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의 목회 서신] 사랑에 빚진 자 - 김영태 목사(청북교회 원로)
2019.12.18 17:22
사랑에 빚진 자
김영태 목사(청북교회 원로)
나는 신학자도 아니다. 지식이 많은 유능한 목회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길거리에 채여 굴러다니는 돌멩이 같은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목회자다. 나 같은 목회자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 글을 써 달라 하니 그저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라 생각하고 부족한 사람의 생각을 고백처럼 써 본다.
나는 자랑할 것이 없는 허물이 많은 목회자였다. 항상 이기적이었고 나 중심으로 살아왔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셨고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내게 부어 주셨다. 바울의 말처럼 사랑의 빚을 많이 진 자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최소한 이렇게는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살아왔던 이야기를 남기고자 한다.
첫 번째는 하나님 중심이다
나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요, 지금도 나와 같이 계시고, 나를 인도하시고, 부족하고 넘어질 때 나를 붙들어 세워 주심을 믿는다. 언제나 내 곁에 계심을 믿기에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좋아하지만, 사실 두려운 때가 더 많았다. 무서워서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분에게 누가 될까 봐 항상 두려운 것이다.
나는 아침의 시작 기도를 “오늘도 저의 모든 삶을 통하여 하나님 영광을 받으소서. 내가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내 눈빛 하나의 움직임 속에서도 하나님 영광 받으소서. 그렇게 살도록 나를 인도하옵소서”라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루를 시작함에도 나는 하루 동안 수도 없이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행동하고 말하며, 나 중심으로 살고, 내 고집대로 살고, 하나님의 영광은 언제나 뒷전으로 사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그래서 저녁 기도는 언제나 반성과 회개와 감사의 기도이다.
회개는 잘못 살아온 하루의 반성이라면 감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 감사하는 기도이다. 이 모든 기도는 은퇴한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아니 지금은 더 절실하다. 다니엘처럼 하루 세 번은 못하지만, 아침이면 동편 창을 열고 하루를 시작하게 하심을 감사하며 하나님 아버지를 기대하면서 이 기도를 계속하고 있다.
두 번째는 말씀 중심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해야 하기에 무엇보다 말씀이 살아 있는 교회, 말씀의 역사가 나타나는 교회, 말씀이 삶에서 보여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시작은 설교에 있다고 생각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접할 수 있는 가장 많은 기회가 설교요,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설교의 자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설교하기가 두려웠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내 소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장하기 쉽고 세상의 이야기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전하는 누를 범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나는 말씀에 집중하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어떻게 이해시킬까를 가지고 고민을 많이 했다. 비유를 자주 사용하여 말씀을 전하신 예수님의 마음은 듣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하기 위해서 하심이 아닌가 생각한다.
목회 초기에 나는 설교를 잘해 보려고 이 책 저 책에서 좋은 말들, 철학적인 용어들을 많이 인용하여 지식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설교를 많이 했다. 어느 학자가 이렇게 말하고, 어느 목사님은 이렇게 말하고, 누구는 이렇게 해서 이런 은혜를 받았고 하는 설교를 많이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내 것이 하나도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껏 남의 것만 가지고 설교를 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말씀이 없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가 없다.
그때부터 나는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을 구하기 시작했다. 성경말씀에 집중하고 바로 알기 위해서 주석을 참고하면서 말씀들을 받아 적었다. 내 가슴이 뛰고 감동할 때가 많았다. 이제는 “누가 이랬다더라”가 아니고 “하나님이 이 주일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니 힘이 생겼다. 이제는 “누가 이렇게 믿는다더라”가 아니고 “내가 그렇게 믿는다”고 고백하게 되었다. 그리고 설교는 성도들에게 들으라고 하는 설교보다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다. 매 주일 설교는 나의 신앙 간증과 같은 것이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해야 했기에 토요일은 오직 설교에만 집중했다. 설교가 완성되기까지 교회 서재에서 밖을 나가지 않았다. 설교 준비가 되고 내 마음에 감동이 오면 설교를 가지고 집으로 가서 가족들 앞에서 설교를 했다. 나와 가장 가까운, 나의 사생활 하나까지 다 알고 있는 가족들이 감동을 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성도들이 감동을 받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가족들의 반응을 보고 난 다음에 나는 교회 서재로 다시 와서 수정하기도 하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기도 하고, 주일 설교단에 설 때 내 소리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만 전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 주시기를 기도하면서 교회에서 밤을 보내고 주일을 맞이했다.
그렇게 했음에도 돌아보면 나는 수많은 실수와 오점투성이었다. 감사한 것은 그런 나를 하나님은 사용해 주시고 우리 성도들이 그 설교를 듣고 은혜 받게 하신 것이다.
세 번째 전도 중심이다
나는 교회는 전도하는 교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도에 집중하며 목회를 했다. 교회가 존재하는 한 전도는 멈출 수가 없는 주님의 명령이다. 살아 있는 교회는 전도하는 교회이다. 전도하는 교회는 성장한다. 문제는 교회에서 전도가 멈춘 것 같은 생각을 가지게 한다. 교회 성장의 시대가 지나갔다고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교회에 전도가 멈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한국 교회는 어른들을 상대로 하는 전도도 필요하지만, 어린이와 청소년 전도가 더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교회의 미래는 어린이”라는 말을 누구나 다 알고 있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어린이 전도에 관심을 가진 교회는 흔하지 않다. 그러면서 한국 교회 미래를 걱정하고 교회가 부흥하기를 원하고 있다. 나는 지금이라도 제발 어린이에게 집중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앞으로 30년, 50년 뒤의 한국 교회는 어떨까? 암울하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천지가 개벽하는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데 우리네 교회학교는 아직도 7,80년대를 넘어서지 못한다. 세상은 광속으로 가고 있는데 교회의 속도는 맨발로 달리는 기분이다. 어린이 교육에 있어서 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교회도 없고 어린이 교육에 전문 인력도 없다. 세상은 전문인을 키우는 교대가 있고, 사대가 있고, 유아교육과, 청소년 교육학과가 있는데 교회는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신학과, 교육과밖에 없다. 교육 시설도 뒤떨어져 있다. 교재도 아날로그 시대의 교재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아이들이 교회를 떠난다, 세상이 변했다, 아이들이 안 온다는 말만 하고 있다. 교회가 관심이 없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교회가 전도에 눈을 떠야 한다. 더욱 교회학교를 살리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교회는 미래가 있다고 생각한다.
네 번째 끝으로 예수님을 닮아 가는 일이다
예수님은 오셔서 섬기러 왔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섬긴 것처럼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의 섬김은 세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버림이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셨다.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신 것이다. 섬김은 여기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예수님처럼 섬기려면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해야 섬김을 시작할 수 있다. 기득권 포기 없이는 섬김의 자리로 갈 수 없다.
둘은 내려옴이다. 하늘 보좌를 버리신 주님은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오셨다. 자신의 자리는 버릴 수 있다. 세상에는 기분 나빠서, 또는 어떠어떠한 이유 때문에 자리를 내려놓은 사람들이 있다. 문제는 자리만 내놓았지 내려오지를 않는 것이다. 내가 그래도 이런 사람인데 하고 버티는 것이다. 내려와야 한다. 그래야 섬김으로 갈 수 있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가장 낮은 세상에 오셔서 모두를 섬기셨다.
셋은 나눔이다. 섬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주님은 내려오셔서 모든 것을 주고 가셨다. 생명까지도, 피 한 방울까지도 다 주고 가셨다. 나는 이 부분에서 무엇을 주고 갈 수 있을까? 고민을 하며 지금도 살고 있다. 이 부분은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주를 따르겠노라고 고백한 목회자들뿐 아니라 교회에서 안수받은 모든 항존직 직분자들이 깊이 생각할 부분이요, 한국 교회가 고민하며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한다.
섬김은 말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모든 삶에서 버림과 내려옴과 나눔이 이루어져야 진정한 섬김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은총이 이 글을 보는 모든 분에게 임하시기를 기도하며 글을 마친다.
글/김영태 목사
장로회신학대학원, 풀러신학교 석사, 트리니티신학교 목회학박사, 한남대학교 명예철학박사로 수학. 주요 역임으로는 바른목회실천협의회 회장, 오이코크레딧 한국위원회 위원장, 대전신학대학교 이사장,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제92회), CTS 기독교TV 공동대표 등으로 사역하였다. 현재 청북교회 원로목사이며 한아봉사회 이사장, 필리핀 아태장신대 총장으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