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삼년전 우리노회 노회장 목사님 연세 쉰여덟
사람좋고 온유하시던 동역자
대학병원의사가 완치되었으니 걱정 말라던 병이 재발되어
주님의 부름을 받으셨다.
다시 대학병원에 입원한지 두달 보름만에

주일 2부 예배드린후에
다음 예배위하여
목양실에서 숨을 고르고 있던중에
우리교회 부목사님 숨가쁘게 들어와 목사님의 별세소식이 휴대폰 문자로 날아왔단다.

저녁예배후에 모든 부목사님들 함께 모아
조금 정성 거두어 조의금 마련하여 문상을 갔다.
노회 선배 돌아가셨는데 부족하나마 후배 노릇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쯤은 다그쳐서 동행하였다.
어떤 부목사님은 이런 일은 담임목사들끼리 찾아보는 것이 예라고 하던데 말꼬리를 흐렸다.

장례식장 도착하니 수척해진 사모님이 날 알아보고 어색한 인사를 한다.
이제 막 결혼한 따님과 결혼 앞둔 따님
사위와 조카가 상주노릇을 하고 있었다.
따님 결혼시켜 사위라도 맞았으니 조금 위로가 되겠구나 머리가 복잡해졌다.

조문후에 사이다라도 한잔하고 오면 유족 마음에 조금 위로가 될까하여
동행한 이들이 함께 차려진 음식상에 앉아
떠나가신 목사님을 이야기했다.
부목사님 중 태반이나 얼굴과 이름이 연결되지 않기에

화요일 이른 아침
노회장으로 열린 장례예배,
십여분전에 도착하여 떠나가신 목사님의 시찰에서 활동하는
몇몇 목사님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시간이 되고, 사람들이 정리되어
장례예배가 시작되었다.
슬픔 가득 떠나가신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던 시골교회 남녀 교인들
어깨 숙인채 둘러 서 있다

손에 든 발인예배 순서지 상단을 가득 메운 목사님들 이름은 제법 많으나,
동역자의 마지막을 환송하는 노회 목사님들 손가락 꼽을 정도,
예배장소까지
영구차 대기하는 영안실 건물 밖,
가을은 깊어가는데
마음까지 스산해지는구나

목사님의 유해가 영구차로 향할 때
따님이 뒤따르며 흐느끼다가
유해가 영구차에 실릴때에
아빠, 왜 죽었어! 비명처럼 외쳐진 한마디
둘러선 조객들과 내 심장에 비수처럼 꽂히는구나

현직 노회장 목사님의 요한계시록 위로의 메시지후에
떠나가신 목사님 교회 함께 섬기던 장로님의 인사말씀이 더욱 허허롭다
“우리 목사님 돌아가시게 되어 모시던 저희들이 죄스럽습니다”

인생사
한번오고, 한번 가는 것, 사람 힘으로 안 되는 영역
누가 자신의 인생여정을 알 수 있으랴

남은이나
떠나간이나 천년이 하루 같은 창조주앞에서
과연 무슨 차이가 있을까
오래사나, 아침에 사나
광역시에 목회하든
시골에서 목회하든
다 주님의 일인 것을

장례예배 마치고 돌아서는 길에
평소 가까이 지냈던 목사님 한 분이
“어려운 살림 가운데 20평짜리 아파트 하나라도 마련해 놓았으니 망정이지
사모님 큰 고생 할 뻔 했다.”
육신이 있기에 육신의 거처가 필요하듯,
영혼이 있기에
영생의 처소가 필요하리라.

청명한 가을 아침
내 마음에는 왠지 모를
무거운 바람이 불고 지나갔다.

(주후 2007. 10. 1 고 윤한우 목사님 장례예배 참석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