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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목사님의 목회에서 교육이 차지하는 위치 혹은 교육이 담당하는 역할은 어떤 것인지요?

교육 혹은 훈련이 저의 목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전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성 싶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교육이란 말보다 훈련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합니다. 제가 목회하는 대전 근처에 육군논산훈련소가 있습니다. 왜 논산교육소라고 부르지 않고 훈련소라고 부를까요? 저 역시도 논산훈련소 27연대에서 훈련받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교육은 지식의 전달로 정의됩니다. 요새 말로는 정보 접촉 내지는 전수로 이해할수 있겠지요. 훈련은 생각의 변화를 통한 삶의 체계와 양식의 변화까지 포함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목회자는 목양자(Pastor)이면서 훈련자(Trainer)라 생각합니다. 교육이란 용어를 훈련까지 포함하는 범위로 생각할 때 교육은 실상 목회의 모든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교육자의 역할모범(Role Model)으로 우리 앞에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전도자와 설교자 그리고 훈련자의 모습을 통하여 목회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목양정신을 가장 충성스럽게 이어 받은 사도 바울도 탁월한 훈련자였습니다. 물론 그 자신을 세우는 전문가이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그가 목양하는 피교육자들을 향하여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은자 된 것같이 너희도 나를 본받으라” 일관성있게 강조하였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 자신은 강단이나 교실안에서만이 아니라 저의 삶 전부를 던져서 교우들에게 교육자와 목양자 그리고 훈련자의 모습으로 아름답게 서기를 원합니다. 특히 뒷모습이 아름다운 영적지도자로 신뢰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교육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저 자신이 총신대학과 대학원시절에 기독교 교육을 전공했을뿐 아니라, 옥한흠목사님께서 사랑의교회 담임으로 계실 때에 제가 7년을 부교역자로 섬겼기 때문입니다.
평신도를 깨우는 목회의 현장에서 체험한 것은 내실있는 교육의 중요성이었습니다. 실상 사람이 바뀐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동시에 얼마나 힘든 일이기도 합니까? 겉꾸밈의 교육은 겉절이 교인만 양산할 뿐이지요. 성령주도적 교육이 성도를 살리느냐 죽이느냐 분수령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남교회에 담임목사는 목양의 무한 책임자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교육에 생명걸어야 한다는 의미가 되겠지요.

2. 새로남교회를 통해서 목사님께서 지향하시는 교육 방향은 무엇인지요?

새로남교회의 비전선언문(Vision Statement)은 우리교회의 목양의 방향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여 천국의 확신
(영생의 선물)을 가지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하여,
하나님 나라의 정병(예수그리스도의 군사/복음의 증인)으로 세운다
*전도- 양육-훈련-영적재생산 (복음의 증인)

사람 얻는 목회(Win Men) 사람 세우는 목회(Build Men) 사람 파송하는 목회(Send Men) 즉 그리스도의 성품과 사역을 계승하는 충성된 제자, 성숙한 성도를 세우는 것이 사역의 중심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의 핵심은 “사람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보혈을 흘려 주심으로 “사람을 살린 것”입니다.
제자훈련의 스타일로 표현하자면 “세상으로부터(from the world)부름 받은 성도들을 하나님의 진리로 무장시켜 소명을 깨닫게 하여 다시 세상속으로(into the world) 보냄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우는 사역”입니다.


교회는 우리 주님과 사도들의 교훈과 사역을 계승하는 현장입니다. 만약 교회가 사람을 얻고, 키우는 일에 실패하면 부분적인 실패가 아니라 전부가 실패한 것입니다. 이 정신이 주님의 정신이며 제자훈련의 정신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교회가 게토(Ghetto)화 되어버리면 세상은 소망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교회 자체는 꺼진 등불이며 맛 잃은 소금으로 전락하고 말겠지요.


3. 새로남 교회에서 비전을 품고, 관심을 쏟고 있는 구체적인 교육프로그램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저는 부득이하게 교육프로그램이라는 말을 차용하지만 프로그램이란 단어를 선호하지 않습니다. 저는 사역(ministry)이라는 말을 좋아 합니다. 뉘앙스의 차이라면 변화에 대한 기대의 깊이와 집중력의 차이라고 굳이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한사람에 대한 집중 혹은 한사람 붙들기를 원맨 비전(one man vision)이라고 한다면 프로그램 핵심은 한사람에 대한 끈질긴 집중입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골로새서 1:28-29)
한사람 얻기에 대한 열망과 전략이 프로그램으로 외부에 보여지는 것이지요.


새들백교회의 릭 워렌 목사님이 건강한 교회를 지향하는 가운데 개념을 정립한 평생 개발과정(Life Development Process, 야구의 내야 사각형)과 헌신의 동심원(Concentric Circles, 다섯 개의 동심원)이 좋은 교육 프로그램의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교인에의 헌신- 성숙에의 헌신 - 사역에의 헌신 -사명에의 헌신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일반 교육에서도 중요시하는 눈높이를 맞추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교회에 등록한 새가족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과 자신을 세우는 프로그램(제자훈련) 타인을 세우는 프로그램(사역훈련)이 뼈대가 되어 교육전체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제자훈련과 사역훈련은 교회건강을 책임지는 핵심사역자를 세우는 과정이기에 대단히 소중한 사역입니다. 물론 성장훈련 프로그램에도 교우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저는 남녀 전도회 모임의 회장과 임원들을 위하여 격조 높은 모임, 영적 흡인력 있는 모임을 만들기 위하여 기본정신과 기술을 전수하고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예수님을 닮아가는 과정에서 벗어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새로남교회의 훈련 프로그램을 알고 싶으신 분들은 홈페이지를 방문하시면 살펴볼 수 있습니다.(www.saeronam.or.kr)

4. 청년 사역에 대한 관심이 많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청년 교육에 대한 목사님의 비전과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서울과 달리 지방에서는(대전이 광역시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생들과 청년사역이 쉽지 않은 현실입니다.
그 이유는 자체적으로 구심점 형성이 매우 까다롭다는 것입니다. 구심점 역할을 감당할 형제자매들이 능력이 있으면 있을수록 역설적으로 떠날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교회 출신의 대학청년들이 서울의 소문난 교회에서 충성스럽게 봉사하고 있습니다. 중소도시나 시골의 형편은 상대적으로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제가 청년사역에 남다른 관심이 있는 이유는 저 자신이 청년의 시기에 놀라운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내수동교회 대학부 멤버로서 또한 지도자로서의 경험은 오늘의 저를 만들어 준 모판이 되었습니다. 이후 사랑의교회 대학부를 지도하였습니다. 청년이 쓰러지면 나라가 쓰러집니다. 대학청년부가 파리를 날리면 교회의 미래는 암담합니다. 우리가 알듯 청년은 현존하는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지방에 있는 교회로서 우리 교회는 대학1부 2부와 청년1부 2부가 있습니다. 각 부서를 4분의 목사님께서 지도하십니다. 저와 교우들은 열망합니다. 모든 교회 청년들이 펄펄 살아야 하겠지만 새로남교회 대학청년부가 대전충청권의 희망의 센터가 되며 부흥의 진원지가 되었으면 하는 열망이 강합니다. 저는 담임목사로서 대학청년부에 속한 아들 딸 같은 멤버들을 얻어내기 위하여 남다른 열정으로 그들에게 다가갑니다.
저 자신이 머리 색깔이 하얗지만 저의 가슴은 23살 청년의 열정을 품고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왜 23살이냐고요? 23살 나이는 대학4학년의 나이입니다. 무한한 가능성의 나이이며 인생을 개척해 나갈 수도 있고 반대로 장애물에 걸려 굴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동시에 가진 나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믿음의 아버지로서 청년들을 격의없이 대합니다. 모든 청년이 저를 너무 좋아합니다. 우리 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청년의 때에 기본기가 다져지지 않으면 예수 믿어 구원받은 사람이 될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기는 힘든 현실을 보면서 청년의 때가 우정의 기회, 훈련의 기회임을 강조합니다.


새로남교회 대학 청년부를 통하여 대전과 중부권의 모든 청년들이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정직하게 표현한다면 청년을 향한 내 마음의 열정은 대학 청년부 담당하는 교역자의 열정에 조금도 약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저만의 착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청년 훈련에 대한 비전 역시 속사람의 강건함을 통하여 은사대로 주 앞에 후회함이 없이 쓰임 받는 것입니다. 특히 평생의 동역자(vision friend)를 얻을 수 있는 축복을 누리도록 해야지요.
장년훈련과 차이점은 인생의 결정적인 시기를 맞이하고 있는 젊은이들이기에 주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자신과의 관계에 대한 성경적이고 긍정적이고 소명적인 부분을 인식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 청년훈련의 핵심사항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성경적인 가치관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손발로 체화되는 역동성과 현장이 있는 프로그램이 되어야 열매가 있겠지요.

5. 열정과 부흥이 있는 교회학교를 꿈꾸는 교역자들에게 당부하실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일만 스승 있지만 아비의 심정으로 즉 부모의 심정으로 사역하는 자는 많지 아니하다”고  교육현장을 진단하였습니다. 왜 부모의 심정 곧 주님의 심정으로 맡겨진 영혼들에게 나아가지 못할까요? 그 이유는 소명의 부재와 기대감의 허약함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주일학교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의 소명감과 자존감이 높아져야 합니다. 위대한 주님의 일꾼 치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계획하신 영적스승과의 만남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군가는 씨를 뿌리고 누군가는 김을 매어야 합니다. 누군가는 방황의 시기를 지켜보고 누군가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합니다. 저 역시도 중등부를 맡아 지도한 때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오기전 한시간전에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완료했습니다. 열정은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사랑은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속성이 있습니다. 세대간의 생각과 문화의 차이도 궁극적으로 사랑의 용광로에서 녹여낼수 있다고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에게 질문하시고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는 고백을 들은 이후에 “내 양을 먹이라” “내 어린양을 먹이라” 생명양육에 대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원론적인 이야기 같지만 담임목회자는 소명을 받은 교역자와 교사들에게 실제적인 격려의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인적인, 재정적인, 행정적인 마음 담긴 지원이 없이는 어떻게 현장에서 교역자와 교사들이 힘을 다하여 뛸 수가 있겠습니까? 부서담당 교역자들은 학부모들과 당회와 담임목사를 감동시키는 사역의 열정과 탁월성이 필요합니다.
부흥은 천사들이 갖다 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한계 없으신 은혜를 먼저 체험한 사역자의 가슴으로부터 부흥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벤치마킹(bench-marking)도 필요하겠지요. 영적인 일일수록 치밀한 전략과 사역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현재 한국교회에서 주일학교가 약화되어 가고 있다는 것은 현재는 물론 미래한국교회에 재앙입니다. 이 의미는 불신앙의 세대가 일어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교육현장에서 땀 흘리시는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진심으로 위로하며 축복합니다.
우리의 손길을 통하여 오늘의 디모데와 엘리사와 여호수아가 세워질 것입니다.
“교회교육”같은 전문성이 있는 매거진을 일관성있게 구독하는 것도 영적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에 유익함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6. 위의 질문에서 이야기 하지 못하신 특징있는 목회적, 교육적 사역과 관심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목회적인 은혜가 풍성한 중에 특히 감사한 것은 귀한 멘토(mentor)를 만났다는 사실입니다.
박희천 목사님과 옥한흠 목사님 육신의 부친되시는 오상진 목사님과의 귀한 만남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분야에서 탁월하게 쓰시는 사람들을 찾아 나아가십시오. 이러한 만남을 통하여 저는 목회의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일 수가 있었습니다. 소위 창문 고쳐 끼우는 방식이 아니라 훌륭한 주의 종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목회의 큰 물줄기 곧 기둥을 마련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목회의 중심을 성경적으로 확립하며 목회철학을 세우는 일은 쉬울 것 같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저는 목회철학의 성경중심성, 현장성, 건전성, 유효성에 대하여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리더가 자연스레 사회 리더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는 일을 볼 때 마음에 큰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때가 되면 부교역자 훈련과 재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을 한국교회에 펼쳐 놓고 싶습니다.

2007. 3월호 교육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