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생활의 열쇠
2006.04.30 09:27
행복한 가정생활의 열쇠
“전투에 나갈때는 한번 기도하라, 바다에 나갈때는 두 번 기도하라, 결혼하러 나갈때는 세 번 기도하라!”
러시아의 옛 격언이다. 언뜻 생각하면 모순처럼 느껴지는 말이다. 전투와 바다에 나갈 때 기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행복을 고스란히 안아 올리는 결혼에 무슨 기도가 필요한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거기에 헤아릴 수 없는 지혜가 깃들어 있다. 인류역사이래 전투나 항해를 통해서 상처받고 실의에 빠진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결혼생활 즉 가정에서 상처받고 아픈 사람이 많다는 의미이다. 군인이 완전무장하지 않은채 전투에 뛰어들면 실패를 낳는다. 거친 파도와 맞서려면 어부의 노련함이 필요하다. 그런데 준비되지 않은 결혼에 그저 무지개빛 낭만만을 추구하며 뛰어들때 그 결과는 물어보나마나 아니겠는가.
의외로 준비되지 않은채 결혼예식장을 향해가는 남녀들이 많다. 필자는 여러 커플을 결혼주례하면서 온 몸으로 느낀다. 청춘남녀들의 결혼행진에 함께 참여하면서 애교로 보아줄 수 있는 부분도 있음을 안다. 그러나 아무리 양보한다 해도 결코 웃어넘길 수 없는 부분은 있다. 그것은 결혼에 대한 준비되지 못한 생각과 어설픈 태도이다. 생각의 어긋남은 삶의 어긋남으로 이어질 것이고, 태도의 불량함은 삶의 함량미달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열매맺는 가정생활을 위한 기본적인 준비는 가치체계(Value System), 일(Job), 의사소통(Communication)에 대한 준비이다.
첫째, 결혼과 가정의 최초의 설계자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결혼에 대한 가치관을 결혼관이라 한다. 인생관 역시 사람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의 합산이다.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만남이상이다. 반드시 결혼의 설계자이신 창조주께서 개입할 공간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결혼이라는 인간 최대의 사건에 남녀 배우만 있고, 감독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썰렁하겠는가? 결혼제도가 단순하게 사람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거기에는 우연(偶然)만이 자리잡는다. 우연하게 만났다가 우연하게 갈라서는 것은 사람에게는 결코 어울리지도 않고 축복되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은총속에서 남녀가 만나고, 삶의 동행자가 되는 것을 필연(必然) 혹은 섭리(攝理)라고 말한다.
결혼은 삼각형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한남자와 한 여자 그리고 한분 하나님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을 결혼생활에 모실때에 삶의 질서가 잡힌다. 축복된 가정생활은 결코 돈과 재능으로만 이루어지지 못한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은총과 성스러움과 순결함이 반드시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 결혼제도의 설계사이신 창조주하나님을 모시고 그의 뜻대로 경영하는 것이 결혼생활의 순리가 되리라 믿는다.
둘째, 일에 대한 올바른 태도이다.
일은 필요악이 아니다. 육체노동이든지, 정신노동이든지 노동은 축복이다. 직업이 돈 버는 수단으로만, 전락하면 정신은 무너지게 된다. 놀고 먹으려는 생각은 자신과 가족을 망가뜨린다. 노년의 은퇴가 축복이 되려면 성실하고 정직한 땀의 현장이 전제되어야 한다.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올바른 직업관이 없이 결혼생활에 뛰어든다. 내가 나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확신이 없기에 타인의 직업에 대한 존중도 뒤따르지 못한다. 자신의 직업에 대한 열정과 전문성은 자신을 뿌듯하게 함은 물론 이웃에게도 축복이 된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이 선망의 대상이 되던 시대는 지났다. 자신의 땀으로 가정을 세우고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가정건강지수와 사회건강지수는 높아진다. 올바른 직업관 없이 결혼에 뛰어드는 것은 지게를 지고 바다에 뛰어 드는것과 같다.
셋째, 원활한 의사소통을 훈련해야 한다.
최근 들려오는 몇몇 연예인들의 결혼생활 불화소식은 우리 모두의 마음을 우울하게 한다. 그들은 드라마에서는 위대한 커뮤니케이터였을지 모르지만, 일상에서는 아니었다. 대화는 시나리오를 외는 작업이 아니다.
가정에서 대화는 연예활동이 아니다. 대화는 가면을 벗어버리고 서로의 진면목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남이 써 준 대사를 외는 것처럼 대화할 수 없다. 대화는 상대방의 인격존중으로부터 출발한다. 대화의 생명은 진실함이다. 진실함이 무너지면 그 이상의 대화는 의미를 잃어버린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거침없는 자기표현으로 톡톡튀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한다. 불특정다수인 대중 을 향하여 자기 개성을 드러낸다고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러나 결혼생활의 대화의 상대는 이미 정해져 있다. 우리는 한사람을 얻기 위한 진지한 노력이나 인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결혼생활의 의사소통은 한사람을 얻고 섬기고자하는 사랑이 동기가 되어 인내의 꼴을 먹고 자라난다.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상대를 감동시키는 대화의 달인이 되었으면 한다.
가정의 달 오월 첫날에 이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의 가정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계시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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