르며 홀로 계신 자기 어머니를 살해하겠다고 쫓아다니는 절박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자 주일 낮 예배를 마친 후 능력 받은 권사들이 청년에게 붙은 마귀를 쫓아내려고 15명이나 떼 지어 가는 것이었다. 나는 당회를 마치고 식사를 하고 청년의 집으로 찾아갔다. 능력 받았다고 자부하는 권사들이 청년을 가운데 앉혀놓고 열심히 찬송을 하는데, 청년이 부엌에서 칼을 가지고 나와 휘두르면서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욕설을 퍼부으며 고함을 치니 권사들은 초주검이 되어 있었다.
바로 그때 내가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와 눈이 마주친 청년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며 와들와들 떠는 것이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인마, 무릎 꿇어!” 하니까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닌가? 칼을 빼앗아 들고 머리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해 주었다. 그리고 “권사님들, 염려 놓으시고 이제 갑시다.”하고 데리고 나왔다. 그 일이 있은 후 파워 있는 권사님들이 “최기채 목사는 보통 목사가 아니야.”라고 입에서 입으로 말이 전해져 온 교회에 퍼짐으로 어려운 위기가 호기로 바뀌는 기회가 되었다. 그때에도 말없이 오직 눈물로 조용히 무릎 꿇던 아내에게 한없는 사랑과 존경을 드렸다.
셋째, 교회가 부흥하고 목회의 안정권에 들어선 그때가 가장 심각한 위기이다.
교회가 성령 충만하면 상대적으로 사탄의 역사도 강력하게 도전하기 마련이다. 목회자에게 있어 최대의 위기는 개척단계나 가난에 찌들고 빚이 많아 이자 갚기도 어려운 때가 아니고, 교회에서 배척을 받을 때도 아니다. 그리고 외부 세력이 가해 오는 박해도 아니다. 환난이나 핍박이나 궁핍 같은 고난은 기도로 이겨내고 버틸 수가 있다. 그러나 목회자에게 가장 무섭고 치명적인 위기는 목회의 기반이 만세반석처럼 든든히 서고 재정도 풍부하고 자기가 의도한대로 교회가 따라주는 안정된 시기, 이른바 목회에 성공했다고 자타가 인정할 만한 그때가 가장 위기 중의 위기라고 생각한다. 목회에 거치는 돌이 다 제거되고 일사천리 격으로 형통할 그 시점에 가장 위험한 복병이 첩첩이 매복되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가장 무서운 복병 몇 가지만 들어보면,
자만해지기 쉬운 것이다.
교회가 어려우면 무릎으로 섬긴다. 그러나 교회가 부흥하고 발전하면 머리로만 섬기려 한다. 그리고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하는 겸허한 태도는 없어지고 사울이 자기를 위해 기념비를 세웠던 것처럼 모든 성공을 자기에게 돌리려는 유혹에 이끌리기 쉽다. 그리고 교회를 섬기려 하기보다 군림하려 하는 무서운 시험에 들기 쉽다.
타성에 젖거나 나태해지기 쉽다.
교회가 침체될 때에는 무엇인가 개혁하고 창의적으로 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교회가 안정되면 타성에 젖거나 나태해지기 쉬운 법이다. 교회가 든든히 서고 안정되면 기계적으로 움직이게 되고 요령과 경험이 앞서게 된다. 그러다 보면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신앙이 미지근해지면서 자칭 부자요 부족한 것이 없다 하며, 자신의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수치를 알지 못하는 영적 맹인이 된다.
각종 유혹에 노출되는 위험한 시점인 것을 깨닫지 못한다.
성공적인 목회자라는 개념이 무엇일까? 교회당을 크게 짓고 많은 성도가 모이고 헌금이 많아 재정이 풍성하고 교육을 잘 시키는 것 모두가 부흥한 교회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성공은 목회자가 자기 관리를 끝까지 잘하는 것이다. 바울이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라고 한 것처럼 끝까지 신앙의 정절을 지키는 것이다.
성공한 목회자에게는 금전의 유혹, 이성의 유혹, 명예와 권력의 유혹, 탐심의 유혹, 쾌락의 유혹, 여행의 유혹들이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내가 이러한 유혹을 차단하고 주님 앞에, 그리고 만인 앞에 떳떳이 설 수 있었던 원동력은 고맙고 사랑스러운 내 아내의 조용한 눈물의 기도였음을 고백한다. 그밖에도 수 없이 나타나 앞길을 가로막아선 그 위기들은 언제나 호기를 만드는 발판이 되고 목회의 기반을 공고히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되어왔다. 그때에도 아내의 기도는 장마철에 지축을 흔드는 천둥소리처럼 요란하거나 신비적 체험을 많이 하는 기드온의 기도가 아닌 밤새도록 소리 없이 내려서 메마른 선인장의 이파리에 스며드는 이슬같이 잔잔한 눈물의 기도였다.
글/ 최기채 목사
광주동명교회 원로목사이며, 대한예장(합동) 총회장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시집 「내 영혼의 노래」외 7권과 신앙서적 및 수필집 다수가 있으며, 단편소설 「나누어 가진 눈」외 9편을 발표하였다.
광주동명교회 원로목사이며, 대한예장(합동) 총회장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시집 「내 영혼의 노래」외 7권과 신앙서적 및 수필집 다수가 있으며, 단편소설 「나누어 가진 눈」외 9편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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