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인생인가? 대화인생인가?
2006.04.06 15:25
대지가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 덮여 있다. 그 누가, 그 무엇이 우리에게 소박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봄을 막아낼 수 있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계절로는 완연한 봄이 되었지만, 마음의 세계가 여전히 겨울 공화국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왜 새싹의 신선함과 봄의 대지위로 내려 비치는 따스함이 제한받고 있을까? 그 이유는 대화의 부재에 있다. 시간과의 대화, 계절과의 대화가 없기에 계절의 축복과 상관없이 살고 있다. 왜 대화가 없는 독백인생으로 주저앉아 버리게 되었을까?
바로 성공지향적인 조급함의 함정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 들었기 때문이리라. 계절과 대화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인생의 춘하추동을 상실하게 된다. 오직 분주함만이 그의 삶을 가득 채울 뿐이다. 자연과 대화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일컬어 예술가라 한다. 시인은 저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흐르는 시냇물과 조약돌 하나와도 대화할 줄 아는 사람이 시인이 된다. 자연의 소리와 영혼의 소리가 공명되어 상호 조화로운 주파수가 이루어질 때에 시와 그림의 아름다움으로 나타낼 수 있다.
항상 자신만의 세계에 집착하여, 들리는 소리라곤 탐욕에 찌들은 자신의 소리만으로 충만한 사람이 어찌 내면의 깨어있는 감각을 지닐 수가 있을까. 자연은 창조때부터 들리지 않고, 심지어 보이지도 않지만 온 우주에 충만한 대화를 항상 펼쳐왔다. 문제는 분주함과 오염된 성공에의 질주라는 괴물이 사람의 마음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본다. 정욕에 사로잡힌 사람이 자연의 아름다운 미소에 감동한 적이 있는지를. 탐욕에 노예된 자가 나눔의 축복을 맛보아 알기는 하는지를!
독백인생은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기쁨을 선물할 수 없다. 강철로 만든 대문에는 봄의 입기운이 자리 잡을 공간이 없다. 비록 풍요롭지는 않지만 나무와 창호지로 만들어진 소박한 문은 이웃과의 소통은 물론 계절과의 대화에도 넉넉하리라.
가족은 말이 통하는 관계이다. 말이 통해야 마음도 통할 수 있다. 그러기에 건강한 가족의 표지는 마음 담긴 대화이다. 위험한 가족은 아파트 평수가 작은데 있지 않다. 대화의 부재에 있다. 대화 없는 부부는 위험신호이다. 의사소통이 희소한 부모자식의 관계는 아무리 집안에 최신 오디오, 비디오 시설을 그럴싸하게 갖추어 놓았다 해도 여전히 타인의 사람일 뿐이다. 한 지붕 세가족으로 거주할 뿐이다. 이들에게는 문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새롭게 떠오르는 문제는 끊이지를 않게 된다. 대화의 꽃이 개나리처럼 만개하는 가정에는 삶의 냉소적인 우울함이 깃들 공간이 없다.
의사소통이 메말라 버린 직장은 적자생존의 현장일지언정, 생활의 윤택함을 위한 창조적 공간은 될 수 없다. 상호소통지수는 직장사랑지수와 함께 가기 마련이다.
관료적 기운이 센 직장에는 마음의 유통은 없고, 명령과 복종만 있을 뿐이다. 사람은 물류를 유통하는데 의미와 보람을 느끼기 전에 상호 마음을 유통할 때 만족하는 존재이다.
직장생활에서 독백의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은 인간의 벽이 그만큼 높이 쌓인다는 뜻일 것이다. 독백의 검은 커튼을 과감하게 걷어내고, 따스한 대화의 현장으로 우리의 직장을 리모델링하자.
선진민족일수록 대화의 기술이 개발되어 있다. 대화를 할 줄 안다는 것은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이미 자리 잡고 있음을 뜻한다. 대화는 자기존중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내가 존중받기를 간절하게 희망하는 만큼, 나는 당신 또한 존중하기를 원한다는 메시지는 대화라는 양식으로 표현된다. 자기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대화의 성공자로 설 수 없다. 자기사랑과 자기긍정이 없기에, 타인에 대한 마음담긴 존중이 있을리 만무하다.
대화에도 격이 있다. 지식이 곧 대화는 아니다. 많이 배웠다고 반드시 대화를 잘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대화의 물꼬를 튼다. 사람을 많이 알아야 대화를 잘 할 수 있다. 정보가 없어서 대화에 장애를 느끼는 빈도보다 인간애의 부족함 때문에 대화의 단절이 더 많은 우리의 모습이다.
정치지도자는 권모술수의 달인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화의 달인을 의미한다.
정치인이 상대를 이용하려는 의도만 가득한 채 대화의 마당에 나아간다면, 그것은 봉사자가 아니라, 모리배의 길을 걷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대화할 수 있는 능력, 곧 소통할 수 있는 은총을 우리 각자에게 선물해 주셨다. 곧 독백인생(Monologue People)으로 살지 말고, 대화인생(Dialogue People)으로 살라고 하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 자연과의 대화를 즐기는 사람을 예술가라 한다. 사람과의 대화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사회인이라 한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과 대화 할 줄 아는 사람을 기도하는 사람이라 한다. 사람은 그 대상이 자연이건, 사람이건, 창조주이건 대화를 통한 관계의 성공자로 설 때 비로소 존재의 의미와 보람을 맛본다. 새봄의 축복이 대화의 문을 여는 삶으로 열매 맺을 수는 없을까?
2006. 4. 1 충청투데이
오정호 목사(새로남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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