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 웃음의 전파자
2004.11.26 19:46
2004. 9. 9 대전일보
오정호목사
웃음의 전파자
인간 관계론의 세계적인 권위자였던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것은 별로 소비되는 것은 없으나, 건설하는 것은 많으며, 이것은 주는 사람에게는 해롭지 않으나, 받는 사람에게는 충만하며, 이것은 짧은 인생으로부터 생겨나서, 그 기억은 오래토록 간직하며, 이것 없이 참으로 부자가 될 사람이 없으며, 이것을 가진다면 정말 가난한 사람도 없다. 이것은 가정의 행복을 증진시키며, 사업에 호의를 가지게 하며, 친구 사이를 더욱 가깝게 한다. 이것은 피곤한 자에게 휴식이 되며, 실망한 자에게 희망이 되며, 우는 자의 위로이고, 이것은 인간의 독을 제거하는 해독제이다. 이것은 살수 없고, 벌 수도 없고, 빌릴 수도 없고, 도적질할 수도 없는 것이다.
카네기가 말하는 이것은 과연 무엇이겠는가? 카네기가 의도한 대답은 웃음이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웃음은 “계란을 익혀먹을 때 필요한 소금과 같다”고 이야기한 사람도 있다. “만약 이 세상이 눈물의 골짜기라면 미소는 거기에 걸리는 무지개”라 노래한 사람도 있다.
굳윈(Goodwin)은 “사람이 웃을 수 있으면 그는 결코 가난하지 않다. 당신이 웃을 때 온 세상이 당신과 함께 웃는다.”고 웃음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였다.
이 글을 읽으시는 한 분 한 분이 웃음의 선수, 미소의 대가(大家)였으면 좋겠다.
최근에 각광받고 있는 이론에 의하면 건강한 공동체는 사랑의 관계 즉 웃음이 많은 공동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곧 사람의 웃음지수와 건강지수가 비례한다는 의미 있는 연구 결과이다.
가정과 직장의 건강성을 점검하는 항목에 “우리가정과 직장에는 웃음이 많은가?.”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수 있겠는가?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사람만이 유일 독특하게 소유하고 있는 웃음의 중요성을 주목해 왔다. 그들은 웃음과 건강에 대한 상관관계를 연구한 보고서를 쏟아내고 있으며, 병원들은 환자의 치료수단으로서 웃음의 메카니즘을 활용하고 있다. 예로부터 내려온“하루 한번씩 실컷 웃으면 의사를 멀리할 수 있다”는 격언이 실생활의 증거로 나타나고 있다.
웃음은 웃는 당사자에게 신체적, 심리적인 보상을 해준다. 스탠포드대학의 윌리엄 프라이 박사는 “20분 동안 웃는 것은 3분 동안 격렬하게 노 젓는 것과 운동량이 비슷하다”고 단언하였다. 한바탕 유쾌하게 웃고 난 후 몸이 새롭게 생기를 띠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웃음은 또한 심리적인 적대감정과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역할도 한다.
웃음은 우리 몸의 면역기능을 강화한다는 사실도 놓칠 수가 없다. 사람들이 코미디프로그램을 시청하면 신체의 백혈구의 수치가 향상되고, 자동적으로 면역기능이 증가하게 된다. 우리가 웃는 동안 뇌에서는 엔돌핀과 엔케팔린등의 물질이 분비되어 고통이 줄어들고,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웃음이 많은 작업현장은 웃음이 사라진 작업현장에 비하여 현저하게 일의 능률이 높게 나타난다. 웃음의 유효성을 일찍 깨친 세계적인 기업 IBM에서는 매년 중역회의를 할 때 그 자리에 유머 컨설턴트를 초청하여 강연을 듣는다. 기업도 이미 인간관계의 따스함과 웃음의 실천을 통해 생산성의 제고를 실천하고 있다.
의도적일지라도 웃는다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 미소는 의도적일지라도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인정하기 싫지만 우리나라 사람은 외국 사람들에 비교하여 웃음에 인색한 국민으로 꽤 알려져 있다. 심지어 “무표정하고 무엇인가 울분에 젖어있는 사람의 국적을 따져보면 한국사람일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견해가 있음도 사실이다.” 특히 온 국민이 IMF의 고난의 골짜기를 통과하는 동안에, 우리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웃음을 탈취당한 부분이 꽤 있으리라 생각한다. 쉽게 풀리지 않는 경기, 거기에 더하여 상생(相生)이 아니라 상쟁(相爭)의 정치판을 바라볼 때 미소 띠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고마운 것은 이번 아테네 올림픽을 통해 반짝웃음이라도 선물 받은 사실이다.
우리나라 선수들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온 국민의 미소는 잉태되었고, 월계관을 쓰고 환호하는 자랑스런 아들딸들의 모습이 우리의 얼굴에서 사라진 감동적인 미소를 재생해 주었다. 이제 올림픽이 끝났다고 미소마저 종식되어야 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미소지을 일이 발생할 때에 웃을 수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미소짓기 힘든 순간에 스스로 웃음생산자로 자신을 다스려 가는 것은 더욱 가치 있는 일이다.
학력지수가 미소 띤 얼굴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 소유지수 또한 다름이 없으리라.
미소는 그 마음에 감사의 향기 있는 자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고품격의 작품이다. 스스로 미소짓는 사람이 얼마나 복된가. 한 걸음 더 나아가 각박한 세상살이에서 자신은 물론 다른사람의 얼굴에 미소짓게 하는 웃음의 전파자는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웃음전파자가 더욱 소중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좌우를 둘러보아도 웃을 일이 별로 없는 세태때문인가 한다. 이제부터라도 웃음의 자가발전을 꾀해야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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