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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말 / 오정호 목사는 총신대신대원을 나와 미국 풀러신학교에서 공부했다. 현재는 대전 새로남교회 담임 목사로 있으며 OM선교회 대전 이사장, 제자훈련 목회자 협의회 대전.충청지역 대표, 대전광역시기독교연합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있다.

Q. 한국 교회가 21세기의 포스트모던 시대를 맞아 전도의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가 있지 않나라는 질문을 받게 되는데 목사님께서는 평소 그런 부분에 관련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과거에 교회는 한 마을에 정신적인 면이나 사회 공동체 속 중심으로 서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놀 때가 없으면 교회 마당에 가서 놀았어요. 그러니까 교회라는 곳은 상징적으로 그 마을이라든지 지역사회에 있어서 꼭 필요한 곳이었습니다. 이것은 교회 나오든 안 나오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심지어 회의할 게 있으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서 회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현대인들이 교회가 왜 필요한 지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 같은 경우, 목회할 때 교회가 사람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늘 생각하게 됩니다. 교회가 지역 주민들의 필요를 창출할 수 있는 교회 본질적인 사명을 감당했으면 좋겠어요.
대전만 해도 가정이 너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매일 24쌍이 결혼하는데, 동시에 매일 11쌍이 이혼하는 현상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교회가 존재함으로 인해 가정 건강이 향상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녀들에게 꿈을 줄 수 없고 외면당하는 그런 공동체라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교회가 존재함으로 당신들의 생애 가운데 정말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영적인 전환점이 생긴다고 하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이 문화를 이끄는 풍토를 만들어야 합니다.

Q. 21세기 목회는 다음 세대를 목회의 중요한 대상으로 여겨야 한다는 지적이신 것 같습니다. 그것과 관련해서 말씀해 주시지요.  

저희가 교회건축 할 때 청소년들을 위해 체육시설을 만들고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오픈한 것은 젊은이들을 향한 접촉점을 만든 것입니다. 다음세대 젊은이들을 복음으로 얻기 위해서는 기성세대는 반드시 값을 치루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회중들 속에 들어가시기 위해, 여러 접촉점을 만드셨잖아요? 장소, 대화, 이야기를 통해 주님께서는 접촉점을 만드셨는데 저도 목회하면서 지역 주민을 위해서 카페를 만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지역 주민들이 종교적인 건물에 들어온다는 느낌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발을 옮길 수 있는 곳이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 것입니다.  

Q.현재 목회의 현장에서 경험하고 계신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허락하신 은혜를 헤아려본다면, 그 은혜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이루다 헤아릴 수 없지요. 마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락하신 출애굽의 영광 홍해의 기적과 구름기둥, 불기둥의 은혜에 비유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한 우리 한국 성도와 공동체의 반응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에서 사도바울이 이스라엘의 과거사를 해석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반응은 실망스럽게도 낙제점이었습니다. 저는 교회의 본질을 수호하고 그 정체성을 살려나가는 것이 한국교회의 당면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그 본질을 잘 지켜나갈 때 사회는 결코 교회를 깔보지 못할 것입니다. 교회의 영향력을 무시하지 못한다는 의미이지요. 현재 한국교회는 맛을 잃어가는 소금이나 꺼져가는 등불처럼 교회내외에서 인식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아픔입니다.
교회는 영적인 주도권 곧 도덕적인 탁월성으로써 세상에 그 영향력을 확대심화 시켜 가야합니다. 한국 초대교회 당시의 사회, 문화, 교육, 정치적인 영향력을 오늘에 확대 재생산해야 할 중요한 시점입니다. 교회 내부의 자정능력 향상 역시 본질 회복의 기초가 됩니다. 교회가 관료집단화 되거나, 무력한 군중으로 채워진다는 이미지는 깨뜨려야 하지요. 특히 도시교회와 농어촌교회간의 불균형 심화는 가슴 아픈 일입니다. 각 교단의 총회적인 차원에서 구조적으로 재조정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선대의 영적 헝그리정신이 세속화에 의해 다음세대에 단절되지 않을까 고민되기도 합니다. 후대에 대한 영적 유산을 계승하기 위하여 신학교의 커리큐럼의 혁신적인 변화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신학도의 손에 의하여 후일 한국교회의 질이 결정되기 때문이지요. 과연 우리의 다음세대가 전세대의 신앙적, 신학적 유산을 올바로 물려받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됩니다. 목회자와 성도들이 공히 시대를 깨우는 영성을 갖출 수 있는지 기도제목이기도 합니다. 북한교회 회복에 대한 남한 교회의 정리된 아젠다와 로드맵이 없이 북한문이 열린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한국교회는 시세에 따라 움직이는 냄비의식과 원칙과 원론에 충실한 가마솥의식의 균형을 추구하는 성숙함이 필요한 때라 여깁니다. 한기총과 KNCC의 열린대화와 합의도출에 대한 의지가 한줄기 소망의 빛을 주기도 하지요.


Q.목회자로서 가장 고민되는 순간은 어느 때이며 특별히 교회의 건강한 성숙을 생각하실 때 어떻게 그 방법이 성경적 기준에 합당하다고 하는 확신을 가지시게 됩니까?

목회자로서 어느 누구인들 목회 현실적인 고민에서 면제를 받을 수 없지만, 특히 저의 경우는 목회자의 성숙이 곧 교회의 성숙과 직결되는 문제라면 목회자는 목양의 무한 책임자이기도 합니다. 과연 나 자신의 인격과 목양의 방향성이 교우들에 대한 최선의 것인가 늘 자문하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목회자의 가정에서 성장하였습니다(부친 오상진 목사는 예장 합동 총회에 소속된 부산가야제일교회에서 43년을 사역한 이후 원로목사로 있다). 또한 순교자적 신앙의 모습으로 후학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신 서울내수동교회 원로 박희천 목사님께 배울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의 목회의 방향과 구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쳐주신 사랑의교회 원로 옥한흠 목사님과의 만남 역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한 영혼의 성숙과 사역을 위한 목양의 구조를 이루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저는 비교적 일찍 이러한 건강한 교회구조를 위한 목회철학을 목회 임상적으로나 성경신학적인 면으로 검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이 일에 대해서 저는 늘 주님의 인도하심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심정적인 부담도 적지 않습니다. 제가 경험하고 누리는 이러한 목회적인 은혜와 축복을 또 다른 사람들이 누렸다면 얼마나 풍성한 목회적 열매를 누릴 수 있을 것인가! 제가 현재 목회 현장에 적용하고 있는 평신도를 깨우는 제자훈련 목회철학은 주님의 목회자에 대한 명령이라고 받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명령에 대하여 제가 얼마나 성숙한 자세로 인격적으로, 목회적으로 진실하게 반응하느냐하는 문제입니다. 저의 고민은 가르치면서 동시에 배우는 자로서의 간격(Gap)을 가지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과연 제자훈련을 하는 목사로서 사도 바울처럼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은 자 된 것처럼, 너희도 나를 본 받으라”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아마 이 갈등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깊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청소년이 성장통(growing pains)을 겪어야 성숙하는 것처럼 저는 이러한 고민이 더욱 깊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Q.현재 많은 교회들은 성장을 위해 무분별하게 여러 가지 방법론을 사용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건전한 교회 성장을 위해 목회자 자신이 나름대로 검증할 수 있는 기준들을 가지고 접목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는데 목사님께서는 수많은 프로그램 가운데 교회에 적용해 보시는 내용의 특징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독교역사 2,000년 동안 교회를 교회되게 하며, 성도를 성도되게 한 원리가 있습니다. 그 첫째가 하나님 중심, 둘째, 말씀중심, 셋째, 교회중심, 넷째, 가정중심, 다섯째, 영적지도자 중심입니다. 어릴 때부터 이러한 원리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목회방법론을 지탱하는 원리의 선택 때문에 고민한 것은 비교적 적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역사는 변하여도 원리는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존 맥아더(John MacAthur,Jr)목사님은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원리를 첫째 하나님에 대한 높은 경외, 둘째 성경의 절대적 권위, 셋째 건전한 교리체계, 넷째 개인적인 성결, 다섯째 영적질서 존중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일리 있는 지적입니다. 릭 워렌(Rick Warren)목사님의 [목적이 이끄는 교회](Purpose Driven Church)도 교회의 구조를 설정하는데 통찰력을 제공해 주었답니다. 청년의 시기에 만난 합동신학원의 송인규 목사님으로부터도 좋은 영향을 받았답니다.
저의 신학적 배경이 총신대신학대학원의 칼빈주의적 개혁신학이기 때문에 신학적 방향 때문에 방황을 한 적은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건전한 신학적 유산을 물려주신 분들께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목사 안수 받은 이후에 경험한 미국의 풀러신학교에서의 수학은 패러다임의 변화가 얼마나 중요하고 절실한지를 깨닫게 해 준 기간이었습니다. 신학의 원리와 목회의 현장이 어떻게 다이나믹스를 가지느냐하는 문제는 목회자의 개인적인 성향과 확신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양떼들이 건강한 영성과 사회성 그리고 가정의 아름다움을 확대재생산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그 프로그램의 형식보다 정신을 목회현장에 흐르게 한다면 모두가 유용하리라 생각합니다. 평신도성장프로그램의 도입에 있어서 약간의 시대적 유행성도 고려해야겠지요. 우리 교회에서는 크로스 웨이나 피플퍼즐, 새가족정착프로그램, 신구약파노라마 각 권 성경공부 등 성도들에게 선택의 기쁨과 여지를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단 일회성적이거나 이벤트성이 강한 프로그램은 될 수 있는대로 시행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너무 이벤트성으로 흘러가다보면 정작 힘을 쏟아야 할 부분에 약점을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신도 지도자를 세우는 제자훈련과 사역훈련 그리고 순장(소그룹인도자)훈련에 대한 집중과 열정은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자 양육과 관련해서 좀 더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알기에 평신도 리더십을 훈련시킬 때, 목회자의 자기 정체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봅니다. 평신도를 세워주고 그분들께 전통적으로 목회자의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부분까지 과감하게 권한을 위임할 수 있는 모습이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목사님께서는 이것을 새로남교회에서 어떻게 구체화하고 계십니까?

물론 제자훈련의 완성이라는 것은 지상에선 힘든 일입니다. 우리는 다만 주님을 따라갈 뿐입니다. 저 역시 사도 바울이 고백했던 대로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 받는 자 되라”는 말씀처럼 살고자 노력할 따름입니다. 제자훈련은 삶으로 말하지 않으면, 공허한 이론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제가 제자훈련에서 특별히 많이 생각하는 것은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의 마음입니다. 시편에 보면 우리 과거의 죄악을 기억치 않으시고, 깊은 바다에서 건지시는 주님의 어머니 같은 모성애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기대를 하나님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 기대가 엄격함으로 나타날 수 있어요. 어떤 면에서는 매를 드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어요. 이런 어머니의 한 없이 자애로운 마음과 아버지의 강직한 모습이 어우러지는 것이 제자훈련에 접목되는 것 같습니다.  
주어진 은사가 훈련을 통하여 드러나고, 강화된 교우들의 영향력은 매우 큽니다. 이미 안수받은 목회자에 의한 사역의 독점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안수받지 않았지만 인격과 사역적인 면에서 탁월성을 나타내는 교우들이 곳곳에 많이 있습니다. 저는 평신도의 사역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위임합니다. 물론 교회의 질서는 조화롭게 지켜져야겠지요.

Q.한국 교회에서 담임 목회자는 많은 일들을 통해 사역의 부담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목회의 규모가 커질수록 그런 일들은 점점 더 심해지는데 어떻게 이런 부담들을 해결해 나가야 할까요?

교우들에게 “더불어 살아가는 원리”를 강조한다면 그 원리는 목회자간 그리고 교회 간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것을 저는 한 지역사회의 복음화와 성시화를 위한 상호 협력과 격려차원에서 생각합니다. 우리교회에 속한 대전광역시의 복음화를 위하여 저와 교회는 마음을 담은 협력을 하기를 결정했고 또한 실천 중에 있습니다. 물론 보는 이들의 입장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나겠지요. 목회자와 목회자, 교회와 교회의 상호 협력은 마치 사도바울과 베드로의 복음화와 선교를 위한 따뜻한 악수에 비교할 수 있겠지요. 우리가 사는 시대는 혼자서 살 수 없는 시대가 이미 되어 버렸습니다. 거룩한 네트워킹이 없이는 전체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번 미국의 카트리나 사건 때에 역사와 예술의 도시 뉴올리언즈가 순식간에 물에 잠긴 것은 둑 전부가 아니라, 한 부분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정말 복음적인 교회가 주님의 깃발아래 뭉치지 않으면 대 사회적인 영향력에 있어서나, 문화적인 변화 대처에 손을 놓은 형국이지요. 한 지역교회의 담임목사로서 사심 없는 협력을 늘 소원하고 있습니다. 교단차원에서도 이 원리는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에서도 논의되는 상생 곧 윈윈의 원리는 먼저 개 교회와 지역교회 연합 나아가 교단적인 차원에서도 실천 되어야 하리라 믿습니다. 조심스러운 것은 외부적인 연합을 핑계로 내부적인 결속과 성장에 장애를 불러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부분입니다. 지역교회 목회자는 개 교회의 성장과 외부의 연합과의 관계에서 늘 창조적인 긴장을 멈출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현재 대전광역시기독교연합회의 유일한 상설기관인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수년을 섬길 수 있는 것도 연합 정신의 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단 책임지는 자리에서의 진퇴는 결정적인 시기를 분별하는 지혜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감투는 있되 섬김과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한국교회에 대한 일각의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 사실 여부를 떠나 결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목회자의 섬김의 스타일은 정치인들이나 사회인들과는 차원을 달리해야 되지 않을까요?


Q. 목회자의 영적 훈련은 너무나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기도와 영적 성숙, 독서, 말씀 연구 등은 목회자 스스로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 아닐 수 없는데 이런 것들을 어떻게 훈련시켜 가야 할까요?

제자훈련하는 목사의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목회적인 장점은 정기적 반복적으로 자기 성찰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설교자로서의 목회자가 잘 가지지 못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훈련자 목회자는 훈련생들 앞에 설 때마다 자신을 필연적으로 돌아봐야 합니다. 물론 반복적인 사역이기 때문에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은 항상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귀한 양떼를 맡겨 주신 주님의 은혜에 대한 항송함과 인격적으로 탁월한 교우들을 만남에 대한 조심스러움이 어우러져 늘 갈급한 영혼과 가난한 심령으로 자신을 추스르게 된답니다. 교우들과 더불어 함께 말씀 앞에 서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울고 웃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목회의 영적 근육이 강화됨을 느낍니다. 저는 지금도 제자훈련 목회를 하지 않는다면 과연 어떤 스타일의 목회자가 되었을까 생각하면 두렵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지요. 저 개인적으로 의식의 편식을 배제하기 위하여 책을 읽으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독서 정보를 통해 한국교회의 영적인 풍향도를 읽기도 하지요. 부교역자들과의 정기적인 토론은 담임목회자로서의 굳어질 가능성이 농후한 의식을 흔들어 놓는 기회가 됩니다. 국제제자훈련원을 통한 제자훈련목회자들과의 격의 없는 교제와 교회갱신협의회에 속한 동료선후배들과의 의식의 교류는 목회자의 심지를 새롭고 견고히 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저는 원래 외부 집회를 자주 나가지 않는 편입니다. 그런데 때에 따라 외부집회를 하면서 느끼는 부분들이 도전이 되기도 합니다. 집회 하는 교회의 영적 분위기와 교우들의 형편 그리고 담임 목사님의 목회의 애환을 주고받으면서 많은 자극을 받기도 합니다. 한 지역에서만 머물 수 있는 의식과 목회 현장의 내용들이 외부의 신실한 목회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점검되고 조정된다면 얼마나 축복된 일입니까?

제일 중요한 목회의 원리는 무엇이시며 지금까지 사역하시면서 제일 힘들었던 경험과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셨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사도행전 13장 22절의“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자라”라는 말씀처럼 저는 사역자는 무엇보다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사역을 하는 것이지요.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을 배출하기도 합니다만 열쇠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회자로 설수 있지요. 목회의 원리는 먼저 나 자신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곧 마태복음 6장 33절처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정의를 추구하는 목회자상이지요.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의 어떤 명령을 순종해야 하는지는 이미 말씀에 다 드러나 있습니다. 주님께서 강조하신 최고의 명령과 최대의 계명 곧 영혼구원과 영혼사랑에 대한 명령에 대한 응답이 목회현장에서 강력하게 효과적으로 펼쳐지게 하는 통로로 쓰임 받는 목회자 그런 목회자상을 저는 추구합니다. 목회는 종합예술입니다. 동시에 어느 구름에서 비가 쏟아질질 알 수 없는 영혼구원의 최전선이기도 합니다. 한시라도 목회적 긴장을 풀 수 도 없고 풀어서도 안 됩니다. 문제로 말한다면 정말 문제없는 목회현장이 지상의 교회에 있을까요? 문제의 다소의 차이이지 문제없는 목회현장은 결코 이 땅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아니라 그 문제에 대한 극복의 의지와 대안제시입니다. 제가 힘들어 한 목회현장의 경험은 역시 상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자들과의 갈등이나 미성숙한 교우들 때문에 발생한 문제들 심지어 목회의 칼바람, 불바람 시베리아의 찬바람 같은 어려움도 어떤 태도와 각도에서 다루느냐가 그 결과의 차이를 낸 다고 봅니다. 저의 개인적인 목회현장의 어려웠던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러한 모든 것들을 견디며 오늘까지 사역하고 있습니다. 그런 모든 과정들도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과정이 없이 오늘의 내가 과연 가능하겠는가? 질문해 본다면 여전히 목회의 알파와 오메가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명제에 도달하게 됩니다.
제가 새로남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한 이후에 우리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는 정말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큰 건물 지은 목사로 이야기하지만, 중요한 것은 건물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 자신의 속사람을 목회자로 연단시켜 주신 것과 어려운 과정을 지나면서 성도들이 영혼의 키가 자라고 믿음의 근육이 강화되었다는 사실이 늘 은혜로 가슴에 새겨져 있습니다.

Q. 한국 교회 목회자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늘 사명을 갖고, 즐겁게 어느 곳에서 목회하든지 어떤 형태로 사역하든지 주님 앞에 즐거운 마음을 갖고 사역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사실 목사의 자질이 부족한 인간입니다. 근데 하나님이 정말로 필요하셔서 부족한 사람을 들어서 주님이 목회자로 세웠다는 사실이 늘 마음에 감격스럽죠.
새벽에 나올 때도 교회를 보면 모든 목사님들이 다 그러시겠지만, 내가 쓰임 받는 것에 대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제가 즐겨 부르는 찬송 중 하나가 ‘늘 울어도 눈물로써’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무슨 기대가 있으신지 저 같은 인간에게 이런 놀라운 목회의 기회와 복을 주시는지 늘 감사할 따름입니다. 고맙습니다.  

일시 : 2006년 1월 25일(수) 오후 4시
장소 : 대전 새로남교회 목양실
대담 : 대전 새로남교회 오정호 목사
진행 : 최원준 목사([목회와신학] 편집장)
사진 : 이남수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