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힘내세요 *^^*
2010.09.06 03:28
목사님.. 저 기억나실런지요?
구원파에 빠져 들었다가 새로남 교회를 찾고 너무 행복에 마다하지 않았던
김지혜 자매입니다.
그동안 저는 정말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벌거 벗는 시련의 나날을 보냈습니다.
정말 말씀은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며 저를 바른 길로 이끄신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정말 죄악된 저의 지나온 삶이 하나님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9개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일수도 있었지만.. 너무도 두렵고 떨리며 지옥이 제 앞에 펼쳐질
것 같은 그런 나날들이었습니다.
어렸을때부터 하나님은 저의 아버지의 자리를 채우신 분이셨습니다.
아버지의 외도와 가정을 외면한 모습들로 저희 어머니는 하나님 안에 옳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계셨지만.. 본인이 너무도 힘겹고 마음아픈 배신감으로 하나님 앞에
마음으로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아버지와 결별을 선택하셨습니다.
남편없이 홀로 두 아이를 양육하고 식당을 운영하며 그렇게 살아가던 저희 어머니는..
사실은 정말 사람들에게 인정이 많고 하나님 앞에 선한 분이셨습니다.
제가 바라봤던 어머니와 저희 할머니는 하나님 앞에서 정말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신앙인이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내어드리는 것을 전혀 아까워 하신 기억이 저에겐
남아있지 않습니다. 믿지 않는 가족들의 헌금까지도 어려운 형편에서도 손수 준비해서
내어드리는 그 모습을 저는 정말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만 아시면 된다며 헌금은 항상 무명으로 드리셨었습니다.
200을 벌면 40을 십일조로 드리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적극적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저희 각 개인마다의 인생의 솔루션을 가지고 계신 거 같습니다.
힘겹게 재산을 불려 살만하다 싶은 시기가 왔을때 어머니 곁엔 항상 친언니 이상으로
살갑게 정을 나누던 아주머니가 계셨습니다. 남편의 사업을 도우느라 살림을 하지
못하시던 그 아주머니를 대신해서 바쁜 식당일 가운데서도 하루에 일정한 시간
항상 그 아주머니 댁에 방문해서 청소를 해주시던 어머니를 저는 기억합니다.
다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셨습니다. 함께 교회로 나아가길 원하는 마음에서 하셨던
섬김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철저하게 짓밟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사업자금이 부족하다고 하며 어머니에게 5천만원을 빌려가시고.. 또 어머니의 지인들을
통해서 5천만원 가량의 돈을 어머니의 보증으로 빌려가신 그 아주머니는 결국 빚에
쫓겨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셨습니다. 그 당시 24평 아파트 분양가가 3천만원이던
시절이었는데 그 금액은 정말 너무도 버거운 금액이었습니다.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던 그 아주머니를 어머니는 끝까지 믿으며 보호해주셨습니다.
어머니의 남아있던 패물까지도 싹싹 털어서 조금이라도 보태서 도움이 되라고 그렇게
하셨던 어머니를 그 분은 철저하게 배신했습니다.
그때부터 저희 어머니는 그 배신감에 잠못 이루며 이 세상에 대한 막막함으로 인해서
자주 자살 시도를 하셨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를 너무 사랑하시고 가엽게 여기신
하나님의 은혜로 자살할 마음을 접으시고 저와 오빠를 학교에 보내며 한달 60만원의
월급으로 모든 빚을 청산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저희 가족은 정말 처절하게 가난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식당에서 일하시고 얻어온 반찬으로 근근히 살아나갔습니다.
빚을 청산하고 이제 좀 살만하다 싶은 시기에 이번엔 할머니께서 폐암에 걸리셔서
많은 돈을 탕진하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수능을 본 저는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그 상황에서 제가 원서를 쓰고
대학에 진학한다는 것은 너무도 이기적인 것만 같았습니다.
정말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그 시절 저에게 대책을 세워줄 사람은 주변에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학자금 대출이란 제도조차 모르는 문외한 저는 그저 대학진학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찌어찌하다 작은 회사의 경리로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그렇게 돈을 벌었습니다. 처음엔 어머니께 용돈을 타서 쓰고 급여를 맡겼었는데..
어느 순간 저는 제가 버는 돈을 제가 마음대로 누리며 살고 싶었습니다.
사고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절제하지 못하고 다 누리며 살다가 결국 신용불량자
가 되어 어머니께 상처를 드렸었습니다.
저때문에 괴로워 하던 어머니를 피해서 가출을 해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저희 남편도 참 안쓰럽고 불쌍한 삶을 살았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운 집안형편때문에 낮엔 학교에서 밤엔 피자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감당하고 자취세를 내고 어머니의 약값을 수발하며 그렇게 살던 정직하고 성실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왠지 저에게서 떠나신것만 같은 방황의 시간을
지냈습니다. 그런데도 놀랍게도 주님은 저의 악한 행위를 주님의 선하심으로 은혜로
다 선하게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의 절제되지 못한 생활습관은
저에게 덫이 되어서 작년 12월 무렵 우울병이란 아주 끔찍하고 무서운 병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세상이 끝날것만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떠나신지 오래인 것만
같았습니다. 잠을 한숨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세상이 싫었습니다. 밤마다 지옥이 너의 길이라며 죽으라고 저에게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저 또한 수차례 자살 시도를 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말씀은 저를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주어진 길어봐야
100여년의 시간을 못견디고 여기서 이렇게 무너져 버리면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
받고 살아야 할텐데 라는 생각에 밤마다 두려움에 떠는 하루하루였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저 때문에 머리를 삭발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어머니가 너무
죄인이어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가족들은 신경정신과 약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있어서 저에게 신앙의 힘으로
극복할 것을 강권했습니다.
상황은 점점 더 안 좋아지고 비참한 지경까지 이르렀던 저는 결국 병원을 찾아 치료를
시작했고.. 6개월간의 친정생활을 접고 다시 대전으로 내려왔습니다.
정말 죽을 것만 같이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살아도 지옥.. 죽어도 지옥..
고통스러운 진퇴양난의 순간순간 들이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생각으로 순장님께 연락을 드려 살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죽을마음이 저를 압도하는 가운데서도.. 사실은.. 사실은 정말 주님앞에서 잘 살아
보고 싶다는 조그만 외침이 저를 교회가운데로 밀어주었습니다.
어쩌면 그 외침은 제 안에 거하신 성령님의 절규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낫지 않을 것만 같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그 괴로운 시간은 결국 주님의 도움으로
지나갔고 지금은 완치 단계에 이르러 차츰 약물을 조절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모든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며 사랑의 결과였습니다.
제 지난 삶을 정말 처절하게 주님앞에 돌아보게 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머리로만 인정했었던 죄인이라는 그 고백이 제 온몸으로 고백되어지는 그런 시간들
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약하고 더럽고 추한 그런 지옥백성이지만...
주님의 은혜로 저는 다시 회복되어 천국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교회의 은혜이고 다락방 식구들의 기도의 은혜입니다.
온전치 못한 저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이런 교회를 세우신 예수님과 목사님과 모든 사역자님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옥한흠 목사님의 영상을 보며 정말 감동을 받았습니다. 작은 예수..
그 작은 예수를 저도 감히 꿈꾸어도 될까요? 새벽예배에서 온전히 계승하지 못할
것 같다며 걱정하시던 목사님께 위로의 말씀과 감히 응원의 메세지를 전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두서없이 긴글을 올리게 된점 사과 드립니다.
목사님! 저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그 무거운 짐을 함께 나누길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대신 짊어져 주실 것입니다.
저는 비록 9월 17일이 되면 다시 일산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새로남 교회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정말 사랑했고 감사했습니다.
치유되지 못할 것 같았는데 치유시켜주신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드리고 싶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관평부부 6다락방 순장님 이하 가족분들과 중보기도팀..
김상준 목사님.. 상담을 해주셨던 정현주 집사님.. 그리고 차현희 선생님..
무엇보다 이런 보배와 같은 귀한 인연을 허락하시어 이전보다 더욱 강건해지며
정금은 아닐찌라도 은처럼 다시 나아가도록 하심에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 교우들중 저와 같은 아픔을 겪고 계신 분이 있다면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악하던 저조차도 아낌없이 사랑하셨고.. 극단적인 순간으로 삶을
끝나게 하실 수도 있었지만 끝까지 저를 살리기에 이르셨습니다.
용기를 내어 교회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시고 가까운 신경과에서 치료를 시작하시길
권고합니다.. 우울병은 꼭 완치될 수 있는 병이라는 것을 저는 온전히 깨달았습니다.
다행입니다.. 저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이.. 사랑합니다..
목사님.. 그리고 새로남 교회 여러분.. 항상 주님안에서 행복하시고..
저희도 작은 예수가 되어서 믿음의 선진들께 부끄럽지 않게 살다가 주님이 부르실때에
아멘~ 감사합니다. 하고 천국길에 오르길 소망하며 부족한 글을 마칩니다.
구원파에 빠져 들었다가 새로남 교회를 찾고 너무 행복에 마다하지 않았던
김지혜 자매입니다.
그동안 저는 정말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벌거 벗는 시련의 나날을 보냈습니다.
정말 말씀은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며 저를 바른 길로 이끄신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정말 죄악된 저의 지나온 삶이 하나님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9개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일수도 있었지만.. 너무도 두렵고 떨리며 지옥이 제 앞에 펼쳐질
것 같은 그런 나날들이었습니다.
어렸을때부터 하나님은 저의 아버지의 자리를 채우신 분이셨습니다.
아버지의 외도와 가정을 외면한 모습들로 저희 어머니는 하나님 안에 옳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계셨지만.. 본인이 너무도 힘겹고 마음아픈 배신감으로 하나님 앞에
마음으로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아버지와 결별을 선택하셨습니다.
남편없이 홀로 두 아이를 양육하고 식당을 운영하며 그렇게 살아가던 저희 어머니는..
사실은 정말 사람들에게 인정이 많고 하나님 앞에 선한 분이셨습니다.
제가 바라봤던 어머니와 저희 할머니는 하나님 앞에서 정말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신앙인이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내어드리는 것을 전혀 아까워 하신 기억이 저에겐
남아있지 않습니다. 믿지 않는 가족들의 헌금까지도 어려운 형편에서도 손수 준비해서
내어드리는 그 모습을 저는 정말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만 아시면 된다며 헌금은 항상 무명으로 드리셨었습니다.
200을 벌면 40을 십일조로 드리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적극적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저희 각 개인마다의 인생의 솔루션을 가지고 계신 거 같습니다.
힘겹게 재산을 불려 살만하다 싶은 시기가 왔을때 어머니 곁엔 항상 친언니 이상으로
살갑게 정을 나누던 아주머니가 계셨습니다. 남편의 사업을 도우느라 살림을 하지
못하시던 그 아주머니를 대신해서 바쁜 식당일 가운데서도 하루에 일정한 시간
항상 그 아주머니 댁에 방문해서 청소를 해주시던 어머니를 저는 기억합니다.
다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셨습니다. 함께 교회로 나아가길 원하는 마음에서 하셨던
섬김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철저하게 짓밟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사업자금이 부족하다고 하며 어머니에게 5천만원을 빌려가시고.. 또 어머니의 지인들을
통해서 5천만원 가량의 돈을 어머니의 보증으로 빌려가신 그 아주머니는 결국 빚에
쫓겨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셨습니다. 그 당시 24평 아파트 분양가가 3천만원이던
시절이었는데 그 금액은 정말 너무도 버거운 금액이었습니다.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던 그 아주머니를 어머니는 끝까지 믿으며 보호해주셨습니다.
어머니의 남아있던 패물까지도 싹싹 털어서 조금이라도 보태서 도움이 되라고 그렇게
하셨던 어머니를 그 분은 철저하게 배신했습니다.
그때부터 저희 어머니는 그 배신감에 잠못 이루며 이 세상에 대한 막막함으로 인해서
자주 자살 시도를 하셨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를 너무 사랑하시고 가엽게 여기신
하나님의 은혜로 자살할 마음을 접으시고 저와 오빠를 학교에 보내며 한달 60만원의
월급으로 모든 빚을 청산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저희 가족은 정말 처절하게 가난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식당에서 일하시고 얻어온 반찬으로 근근히 살아나갔습니다.
빚을 청산하고 이제 좀 살만하다 싶은 시기에 이번엔 할머니께서 폐암에 걸리셔서
많은 돈을 탕진하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수능을 본 저는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그 상황에서 제가 원서를 쓰고
대학에 진학한다는 것은 너무도 이기적인 것만 같았습니다.
정말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그 시절 저에게 대책을 세워줄 사람은 주변에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학자금 대출이란 제도조차 모르는 문외한 저는 그저 대학진학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찌어찌하다 작은 회사의 경리로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그렇게 돈을 벌었습니다. 처음엔 어머니께 용돈을 타서 쓰고 급여를 맡겼었는데..
어느 순간 저는 제가 버는 돈을 제가 마음대로 누리며 살고 싶었습니다.
사고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절제하지 못하고 다 누리며 살다가 결국 신용불량자
가 되어 어머니께 상처를 드렸었습니다.
저때문에 괴로워 하던 어머니를 피해서 가출을 해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저희 남편도 참 안쓰럽고 불쌍한 삶을 살았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운 집안형편때문에 낮엔 학교에서 밤엔 피자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감당하고 자취세를 내고 어머니의 약값을 수발하며 그렇게 살던 정직하고 성실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왠지 저에게서 떠나신것만 같은 방황의 시간을
지냈습니다. 그런데도 놀랍게도 주님은 저의 악한 행위를 주님의 선하심으로 은혜로
다 선하게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의 절제되지 못한 생활습관은
저에게 덫이 되어서 작년 12월 무렵 우울병이란 아주 끔찍하고 무서운 병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세상이 끝날것만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떠나신지 오래인 것만
같았습니다. 잠을 한숨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세상이 싫었습니다. 밤마다 지옥이 너의 길이라며 죽으라고 저에게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저 또한 수차례 자살 시도를 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말씀은 저를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주어진 길어봐야
100여년의 시간을 못견디고 여기서 이렇게 무너져 버리면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
받고 살아야 할텐데 라는 생각에 밤마다 두려움에 떠는 하루하루였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저 때문에 머리를 삭발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어머니가 너무
죄인이어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가족들은 신경정신과 약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있어서 저에게 신앙의 힘으로
극복할 것을 강권했습니다.
상황은 점점 더 안 좋아지고 비참한 지경까지 이르렀던 저는 결국 병원을 찾아 치료를
시작했고.. 6개월간의 친정생활을 접고 다시 대전으로 내려왔습니다.
정말 죽을 것만 같이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살아도 지옥.. 죽어도 지옥..
고통스러운 진퇴양난의 순간순간 들이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생각으로 순장님께 연락을 드려 살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죽을마음이 저를 압도하는 가운데서도.. 사실은.. 사실은 정말 주님앞에서 잘 살아
보고 싶다는 조그만 외침이 저를 교회가운데로 밀어주었습니다.
어쩌면 그 외침은 제 안에 거하신 성령님의 절규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낫지 않을 것만 같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그 괴로운 시간은 결국 주님의 도움으로
지나갔고 지금은 완치 단계에 이르러 차츰 약물을 조절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모든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며 사랑의 결과였습니다.
제 지난 삶을 정말 처절하게 주님앞에 돌아보게 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머리로만 인정했었던 죄인이라는 그 고백이 제 온몸으로 고백되어지는 그런 시간들
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약하고 더럽고 추한 그런 지옥백성이지만...
주님의 은혜로 저는 다시 회복되어 천국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교회의 은혜이고 다락방 식구들의 기도의 은혜입니다.
온전치 못한 저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이런 교회를 세우신 예수님과 목사님과 모든 사역자님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옥한흠 목사님의 영상을 보며 정말 감동을 받았습니다. 작은 예수..
그 작은 예수를 저도 감히 꿈꾸어도 될까요? 새벽예배에서 온전히 계승하지 못할
것 같다며 걱정하시던 목사님께 위로의 말씀과 감히 응원의 메세지를 전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두서없이 긴글을 올리게 된점 사과 드립니다.
목사님! 저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그 무거운 짐을 함께 나누길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대신 짊어져 주실 것입니다.
저는 비록 9월 17일이 되면 다시 일산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새로남 교회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정말 사랑했고 감사했습니다.
치유되지 못할 것 같았는데 치유시켜주신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드리고 싶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관평부부 6다락방 순장님 이하 가족분들과 중보기도팀..
김상준 목사님.. 상담을 해주셨던 정현주 집사님.. 그리고 차현희 선생님..
무엇보다 이런 보배와 같은 귀한 인연을 허락하시어 이전보다 더욱 강건해지며
정금은 아닐찌라도 은처럼 다시 나아가도록 하심에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 교우들중 저와 같은 아픔을 겪고 계신 분이 있다면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악하던 저조차도 아낌없이 사랑하셨고.. 극단적인 순간으로 삶을
끝나게 하실 수도 있었지만 끝까지 저를 살리기에 이르셨습니다.
용기를 내어 교회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시고 가까운 신경과에서 치료를 시작하시길
권고합니다.. 우울병은 꼭 완치될 수 있는 병이라는 것을 저는 온전히 깨달았습니다.
다행입니다.. 저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이.. 사랑합니다..
목사님.. 그리고 새로남 교회 여러분.. 항상 주님안에서 행복하시고..
저희도 작은 예수가 되어서 믿음의 선진들께 부끄럽지 않게 살다가 주님이 부르실때에
아멘~ 감사합니다. 하고 천국길에 오르길 소망하며 부족한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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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마를 하는 아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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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헛디뎌 넘어질 때 주님 안쓰러워하십니다
작은 돌 하나에 걸림이 될까
주님 손수 비켜 주시고
나의 앞에 모든 걸림을
주님이 아시고 내 앞서가시며 나를 돌아보십니다
영원히 나의 벗이 되신
나의 힘 내 주님...
언제나 당신의 자비로 나를 감싸주소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