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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머리 앞에 절할 수 없다

2019.09.26 14:57

행복지기 조회 수:119



 

돼지머리 앞에 절할 수 없다 


  

   정성구(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지금부터 50년 전 나는 보병 26사단 76연대 군목이었다. 당시는 북한 124군부대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사건 때문에, 나는 군종 장교가 되는 것이 참으로 힘들었다. 나는 시골 개척교회를 목회하다가 논산 훈련소, 하사관 훈련, 육군 보병학교, 육군 행정학교 등 고된 훈련을 거쳐 중위로 임관 후 자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당시 우리 부대장은 육사 11기생이요 가장 잘나가던 김복동 연대장이었다. 그는 육사시절 생도대장이었고 후일 군의 요직을 두루 거친 장군으로 육사교장, 그리고 국회의원이자 노태우 대통령의 처남으로서 말 그대로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실력자였다.

 

나는 목사로서 초임 장교시절, 연대장 김복동 대령을 도와 우리 부대를 전군 신자화 운동의 선봉대로 만들었다. 그 때 나는 한국군 역사에 최초로 <포켓 야전 찬송가>를 만들고 <야전 성경통신학교> <진중대학>을 개설해서 군인 가족의 교양과 교육을 실시했다. 김복동 연대장은 비록 불신자였으나 나를 <아이디어뱅크>라고 치켜세우며 나를 잘 도왔다. 그리고 나는 부대 밖에 교회를 지어 그 이름을 <산호교회>라 하고 군인과 일반인들이 함께 참여하면서 교회가 크게 부흥했다.

 

우리 교회에는 장교, 하사관, 병뿐만 아니라 민간성도들 중에 장로와 집사들도 여럿 있었다. 그 중에도 2대대장인 정용갑 중령 가족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의 종군 목회를 돕고 있었다. 나는 오늘 정용갑 중령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그는 평안북도 철산 출신이고 그의 장인은 목사로서 평양신학교 출신이었다. 그는 군에서 감찰관으로 깨끗했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높이는 제대로 된 성도이자, 원리원칙을 지키는 군인이었다. 그 시절 우리 부대는 진지공사를 마쳤다. 김복동 연대장은 진지공사를 마친 것에 기분이 좋아 예하 장병들을 위로하고, 공식적으로 진지공사 완료를 자축하는 자리였다.

 

1대대에서 3대대까지 대대장들과 장교, 하사관, 장병들이 참여했다. 연대참모들도 모두 참석했다. 그런데 그 날 부대는 돼지머리를 상에다 놓고 신고하고 절을 하는 고사 순서가 있었다. 우리 한국은 지금까지 모든 관공서, 기업들이 공사를 마친 후 돼지머리에 고사 지내는 것이 관행이었다. 드디어 일대대장이 돼지머리 앞에 절을 했고, 두 번째는 2대대장이 절을 할 차례다. 그런데 정용갑 대대장은 꼿꼿한 자세로 서서 "나는 돼지 머리에 절할 수 없습니다"라고 큰소리로 당당하게 대답했다. 김복동 연대장과 참모들과 대대장들과 장병들은 갑자기 납덩이처럼 굳었다. 특히 당시 최고로 잘나가던 지휘관이요, 막 주월 군사령부 보안사령관을 마치고 온 김복동 연대장은 얼굴이 굳어지고 낯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막 폭탄이 터질 듯한 분위기였다.

 

연대장은 고함쳤다. "2 대대장! 왜 절하지 않나. 실시!"그래도 정용갑 대대장은 꼿꼿이 서 있었다. 연대장은 다시 불호령을 내렸다. 절하지 않는 이유가 뭐냐?그 때 정용갑 대대장은 확신 있게 이렇게 말했다. "첫째,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돼지머리 앞에 절할 수 없습니다. 둘째로, 우리 2대대 장병들은 내가 예수 믿는 것을 다 알고 있는데, 내가 지금 돼지머리 앞에 절한다면, 그들에게 마음에 큰 상처를 줍니다. 그래서 나는 돼지 머리 앞에 절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온 부대는 전율이 일어났고 김복동 연대장은 분을 참지 못하고 지휘봉을 힘껏 두들기고 자리를 떴다. 연대장은 처참하게 지휘권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날 행사는 엉망진창이 되었고 일종의 하극상의 사건이요, 전 장병들 앞에서 대대장이 연대장의 명령에 불복하는 것이므로, 명령 불복종으로 대대장을 영창에 보낼 수도 있고, 당장 예편도 해버릴 수 있었다. 당시는 <, , >의 시대였으니 군인의 시대였다. 온 부대가 찬물을 끼얹는 듯 한국군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었고 참모들과 장교. 하사관들은 어쩔 줄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물론 정용갑 대대장은 자신의 성경적 신앙을 지키려고 생명을 건 행동이었다. 그런데 일주일 후 나는 연대장실을 찾았다. 나는 참으로 어색하게 겨우 그 지라에 앉았다. 그때 김복동 연대장은 진지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목사님! 정용갑 2대대장 정도의 신앙을 가진 분이라야 진짜 그리스도인이 아니겠습니까!"라고 했다. 나는 눈물이 콱 쏟아졌다. 연대장은 참 그리스도인이 어떤 것인지를 깨달았다. 나는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 반대나 공산군에 저항하여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한 사람들이 있었다지만, 서슬 퍼런 계급사회에서 생명 걸고 믿음을 지킨 정용갑 대대장의 신앙의 승리를 말하고 싶다.

 

후일 하나님의 은혜로 정용갑 대대장은 오히려 대령으로 승진하고, 월남에 연대장을 거쳐 예편했고, 장로님이 되어 캐나다로 이주했지만 지금도 나와는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다운 교제를 하고 있다. 오늘날 성도들이 자신의 영달과 유익을 위해 신앙의 정조를 팔아먹는 세속적 신앙이 만연한 이 때, 신앙으로 승리한 이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