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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보다 복음입니다

2019.11.12 10:46

‘새로남교회가 지향하는 공동체의 모습’

(3. 문화보다 복음입니다)




우리 고장 충청도를 예향(禮鄕)이라 부릅니다. 분명 기분 좋은 평판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교묘하게 변질을 야기하는 문화의 발목잡음도 숨어 있습니다. 사람 살리는 문화는 축복된 것이지만, 복음을 변질시키는 문화는 반드시 새롭게 거듭나야 합니다. 사람들은 문화를 앞세워 갈등을 불러일으키며 계층화를 촉진하는 혈연, 지연, 학연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스스로 문화지상주의(文化至上主義)에 대한 경계를 늦추어 버리기도 합니다.

만약 교회 안에 문화를 빗댄 풍토가 자리 잡게 되면 복음의 설 자리는 좁아지기 마련입니다. 인간적인 정리(情理) 때문에 은혜로운 복음의 빛이 약화되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문화의 고유한 속성 때문에 복음이 훼손되는 상황을 여러 번 목격하였습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다.’ ‘우리가남이가’ ‘정치는 정치로 풀어야 한다.’ ‘빈총이라도 맞으면 기분 나쁘다.’ ‘가만히 있으면 때가 되면 자리를 차지한다.’ ‘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느냐’ 이런 말이 나름대로 의미가 없진 않지만 일반적으로 복음의 원리를 강화시켜 주기보다 문화적 풍토에 주저앉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이냐, 문화냐의 갈림길에서 지혜로운 선택에 직면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종으로 부름 받았다고 하는 거룩한 자존심을 걸고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

또한 복음과 문화, 참과 거짓, 빛과 어둠사이에서 믿음으로 복음 편에 서야 할 때 우리는 비장한 마음으로 결기 있게 믿음의 선택을 시행해야 합니다. ‘어느 민족 누구에게나 결단 할 때 있나니 참과 거짓 싸울 때에 어느 편에 설 건가 주가 주신 새 목표가 우리 앞에 보이니 빛과 어둠 사이에서 선택하며 살리라’(찬송통합 521장)

불교 1000년, 유교 500년의 역사를 문화적 배경으로 하며 그 위에 무속적이며 토속적인 신앙과 삶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우리 역사에서 생명의 말씀으로 문화적 풍토를 일신하여 모든 분야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임하게 하고 주권을 높이는 일은 자연 발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고래로 관혼상제(冠婚喪祭), 음양오행(陰陽五行), 풍수지리(風水地理), 사주팔자(四柱八字), 토정비결(土亭秘訣), 궁합(宮合)보기, 손타는날, 길일, 액땜 등은 이방 종교와 무속의 산물입니다. 한마디로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우리는 이미 터를 잡고 있는 기존의 문화로 회귀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사에 있어 민주화의 결실은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결단과 헌신이 모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주님 오실 때까지 우리에게 안겨 주신 복음진리를 원형 그대로 보존해야 하는 책무를 인식하여 문화적인 교회에 멈추지 말고, 복음적인 교회상을 가열차게 확립해야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문화우위보다 복음통치를 결단함은 오직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우리의 특권과 동시에 책무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