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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으로 시작되는 믿음 - 김일순 사모

2012.08.24 10:23

조회 수:2072



떠남으로 시작되는 믿음



매임을 끊고
남편과 같이 신학교를 같이 졸업하고 함께 사역을 하다 결혼한 나는 다소 어린 나이에 사모의 길로 들어섰다. 10년 넘게 부교역자 생활을 하며 성실하게 사역을 배워가던 어느 날, 남편은 목회에 대한 부담을 안고 다음 발걸음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떠나야 할 때임은 알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부교역자로서 부담 없이 더 섬기고 싶은 마음도 적잖이 들었다. 모든 것이 익숙한 곳을 떠나야 한다는 불안과 슬픔에 간절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안전한 이곳을 떠나 대체 어디로 가야 하나요? 하나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것이 제게는 어떤 의미인지 아시잖아요?”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나는 유독 외로움을 많이 탔다. 막내 동생이 태어나던 해, 엄마와 헤어져 할머니와 지내야 했던 그 얼마 동안은 나에게 떠남과 이별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고통인지를 가르쳐 주었다. 그 오래된 기억과 슬픔을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고 지내왔건만, 그때의 생채기 탓인지 내겐 낯선 곳으로의 떠남이 너무나 두렵고 힘들게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젊은 사모라 불리던 그때 나는 단지 나이만 어린 것이 아니었다. 믿음도 어리고 경험도 부족한, 어쩌면 사모 자격도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사역자의 부르심을 피하고 싶었던 나는 ‘조용한 사모’라는 옷을 뒤집어쓰고 요나처럼 나의 다시스로 도망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잔잔한 항구에 매인 한 척의 배와도 같이 겁 많고 믿음 없이 안주해 있는 나를 하나님은 밀어내기 원하셨다. 더 넓고 큰 바다를 향해 항해하라고, 당신의 비전을 향해 나아가라고 오래도록 매여 있었던 밧줄을 끊어주셨다. 눈을 감으면 생각의 수면위로 떠오르던 걱정, 근심, 두려움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서서히 마음의 평안을 되찾은 우리는 그렇게 미국유학을 결정하였다.

치유공동체가 된 광야학교
11년 전, 우리는 태평양을 건너 낯선 LA 땅에 도착하였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정착하기 어려운 땅, 처음부터 모든 것을 배워야 하는 이민자의 삶이 시작되었다. 감사하게도 남편은 나와는 달리 무척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이어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빠르게 새로운 삶에 적응해갔다.
남편이 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우리는 이민교회의 사역을 경험하게 되었다. 남편은 미국교회를 빌려서 예배드리는 작은 교회의 부목사로 설교와 성가대지휘, 교회관리까지 모두 맡게 되었다. 나는 어린아이들을 돌보고 점심 준비하는 것을 도왔다. 처음엔 외로운 이민자들을 위로할 수 있다면 기꺼이 섬기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주일예배도 제대로 드릴 수 없는 형편이 되니 점점 힘들고 지쳐갔다. 주일마다 차창 밖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집으로 향할 때면 어김없이 내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다 두 뺨으로 하염없이 흘러내리곤 했다.
어느 날, 그 흐느낌은 금방 통곡으로 이어졌다. 그때 남편은 아무 말 없이 그저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놀란 아이들이 “엄마, 왜 울어요?” 하고 물으니 남편은 “엄마는 저기 날아가는 비행기만 보면 우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많이 보고 싶나봐”라고 겨우 대답해주었다. 그 무렵, 나는 향수병에 몹시도 시달리고 있었다. 평일에 남편은 공부하느라 바쁘고, 아는 사람도 없어 하루 종일 아이들과 집에 있으니 답답하기만 했다. 어디선가 찬바람이 불어오는 것처럼 마음 한구석이 늘 허전했다. ‘이렇게 살려고 유학을 온 것은 아닌데….’
하루는 유학 올 때 가지고 왔던 내 책들을 상자 안에 넣어 모두 정리했다. 왠지 그 책들과 함께 내 비전마저 정리된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책 정리를 하고 나니 마음 한 편이 서러우면서도 시원해짐을 느꼈다. 마치 한바탕 격렬했던 전쟁이 휴전을 한 듯 마음이 고요하고 차분해졌다. 그제야 비로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조용한 음성을 듣게 되었다. 하나님은 내 고통만 바라보며 아파하고 있는 나에게 그분의 눈으로 주위를 바라보게 하셨다. 그리고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내 주변의 사모들을 보이시며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라고 하셨다. “주님, 제가요?”

미국의 유명한 앵커 오프라 윈프리는 남보다 더 부담되는 그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강요가 아니라 사명이라고 말했는데, 사모들에 대한 내 마음 역시 더 이상 강요가 아닌 사명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Reader & Leader’ 사모 독서모임이다. 다섯 명으로 시작한 이 모임은 1년 후 15명으로 늘어났다. 우리는 교회 여성리더의 정체성과 역할, 남편의 사역을 돕는 아내의 역할, 자녀양육 등에 관한 책을 읽고 나누며 많은 도움을 얻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말씀도 나누고 외로움도 나누고, 더 나아가 소망과 비전까지도 나누게 되었다. 한 마디로 함께 아파하고 기뻐하며 서로의 회복을 격려하는 ‘치유공동체’가 된 것이다.
4년의 시간이 지나 우리들은 모두 각자의 부르심에 순종하기 위해 목회현장과 선교지로 흩어졌다. 공부를 마친 우리도 역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남편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곳 어디든지 제일 먼저 청빙 받는 곳으로 가자고 했다. ‘인도하시는 곳이 설마 이민목회는 아니겠지?’ 했는데, 지금 섬기는 교회가 바로 LA에 있는 남가주 동신교회이다. 뒤돌아보면 지난 4년이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허락된 광야학교의 훈련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회복공동체를 꿈꾸며
남가주동신교회는 광야학교의 훈련시간을 지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큰 회복공동체였다. 이곳 이민자들은 새로이 삶의 뿌리를 내려야 하는 큰 부담을 안고 살기에 관계를 맺을 때에도 불안과 두려움을 갖고 조심스러워 한다. 누군가의 인정을 받는 것으로 자신의 빈 마음을 채우려 하기도 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도 적잖은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그래서 이민자들의 마음은 깊은 외로움과 아픔들로 채워져 있다. 그런 그들을 이해하고 잘 섬길 수 있을지 정말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부르신 곳이 바로 이민교회이니 나의 사명은 그들과 함께 아파하는 것이리라.

우리 교회는 올해로 33년 된 보수적인 전통교회로 생명의 회복과 사랑, 삶의 회복을 비전으로 삼고 이 땅의 많은 영혼들에게 회복의 복음을 전하는 건강한 교회로 성장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교회의 시작과 더불어 시작한 한글학교는 이민 2세대의 정체성 형성과 1세대 부모님과의 의사소통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여러 가지 문화적 갈등을 겪고 있는 청소년기의 이민자녀들이 자신들의 뿌리인 한글과 한국역사, 그리고 문화를 배우는 것은 여러모로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다문화 환경에서 자란 우리 자녀들은 미국뿐 아니라 한국과 세계를 섬길 수 있는 리더들로 성장할 커다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에 우리 교회는 다음세대를 담당할 이들을 양성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매년 창립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어려운 학생들과 타 인종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한편, 다음 세대의 신앙교육을 위해서 ‘Kid Stuff’라는 노스포인트 교회의 교육프로그램을 적용하여 진행하고 있는데, 여러 가지 활동과 부모님들의 적극적인 협조 아래 하나님의 성품을 배우고 닮아가는 것을 훈련하고 있다.  
교회에 계신 다수의 이민 1세대 어르신들과 지역사회의 노인들을 위한 사역도 빼놓을 수 없다. ‘경로대학’을 열어 건강한 신앙생활과 이민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취미활동 등을 통한 소통의 공간을 마련해 줌으로써 고립과 외로움 속에 계신 어른들이 행복한 노년을 보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뿐만 아니라, LA와 지역적으로 인접한 멕시코 선교를 통해서 교회에 주신 선교의 사명을 재확인하고 있다.

교회 안의 젊은 세대들은 화요여성예배와 주중 소그룹으로 모인다. 신구약 파노라마와 QT, 성경적 부모교실 등의 모임이 거기서 이루어진다. 주로 여성 소그룹을 맡아 인도하고 있는 나는 처음엔 내 연약함과 상처를 감추기에 급급하여 두꺼운 가면을 쓰고 복음이 아닌 율법만을 가르쳤다. 성도들과 삶을 나누는 것도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었다. 점차 시간이 갈수록 나는 공허하고 우울해졌다.
사역이 부담으로만 느껴지던 어느 날, 꿈에 ‘두꺼운 옷’을 입고 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옷이 얼마나 무겁던지… 그날 이후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숨김없이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갔다. 그분은 나를 회복의 자리로 초청해주셨을 뿐 아니라, 상처받은 연약한 자들과 삶을 나누라고 나를 ‘상처입은 회복자’로 불러주셨다.

떠남으로 시작되는 믿음
우리 교회 올해의 표어는 ‘하나님이 마음껏 역사하시는 교회’(약 5:15-16)이다. 하나님은 2011년의 시작과 함께 우리 교회가 감당할 수 없는 큰 비전을 보여주셨다. 새로운 교회터전을 예비하시고 새로운 비전을 갖도록 우리 교회를 흔들어 깨우셨다.
교회 이전은 단순한 공간적 이동만이 아닌 우리의 안일한 믿음을 향해 떠나라고 명령하시는 하나님의 선포이다. 믿음은 익숙한 곳으로부터의 떠남이고 하나님이 지시할 땅으로 가는 것이지 않은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전할 교회를 예비하시고 우리의 물질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으로 가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을 붙들고 또 다른 순종과 믿음의 한 걸음을 내 딛기 위해 우리 교회는 지금도 뜨겁게 기도하는 중이다.

글/김일순 사모
장로회신학대학, 이화여대 교육대학원의 기독교교육 전공. 현재 미국 남가주 동신교회 손병렬 담임목사의 아내로 교회 내의 QT 모임과 성경적 자녀양육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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