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도박이 아니다
2009.06.04 10:20
2009. 1. 1 충청투데이
오정호목사(새로남교회 담임)
우리 국민의 DNA속에는 성실과 열정뿐 아니라 한탕주의와 대박주의도 공존하는 것 같다.
지난해 소문난 어떤 연예인이 밤샘도박 끝에 거액을 날리면서 도박에 빠져든 사건을 우리 는 접하였다.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도박하는 첫날 잃든지 따든지 상관없이 도박에 빠져들 개연성은 항상 존재한다고 한다.
땀 흘리지 않고 얻을 수 있다는 손짓이 얼마나 매력적인 것인가. 수고하지 않고 열매를 거둘 수 있다는 유혹은 인류 역사이래 사람들의 영혼을 노려왔다.
최근에 방영된 풍자적인 드라마에 나타나는 어떤 가정의 가훈은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였다. 건강한 사회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상호 신뢰는 자신에게 맡겨진 직무에 대하여 성실하리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한번 신뢰가 무너지면 처음의 상태로 되돌리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억울한 심정으로 우리가 겪고 있는 세계적인 금융대란도 그 실상을 알고 보면 남의 돈을 이용하여 천문학적인 이익을 취하고자하는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경제학자들조차 미국에서 벌어진 이 끔찍한 사태의 핵심은 도덕적인 불감증에서 기인했다고 진단하였다. 어디 이런 유형의 일들이 한 두가지인가.
우리의 다음 세대를 생각할 때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것중의 하나가 젊은날부터 돈에 중독된 젊은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다. 중독과 몰입의 차이는 무엇인가? 몰입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와 재능을 십분 계발하여 자신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중독은 자신과 타인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탐닉하여 자신과 타인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개인의 역사는 중독과의 싸움의 역사로 해석할 수 있다. 알코올 중독 때문에 무너진 가정이 한 두 가정인가. 최근에는 인터넷 중독으로 자기의 본분을 잊어버린 채 PC방에 붙어사는 청소년들이 한둘이 아니다. 현란하게 돌아가는 외모지상주의의 덫에 걸려서 성형중독까지 우리의 입에 오르내리는 세태를 보면 한사람이 태어나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가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왜 이러한 한탕주의와 대박주의의 풍조가 성실과 근면을 가치로 삼았던 우리나라에서 극성을 부리게 되었을까? 여러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지만 과정을 생략하는 것을 능력으로 아는 풍조가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정상적인 과정을 성실하게 이행해야하는 농경사회의 가치가 산업사회와 디지털사회로 옮겨지게 되면서 색이 바래게 되었다. 봄에 뿌리지 않는데 가을에 거둘 수 없다는 사실은 인류 역사이래 경험된 중요한 가치였다. 노동가치의 사회 곧 땀을 흘리는 만큼 얻을 수 있는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였다. 그러나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속도가 가치로 전환되는 국면을 맞이하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력서에 보면 과정을 생략한 채 뛰어 넘는 사람을 매우 능력 있는 사람으로 간주한다. 과정을 단숨에 뛰어 넘는 것이 능력을 보여주는 것일 수는 있으나 도덕적 가치를 외면한 채 미덕이 될 수는 없다.
과정생략의 유혹은 도처에 존재한다. 도덕성을 상실한 자본주의는 결코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지 못한다. 천박한 자본주의 정신은 적게 투자하여 효율을 극대화하고자하는 인간의 이기성을 부추김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복음이 우리나라에 전파되어 왔을 즈음, 도박이나 술에 매여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러한 분위기를 생산적으로 전환하기 위하여 부른 노래가 있다.
“어둔 밤 쉬되리니 네 직분 지켜서 찬이슬 맺힐 때에 일찍 일어나 해 돋는 아침부터 힘써서 일하라 일할 수 없는 밤이 속히 오리라” 창조주께서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선물해주신 한해를 값지게 살려내기로 결심하면서 새해를 맞으면 어떨까?
댓글 0
번호 | 제목 | 날짜 |
---|---|---|
113 | 어머니의 마음으로 새해를 | 2010.01.01 |
112 | “함께(WITH)의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 2009.12.04 |
111 | 가족전선에 이상 없는가 | 2009.06.04 |
110 | 축복의 통로가 되는 기쁨 | 2009.06.04 |
» | 인생은 도박이 아니다 | 2009.06.04 |
108 | 생산적인 관계를 위하여 | 2009.06.03 |
107 | 칼빈도 우리를 자랑스러워할까? [1] | 2009.05.10 |
106 | 왜 건강한 가정인가? | 2009.04.30 |
105 | 그리스도의 복음을 수호하라! | 2009.04.29 |
104 | 일어나 희망을 노래하자! [1] | 2009.04.10 |
103 | 예수님 부활, 내 부활 | 2009.04.07 |
102 | 어떻게 지켜온 나라인데! | 2008.1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