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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설립과 초기 기독교회의 확산

 

이상규 교수(고신대학교 신학과)

 

뒤돌아보면 이 땅에 교회가 설립된 지 2천 년이 지났다. 교회는 누구에 의해 설립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을까? 1세기 당시 역사 기록에서 단 한 번도 언급이 없었던 나사렛, 그래서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느냐고 했던 그 나사렛의 종교가 어떻게 오늘의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하게 되었을까? 2천 년이라는 그 긴 세월, 그 숱한 고난과 박해의 여정에서도 쇠하지 않고 오늘에 이르게 된 생명력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인간의 삶에 소망을 주고 사회와 문화를 변혁시켰던 복음의 힘은 무엇일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몇 차례에 걸쳐 교회 역사의 긴 강줄기를 따라가 보고자 한다.

 

기독교회의 탄생과 전파

어떤 이들은 예수님은 교회를 설립할 의도가 없었는데, 바울이 교회를 설립했다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은 교회 설립의 배경이자 기초가 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가르침, 곧 복음 전파로부터 시작되었다. 그의 생애와 사역, 천국 복음의 전파,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부활 이후 오순절 성령강림은 교회의 탄생의 직접적인 시작이 된다. 오순절 날에 있었던 언어의 일치 사건(2:-4)은 언어의 장벽, 사회적 계층, 민족의 한계를 넘어서 전파되어야 할 복음의 우주성을 보여주었다. 오순절 성령을 체험한 이후 제자들의 삶은 달라졌고, 저들이 십자가의 증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부활을 전파했을 때 회심의 역사가 일어났고, 예루살렘교회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오순절을 교회의 생일(dies natalis)이라고 불렀다. 기독교는 관념이나 사색의 종교가 아니라 역사의 한 시점에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에 기초한 역사의 종교이다. 교회는 1세기 유대적 배경, 헬라 문화적 환경, 그리고 로마의 정치적 상황 가운데 설립되었고, 점차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복음의 가르침을 따르던 제자들은 예수님을 주님(κυριος, kyrios)이라고 부르며 새로운 삶을 추구하였다. 이들은 곧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렸고(11:26), 후일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와 구별되어 나사렛파’(Nazaraeans)라고 불렸다.

사도행전은 교회의 설립 이후 첫 30여 년간의 역사를 보여주는 최초의 교회사라고 할 수 있는데, 복음의 전파 과정을 1(13:4-14:26), 2(15:36-18:22), 3(18:23-21:14) 전도여행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복음 전파 과정에서 바울은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다. 기독교는 처음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소아시아 지역으로 확산되었고, 안디옥을 거점으로 하여 아시아와 유럽으로 전파되어 당시 제국의 수도였던 로마에까지 전파되었다. 즉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기독교 복음은 사회적 계층, 인종적 한계, 문화의 벽을 넘어 이방 세계로 퍼져 나갔다.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안디옥에서 에베소 드로아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테네 고린도로, 그리고 로마로 전파된 복음 전파의 과정을 지리적으로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기독교의 주된 흐름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쪽으로 전파되는 서진(西進)의 과정이었다는 사실이다.

 

로마제국에서의 교회, 교회 성장

기독교회는 처음부터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매우 불리한 조건 하에 있었다. 유대인들은 기독교를 나사렛 이단으로 간주하여 탄압했고, 정통파 사울은 기독교를 진멸하고자 했다. 로마인들이 볼 때 기독교 복음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16:21)이었다. 헬라인들이 볼 때 기독교는 낯선 것이었고 어리석은 것이었다(고전 1:23). 그래서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불법의 종교’(Religio illicita)였다. 따라서 탄압을 받았고 공개적인 전도가 불가능했다. 흥미로운 점은 알렌 클라이더(Alan Kreider)가 지적하듯이 초기 교회지도자들이었던 교부(敎父) 문서에서 전도에 대한 권면이 없다는 점이다. 공개적인 기독교 전파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불법의 종교였으므로 회집의 자유를 누리지 못했고, 정상적인 재산 취득이 불가능했다. 따라서 교회당 건물도 소유하지 못했다. 당시 교회는 가정 중심의 교회였으므로 이를 보통 가정교회’(domus ecclesiae)라고 부른다. 가정에서 드리는 예배는 대중들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교회 공동체의 집회소로 건물이 최초로 발견된 때는 256년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두라-유로포스(Dura-Europos)에서였다. 고대도시 두라(dura)를 헬라인들은 유로포스(Europos)라고 불렀는데, 이곳은 영국군대에 의해 1920년 발굴되었다. 바로 이곳에서 최초의 교회당 건물이 발견된 것이다. 이때의 예배당이 230년경에 세워진 것으로 보더라도 예루살렘에 교회가 설립된 이래 2백여 년간 공식적인 집회소로써 교회당을 갖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상당한 희생을 요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신속하게 당시 세계로 확산되었다. 사도행전에 보면 첫 수세자가 3천 명(2:41)이었으나 곧 남자만 5천 명으로(4:4) 확대되었음을 보도하고 있다. 물론 이 수를 수학적인 수로 볼 수 없고 문학적인 수라는 주장도 있다. 대표적인 학자가 로드니 스타크(Rodney Stark)라는 미국의 학자이다. 사도행전에서는 더 이상 교인 수를 명시적인 숫자로 말하지 않고 더 많은 이들이(6:1) 개종하여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과 무명의 전도자들(8:1)에 의해 기독교는 타 지역으로 전파되었는데, 도시 지역에 먼저 기독교가 소개되었고 점차 중소 지역과 농촌 지역으로 전파되어 갔다. 베드로전서에서는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라는 말로 인사하고 있는데, 이 바벨론을 로마로 보는 학자들이 있는가 하면, 로마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이 아니라 지역적인 바벨론으로 보는 학자들도 상당수 있다. 그래서 115년경에는 로마제국의 거의 모든 지역으로 기독교가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2세기 초 플리니(Pliny)는 트라이얀 황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미신(기독교)의 전염력은 도시들에만 미친 것이 아니라 이미 마을과 시골에까지 미치고 있습니다라고 썼고 이교의 신전들이 머잖아 황폐화될 것이라고 두려워했다. 2세기 후반의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편지라는 문헌을 보면 그리스도인 수가 날마다 늘어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고, 3세기 중반의 오리게네스도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기록했다. 이렇게 볼 때 기독교는 넓은 지역으로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예일대학교의 고대사학자인 램지 맥멀렌(Ramsy MacMullen)1세기 말에서부터 콘스탄틴 황제가 회심한 312년까지 세대마다 50만 명씩 증가되었다고 주장했다. 로마황제 율리안 2세가 이교를 부흥시킴으로써 교회를 대체시켜 보려고 시도한 일이 실패한 시기(360~363)에 이르러서 기독교는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복음의 신속한 전파, 그 요인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어떻게 박해 하의 상황이라는 불리한 여건 가운데서도 기독교가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볼 수 있다(4:4).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나 오리게네스도 이런 견해를 피력했다. 오리게네스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가르침을 받아드릴 수 있도록 모든 민족들을 준비시키셨습니다. 모든 민족들이 로마의 한 황제의 지배를 받도록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민족 간에 상호 적대적인 태도가예수께서 가서 모든 민족을 가르치라고 하신 예수님의 분부를 사도들이 실천하는데 큰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만일 여러 왕국이 난립하여 있었더라면 예수의 가르침이 온 세계로 퍼져 나가는데 난관이 생겼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4세기의 역사가인 유세비우스는 기독교 복음이 잘 전파될 수 있는 시대적 상황을 복음의 준비’(praeparatio evangelica)라고 불렀다. 이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영국 교회의 선교사학자인 스테펀 닐(Stephan Neill)은 복음이 신속하게 전파될 수 있었던 이유를 6가지로 설명했는데, 첫째는 복음 전파에 대한 뜨거운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둘째는 복음을 받아드리기에 용이했던 수용적 배경을 들고 있다. 그가 말하는 수용적 배경이란 당시 제국이 한 황제의 통치 하에 있었다는 점, 로마제국의 도로망, 알렉산더 대왕에 의한 통일과 헬라어의 보급 등을 의미한다. 셋째, 기독교 공동체의 순결한 생활, 넷째, 기독교 복음의 평등사상, 다섯째, 신자와 신자 공동체의 자선사업의 영향, 그리고 확신 있는 순교의 모습을 교회의 신속한 성장에 영향을 준 요인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순교자들이 원형경기장에서 굶주린 사자나 곰에게 잡아먹히거나 달군 철제 의자 위에서 타 죽어갈 때 보여준 인내와 평안은 의학적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들의 처형을 집행했던 형리들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떤 힘이 있다고 탄복했고, 육신의 고통을 이길 수 있는 어떤 신비한 능력이 있다고 보았다. 리용(Lyons)대학살 당시 의심 많았던 한 구경꾼은 도대체 저 종교(기독교)가 무엇이기에 목숨과 바꾼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이것은 아리스티데스(Aristides)의 변증서에 나오는 기록이다. 순교자들의 용기 있는 죽음이 신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이유라는 점은 분명했다.

 

필자는 스테펀 닐의 주장에 동감하지만 초기교회의 신속한 전파의 이유 3가지를 요약하고자 한다. 첫째는 기독교회가 지닌 평등사상이었다. 기독교 공동체는 평등, 평등의 가치를 실현했다. 이것은 기독교의 주된 가르침이기도 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어떤 구별도 없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자유인이든 노예이든, 남자이든 여자이든 다 그리스도 안에서 동등했고 하나였다(3:28). 복음 안에서 심리적 차별마저도 제거하고자 했다. 이것은 전혀 새로운 가치였기에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것이다. 둘째는 진정한 이웃사랑을 실천했다. 이것이 기독교회가 가르친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심지어는 박해자들에게도 예의와 겸손한 자세를 보여주며 사랑을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초기 그리스도교회가 보여준 사랑의 실천에 대한 한 가지 특이한 사례가 기독교인들에 대한 파라볼라노이(παραβολνοι)라는 호칭이었다. 그 의미는 위험을 무릅쓰는 자라는 뜻이다. 전염병이 유행했을 때 종교와 상관없이 수많은 이들의 인명을 앗아갔다. 부유한 이교도들은 달아났으며 감염된 사람들을 내다 버리거나 이들과의 접촉을 피해 도망갔다. 자식이 부모를 내다 버렸고,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도망갔다. 도시에는 죽은 이들의 시체가 쌓이고 있었다.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환자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돌보고 음식을 공급하고, 회생하도록 보살펴 주었다. 그들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감염의 위험을 감수한 것이다. 가장 놀란 이들은 기독교를 비난했던 이교도들이었다. 이들이 그리스도인들을 파라볼라노이’, 위험을 무릅쓰는 이들이라고 불렀다.

이런 사랑의 실천은 그 무엇보다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사랑은 기독교의 생명력이었다. 셋째는 기독교 복음 자체가 지닌 생명력이었다. 아무리 아름답게 포장해도 그 내용이 죽은 것이라면 포장은 가식과 위선일 뿐이다. 그러나 기독교 복음에는 생명력이 있었다. 이 생명력에 의해 기독교는 환란의 여정에서도 당시 세계로 전파될 수 있었다. 기독교 복음은 타오르는 불길처럼 유럽의 들판으로 퍼져 갔던 것이다.

 

 

/이상규 교수

미국 Calvin CollegeAssociated Mennonite Biblical Seminary 방문교수, 호주 Macquarie University 초기기독교연구소 연구교수, 고신대학교 부총장을 역임. 현재 고신대학교 신학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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