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개인주의 신앙과 물질 만능주의를 넘어서 - 화종부 목사 (남서울교회 담임)
2021.01.21 11:20
개인주의 신앙과 물질 만능주의를 넘어서
화종부목사 (남서울교회 담임)
아담의 타락과 개인주의
창세기 3장의 타락 본문에 보면 사람이 죄를 지은 후에 하나님은 여느 때처럼 아담을 찾아오셨으나 그곳에 심각하게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느껴진다. 자신의 최고의 행복이었던 하나님과의 사귐과 교제를 꺼려하여 피하고 숨는 아담을 보게 된다. 행복과 조화가 가득했던 곳이 소외와 갈등, 두려움 과 회피의 장소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피하고 숨 는 아담을 향하여 하나님은 “네가 어디 있느냐?” 물으셨다. 숨은 아담과 하와를 찾지 못하시기 때 문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입으로 죄를 자백함으로 용서하심을 얻을 기회를 주시고자 함이며, 책망하고 부끄럽게 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고 살길을 열어 주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 받아 하나님을 대리하는 지위에 만족하지 못하고 유혹에 넘어가서 마음을 높 여 하나님처럼 되려고 한 교만과 악을 돌이켜 은혜의 자리로 나아오도록 초대하셨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것처럼 아담과 하와는 책임지고 서로 사랑하며 자신의 허물과 죄를 자백하기보다 궁색한 변명과 서로를 향한 책임 전가로 일관한 다. 아담은 자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벗음을 부끄러워하여 숨었다고 말했으나, 사실은 죄 로 인하여 하나님의 낯이 두려워 피하게 된 것인데 죄를 축소시킴으로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문제의 핵심을 콕 찍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었느냐?”고 물으시며 다시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와를 탓한다. 아담은 아내인 하와에게 책임을 전가할 뿐 아니라 은근히 그리고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탓하고 비난하기까지 한다. 그처럼 사랑 하며 소중히 여기던 아내를 탓하고, 찬양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마저 비난하며 자 신만 보호하고 지키려 드는 것이다. 하와 역시 자 신의 허물과 죄를 인정하기보다 뱀의 유혹과 꾐을 핑계 대며 자신을 합리화하기에 급급하다.
이어지는 창세기 4장에 보면 죄가 사람들의 삶에 들어와 시기와 미움, 분노와 살인으로 발전되어 가면서 가정이 깨어지고, 죄가 사회 전반으로 퍼 져나가며 점점 커지고, 악함이 더해져 가는 것을 보게 된다. 사랑으로 서로를 보호하고 위하여 희생하기보다 책임을 회피하며, 비난을 면할 구실만 찾으며, 미워하고 살인하여 결국은 해가 되도록 자신만 위하며, 개인주의와 자기중심적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보인다.
죄는 우리 삶에 4중적인 관계의 단절을 가져왔다. 가장 중요하고도 핵심적으로 만복의 근원이신 하 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깨어져서 끊임없는 자원의 고갈과 세상의 종 됨을 경험하게 된다. 다음으로 는 자기와 자기의 분리로서 사람들은 늘 자신에 대 한 일정한 정도의 불만족을 가지게 되며 그로 인해 고통을 겪다가 마침내 영원한 죽음에 들어간다. 세 번째는 자기와 이웃과의 분리로서 가장 가까운 아내와 남편 관계조차도 사랑과 감사, 희생과 섬김보다 미움과 분노, 탓과 원망이 들어오게 되었다. 마지막은 자연과 사람의 분리로서 땀 흘려 일 하나 가시와 엉겅퀴가 나서 겨우 먹고살게 되는 아픔과 질고를 겪게 된다.
교회, 관계의 회복과 화평을 위한 하나님의 대안
이런 세상을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 구주를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달아 죽 이심으로 우리의 삶에 들어온 이런 4중적인 관계 의 단절이 극복되고 참된 생명과 하나 됨의 영광 을 회복하셨다. 예수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평케 하심으로 모든 깨어짐을 이기게 하셨고, 특히 우리와 다른 사람 사이를 화평케 하셨다. 에베소서에 따르면 격렬하게 대립하던 두 대표적 그룹 인 이방인과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교제하고 연합하는 새로운 시대를 여셨다.
먼저 사람과 사람을 하나 되지 못하게 하는 막힌 담을 허무심으로 화평 중에 연합하고 하나되는 일이 가능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셔서 율법의 말씀을 맡기심으로 복의 근원과 통로가 되게 하셨다.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진리가 보전되고,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은혜와 사랑이 드러나서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죄로 인한 개인주의와 자기중심주의로 인하여 이런 귀한 부르심을 자신들을 위한 편애로 변질시켜 스스로 특별 하고 의롭다 여기면서,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은 개요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함으로써 은혜와 축복 인 율법이 오히려 이들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와 담벼락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구주가 이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영단번(once for all)에 막힌 담 을 허시고, 이제는 누구든지 이방인이든 유대인 이든 차별하지 않으시고 자격이나 공로나 조건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값없이,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구원에 이르는 새로운 시대를 여셨다. 오늘 우리의 삶 속 에도 여전히 많은 장애를 만나게 되며 사람들 속 에 있는 다양한 차이들이 편견과 편애로 변질되는 것을 경험하지만, 구주 예수의 은혜 안에서 문화 적, 인종적, 종교적 편견들과 담들이 다 폐하여졌다는 사실을 견고히 붙들고 화평케 하는 삶을 살 아야 한다.
장벽들만 무너진 것이 아니다. 더 적극적으로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더 이상 둘이 아니라, 한 새사람이 되도 록 지으셨는데 그것이 바로 교회이다. 성령으로 거듭나서 천지 창조와 같은 새로운 창조가 우리 삶에 일어나고, 자기밖에 모르던 우리들이 이웃들을 자 신의 한 부분으로 여겨 사랑하고 희생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신 것이다. 우리를 조금 수정하셔서 더 낫게 만드신 것이 아니라, 이전에는 전혀 없어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전적으로 새롭고 다른 한 사람으로 창조하셨는데 그것이 성도들이며, 그 들이 모인 교회인 것이다.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 그분은 살과 피로 된 몸 을 가지고 계셨으나,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하 나님 우편 보좌에 앉아 계신 지금은 믿는 성도들 로 구성된 교회를 당신의 몸으로 가지고 계시며, 새로운 몸인 이 교회를 통하여 지금도 이 땅에서 일하고 계신다. 교회는 단순히 사람들이 모여 만 든 것이거나 우연의 산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만세 전부터 모든 피조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로 연합시키시고 다시 통일되게 하시려는 하나님 의 구원 경륜의 가장 중심에 서 있는 것이다.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아 거듭나면 그때부터 우리는 더 이상 한 개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체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는 하나이다.
점점 개인주의화 되고 파편화되어 가는 세상을 향 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바로 교회이며, 이로 써 연합되고 하나된 교회를 통하여 더불어 살고 화평케 하는 삶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저 싸우지 말라거나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라 하심으로 평화가 가능하지 않음을 아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새 사람으로 지어서 한 피가 흐르고 한 몸과 한 지체 가 되게 하심으로 자신의 삶에, 나아가 다른 이들 과의 관계에 평화를 회복시키시는 것이다.
성도들의 의견이 항상 일치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초대교회 시절조차도 많은 불일치가 있었음 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런 많은 다름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중심에 두고 자신만 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함으로 자기보다 다른 이를 낫게 여기고, 희생하며 섬기고, 기꺼이 종이 됨으로 함께 산다. 이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나 그래서 더욱 중요하며, 교회와 성도는 함께 일하고 서로를 섬기고 희생함으로써 개인주의가 팽배해져 가는 세상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화평을 증거하며 사는 것이다.
아무리 탁월하고 훌륭해도 어느 한 지체가 몸 전체 와 동일시될 수 없으며,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이더라도 필요 없는 지체는 하나도 없는 것이 교회 이다. 혼자서 다 하려고 하거나 혹은 마음에 들지 않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해서도 안 된다. 각 지체들이 상호 후원하고, 서로 의존하며, 더불어 행해야 한다.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더 요긴한 줄 알고, 덜 귀하게 보이는 지체들에게는 특별한 관심을 베풀며, 아름답지 못한 지체들에게 는 아름다운 것으로 입히고, 부족한 지체들에게는 존귀를 더하여 몸을 고르게 하고, 결코 분쟁이나 나뉨이 없이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봄으로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웃는 자와 함께 웃는다. 이것이 성도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며, 개인주의화 되어 가는 세상을 치료하는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능력이다.
물질 우상 시대에 흘려보내고 나누는 물질 사용
성도들은 한 몸을 구성하는 지체들에게 일어나는 일이 반드시 자신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성도들과 더 나아가 불신 이웃들과도 바른 관계 안에서 산다. 자기 개인만 기쁘게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 곧 내가 풍성해지는 지름길이며, 다른 사람을 존귀 하게 여기며 섬기는 것이 성도들의 삶의 방식이 라 여기며 산다. 교회와 이웃에 가난한 자가 있으면 물질을 선뜻 나누고, 아픈 자가 있으면 찾아가 위로하여 함께 살고 더불어 산다.
이런 삶을 위해 돈과 재물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 이 필요하다. 소수가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는 데 반하여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들이 기본적인 생필품조차 소유하지 못하고 궁핍하게 살아가는 시대다. 각종 매체는 소비와 소유가 사람의 삶에 행복을 가져온다고 연일 외쳐 댄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소비하려는 욕구 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시대에 성도인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미 허락하신 수많은 선물과 복에 대하여 감사하며, 소유하지 못한 것들에 대 한 미련을 내려놓고 자족해야 한다. 또한 모든 것 들을 후히 주셔서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 하고 신뢰하며(빌 4:12,13), 작은 것이라도 나누 고 흘려보내며 살아야 한다. 사람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파괴되는 궁핍을 반대하고, 그것을 조장 하는 사회적 불의를 묵인하지 않으며, 사람의 존엄성이 보존되고 높여지도록 재물을 적절히 사용 하고 나누며 살아야 한다. 물질적인 소유는 영원 하지 못하며, 기대하는 것과 같은 만족과 온전함 을 결코 줄 수 없으며, 죽을 때는 그 무엇도 가져 갈 수 없으므로 허락하신 재물을 이웃을 위하여 잘 흘려보내고 나누며 사는 것이다.
성경은 부자가 되는 것이 죄이기 때문에 부자가 되지 말라거나, 모든 부자들에게 재물을 모두 다 포기하고 버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성도들도 부 자가 될 수 있으나 재물의 위험을 잘 알고 이겨 내어 그 부를 필요한 곳에 잘 사용하라 말씀하신 다.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행하라 하신 다. 돈을 소유하고 쌓아 둠으로 자신의 미래를 대 비하고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잘 사용할뿐더러 필요한 사람들에게 흘려보내고 나누어 줌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 내가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받거나 높임을 받는 것, 자기를 과시하고 주목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으로 하 나님을 높여 영화롭게 하고, 지극히 작은 자들 곧 선교사들과 감옥에 갇힌 자, 주리고 목마른 자, 병든 자, 나그네, 외국인, 고아와 과부, 여행자 들을 섬기고 사랑하는 데 사용하며 살아야 한다.
모든 재물을 언제나 다 나눠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려운 시기를 위해 잘 대비하고, 자녀들과 노후를 위해 적절히 준비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이유들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돌아볼 수 없게 되어서는 안 되며, 잉여의 다른 돈 이 들어올 때만 그런 일을 하려고 해서도 안 된 다. 우리는 때로 우리가 궁핍해지도록 나누고 베풀며 살아야 한다. 우리 구주께서 우리를 위해 자 신을 온전히 주신 것처럼, 값비싼 향유의 옥합을 깨뜨린 여인처럼, 사 랑은 기본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낭비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희생이 없이 유익만 누리기를 원하고, 수고하여 다른 사람들 섬기기보다 자기를 기쁘게 하고 높이기 원하는 이기적인 시대를 산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과거 그처럼 풍성하게 누렸던 수고와 희생에 따르는 감격을 상실하고 산다.
물질에서 손해를 보지 않고, 시간과 섬김에서 당 장 눈에 보이는 희생은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작 은 것을 위하여 더욱 귀한 것들을 다 상실하고 사 는 것이 오늘 우리들이다. 자기를 중심에 두고 자 신만을 위하는 물질 사용으로 자신을 위하며 사 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에게도 해가 되고 다른 사람에게도 불행을 가져다주는 삶이 오늘 우 리들의 삶이다. 그래서 현대인들의 삶이 그처럼 메마르고 아프다.
성도답게 내가 먼저 희생하고 손해 보며 내가 더 많이 수고하고 섬겨 내 수중에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것 같으나, 사실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은혜의 역설이 우리 모두의 삶에, 조국 교회에 풍성하게 경험되도록 살아야 할 것이다.
글/화종부 목사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총신대학교대학원 졸업. 영국 에든버러대학 교회사 석사로 수학하였다. 내수동교회 대학부 전임 사역과 옥스포드 한인교회 담임목사, 제자들교회 담임목사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남서울교회 담임목사이자 WEC 이사장, GBT 이사, 한국피스메이커 이사, 통일선교아카데미 공동대표로 사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