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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의 목회자

2005.12.01 09:38



  필자는 목사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결초보은(結草報恩)의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이 배은망덕(背恩忘德)의 시대에 보은감사의 인간으로 서는 것이 쉽지 않은 것임을 실감한다. 혹이라도 덜 오염된 인간으로라도 보아준다면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만남의 은총으로만 풀릴 수 있음을 고백한다. 목회자의 정도(正道)를 한국교회에 보여주신 옥한흠 목사님, 말씀사랑의 지고지순한 모습으로 평생을 달려오신 박희천 목사님을 만난 것은 필자의 목회생활에 평생의 복으로 임하였다. 꿈속에서라도 감사한 일이다. 이러한 고귀한 만남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로만 이해 할 수 있기에 이러한 복된 만남을 허락하신 주님께 머리 숙여 감사할 뿐이다.

총신대학과 신학대학원에서 가르침을 주신 여러 교수님들께 부족한 제자로서의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감사의 마음을 가지는 것 또한 인생의 즐거움이 아니런가. 막돌이었던 내가 옥돌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지니게 된 내력에 총신 교수님들의 땀과 열정이 녹아 있으리라. 총신동산에서 함께 뛰놀았던 동료들의 연대의식과 복음을 향한 순수한 영성은 지금도 전국 각지에서 꽃피어 열매 맺고 있다. 과거 내수동언덕에서 삶과 사상, 비전과 가치를 논했던 동료들의 따뜻한 눈길과 용납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 합동신학교의 송인규 교수님과 미국 풀러 신학교의 피터 와그너 교수님을 비롯한 여러 교수님들의 해박한 지식과 치열한 삶은 내 굳어 있던 안목에 파장을 일으켜 주었다. 그들은 당대의 석학이라도 티를 내지 않고, 연약한 영혼을 따뜻한 손으로 거두어 들었다. 교회갱신협의회 동역자들과의 지난 10년 동안의 교제는 오염되는 세대 가운데 목회의 본질을 지켜 내려는 하나의 몸부림으로 내면을 유지하도록 했다.

필자는 우리교회에 대하여
그리고 우리 교단에 대하여
보은의 목회자로 기억되기를 소원해 본다.


물설고 낯선 대전에서 목회자의 모양새를 갖추어갈 때, 김용태 장로님과 이현자 권사님을 비롯한 여러 새로남 교우들의 격려와 초지일관의 충성은 목회의 칼바람, 불바람에 맞설 수 있는 용기와 에너지를 공급하였다.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으로부터 한경직 목사님에 이르기까지 참 목자상을 보여주신 신앙의 위대한 영웅들의 그림자를 밟으면서 내 영혼의 키가 커졌음을 어찌 숨길수가 있으랴. 한국교회를 위하여 마지막 피를 쏟은 수많은 양화진 묘역의 선교사님들의 복음을 위한 흔적들이 내 삶에도 묻어있음을 고마워한다. 언더우드선교사님을 선봉으로 수많은 벽안의 주의 종들이 없었다면 내 인생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어거스틴, 존 칼빈, 리처드 포스터, 고든 맥도날드, 빌리 그래함, 존 스토트, 로이드 존스, 릭 워렌, 요나단 에드워드, 웨슬레 형제 등 수많은 청교도들에게 빚져있는 사상적, 신학적 채무를 언제쯤 갚을 수 있을까? 빚을 갚기는 커녕 욕을 돌리지는 말아야 될 터인데...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부산 가야제일교회 개척 이후 43년을 한결같이 달려와 이제 원로목사로서 노후를 복음의 열정으로 이어가시는 필자의 아버지(오상진 목사)과 어머니(최명순 사모)의 돌보심이 오늘의 나를 가능하게 했음을 어찌 부인할 수 있을까?
필자는 우리 교단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 태어났고, 성장하고, 훈련받아 목사의 직임을 받음을 예사롭지 않은 은혜라 늘 생각해 왔다. 목양의 현장에 장로교회의 역사와 신학, 핍박과 연단, 형식과 내용이 용해되어 있다. 필자는 우리교회에 대하여 그리고 우리 교단에 대하여 보은의 목회자로 기억되기를 소원해 본다.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삼분동에서 핏덩이로 태어난 나 자신이 오늘의 복음의 전사로 서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감동의 대서사시이며 드라마라 생각한다. 물론 그 드라마의 제작과 총지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어찌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온 몸을 던져서 보은의 목회자로 서 있기를 소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