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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모든 공식적인 일들은 그 일들을 시작할 때가 있고 그칠 때가 있습니다. 사적인 활동과 공적인 활동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복회자의 직분도 공직이니, 공식적으로 일을 시작할 때가 있고 그 일을 공식적으로 마칠 때가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주어진 일에서 물러서고 다른 사람들이 그 일을 이어서 하도록 하는 것을 우리들은 이임(離任)과 취임(就任)이라고 하고, 이임한 사람은 다른 곳에서 비슷한 일을 하지 않는 한 은퇴(隱退)한 것이 됩니다. 목회자가 목회자의 일을 마치고 은퇴하는 일은 본질상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잘못하면 영광스럽게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은퇴가 과연 영광스러운 것이 되려면 어떠해야 할까요?

 

♣ 영광스러운 은퇴란 무엇일까?

다른 공직도 일을 잘 마치고 다른 사람이 그 일을 감당하게 되었을 때 그것이 영광스러운 일이듯이, 목회자의 직무도 한 분이 일을 잘 마치고 다른 사람이 이어서 그 일을 지속하게 되면 그 일이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특히 목회자들에게는 어떻게 되었을 때가 영광스러운 은퇴라고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비록 온전하지는 않지만 주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서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최선을 다해 마치고 은퇴하게 되어야 합니다. 마치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려면 육일 동안은 힘써 일하고 제 칠일에 안식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살피라고 한 것과 비슷합니다. 열심히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일한 목회자만이 그 은퇴가 영광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은퇴에 대한 생각은 은퇴한 사람이나 곧 은퇴할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고, 현직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도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이 과연 지금 자신이 (1) 성경이 말하는 대로의 목회를 하고 있는지를 점검하며, (2) 성령님께서 인도하는 대로, 그리고 (3) 열심히 일하고 있어야만 그 일을 마치는 것이 영광스러울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제대로 하지 않을 때 우리는 영광스러운 은퇴라는 말을 쓰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것은 맡겨진 일을 제대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은퇴가 참으로 영광스러운 은퇴가 되도록 (1)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목회해야 합니다. (2)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목회해야 합니다. 그리고 (3) 열심히 목회해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 성도들이 주어진 일을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성령님께 의존해서 열심히 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둘째로, 기도하면서 미리 잘 준비해서 그 목회자를 이어서 목회할 적절한 분을 교회 공동체가 적법하게 제대로 청빙했을 때 우리는 영광스러운 은퇴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큰 교회의 경우에 세습 등의 문제로 교계와 사회가 시끄러우면 해당자의 은퇴가 영광스럽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눈으로 보기에 아무리 영광스럽게 보여도 그것은 영광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이제는 이 세상도 이런 정황을 잘 알고 나름의 판단을 하기도 합니다. 주께 열심히 기도하고 준비해서 교회가 정말 “제대로 청빙하는 과정을 거쳐서” 다음 목회자를 청빙하여 목회 직무를 넘겨줄 수 있을 때, 그것을 영광스럽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점점 없어져 가는 “제대로 된 청빙”이 다시 회복되었으면 합니다. 오늘날 우리들 안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직원 채용과 비슷한 형태의 청빙은 엄밀한 의미에서 청빙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 명심하고, 그와 같은 직원 채용과 비슷한 형태의 청빙이 교계에서 사라지도록 해야 합니다.

 

 셋째로, 목회 직무에서 물러나면서 이런저런 재정적 잡음이 들리는 것은 영광스러운 은퇴가 아닐 것입니다. 교회는 항상 목회자들을 잘 지지하려고 하고, 목회자는 될 수 있는 대로 교회의 지원을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정상적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이 은퇴할 때에 이런저런 재정적 논란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는 교회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노력을 하고, 목회자들은 할 수 있는 한 도움을 받지 않고 손해 보려는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정황에서 목회자들은 은퇴할 때에 재정적 부담이 교회에 생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교회들의 재정 상황이 좀 더 건전해져서 목회자의 연금이 최소한 국민연금 정도라도 되는 날이 빨리 와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모든 교역자들에 대해서 교회가 그들의 젊은 때부터 국민연금을 부어 주는 일이 정착되어야 합니다. 이제부터라도 각 교회 공동체가 잘 준비해서 모든 목회자들이 국민연금을 30년 이상 부은 목회자로 은퇴하게 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연금을 준비한 교단이 있으면 더 좋지만, 연금 제도가 잘 정비되지 않은 교단에 속한 교회들은 이렇게 준비해야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생기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습니다.

 

 넷째로, 목회자가 물러나면서 섬기던 그 교회 공동체가 사라지게 되는 것도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우리의 복잡한 상황 때문에 이런 일이 완전히 없을 수는 없으나,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다들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과거에 한 일이 무엇인지를 참으로 잊을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남들이 보기에 많은 것을 이룬 듯이 보이는 분들이 진정 자신이 한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모습을 보일 때, 그것이 다른 지체들에게 은혜를 전달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은퇴는 영광스럽고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어는 때를 막론하고 자신이 무엇을 했다는 의식이 없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것을 빨리 벗어 놓을수록 은퇴한 삶이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사는 정치가나 여배우 같은 모습을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 은퇴 이후의 삶의 방식

은퇴 이후의 삶에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유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이 목회자로 섬기던 그 교회 공동체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지역에 젊은 목회자와 함께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는 일(church planting project)을 5년 이상 하여 이 땅에 새로운 교회가 형성되는 일을 돕고, 그 교회가 안정되면 자신은 또 다른 교회를 같은 방식으로 개척하든지 온전히 은퇴한 사람의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은퇴하시는 분들은 이미 개척해본 경험도 있고 하니, 개척이 어렵다는 이 시대에 젊은 교역자들이 개척하는 일을 도와서 같이 힘을 보태어 새로운 교회 공동체가 세워지는 일을 돕는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지금 섬기고 있는 교회 공동체로부터 완전히 다른 지역에서 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젊은 교역자 위주로 이 일을 해야 합니다. 그 교역자가 담임 교역자가 되고, 자신은 돕는 위치에서 한동안 섬기다 갈 생각을 해야 합니다.

 

 둘째는, 지금 섬기는 교회 공동체에서 먼 곳으로 가서 다른 교회의 교우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아는 사람들이 모두 지금 목회했던 교회 공동체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나이가 80이나 100세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은퇴한 목사님이 사모님이 어떤 공동체에 속해서 교인 역할을 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 교회에서 목사님도 그렇고, 사모님도 그렇게 하는 것이 잘 연습이 안 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결국 우리에게 있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늘 어느 교회에 속해 있는 성도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목사님 사후에 사모님은 어떤 교회의 교우 역할을 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모님은 목사님을 도와서 목회에 힘썼지만 대개는 성경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셨거나 목회자가 되는 공부를 했던 것도 아니니, 결국 어떤 교회의 좋은 성도여야 합니다. 이것을 잘 준비하는 것이 은퇴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의 경우도 그와 같습니다. 때때로 다른 교회들에서 말씀 증거하기를 부탁할 경우들을 제외하면, 어떤 한 교회 공동체의 지체 역할을 제대로 하여 가는 것이 은퇴한 목회자에게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이 일을 잘하도록 하는 것이 은퇴를 준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직 이렇게 하기 어려운 분들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젊은 목회자들의 개척 사역을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셋째는, 담임 목사님께서 은퇴하신 교회에서 당분간은 은퇴 목사님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교인으로 있을 수 있으면 그것도 좋은 일입니다. 물론 한국 교회 정황에서 이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후임 목사님께서 매우 어려운 짐을 감당하게 되시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이 혹시 교회에 유익이 된다면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한평생 속했던 교회의 교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지요. 그러나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다들 염두에 두면서 이 안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은퇴 목사님이 된 후에 다른 지역으로 가셔서 생활하시는 목사님들이 여러 면에서 존중받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네 번째는, 비교적 규모가 큰 교회들이 그리하는 것과 같이 일종의 선교 목사로서 지원을 받으면서 선교지의 여러 활동을 돕는 것입니다. 은사와 형편에 따라서 이것도 의미 있게 활용될 수 있는 방법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은퇴한 교회에 부담이 된다면 재고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바담이 되지 않고, 선교지에도 진정 도움이 된다면 이것도 할 수 있는 방법이기는 합니다.

 

♣ 은퇴 후에 꼭 해야 할 것들

첫째로, 사모님과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현실상 목회하시느라 사모님과 많은 시간을 같이 하지 못했던 것을 돌아보면서 은퇴한 상황에서 사모님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저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도 좋지만, 진정한 의미의 연합이 드러나는 삶을 살아 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때 진정한 기독교 가정의 모습을 모범적으로 드러내 보여야 합니다. 은퇴한 부부의 이상적 모습을 잘 드러내야 합니다.

 

 둘째는, 이번에는 정말 자신만을 위한 성경 공부를 했으면 합니다. 그동안은 목회를 위해서, 설교를 위해서 성경을 공부해 왔다면 이제 은퇴한 정황에서 정말 자신을 위한 성경 연구를 한다면 성경에 대한 좋은 통찰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때때로 부탁받는 설교 기회에 본인이 열심히 연구한 성경의 뜻을 잘 전하는 귀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은퇴한 후에 설교가 더 의미 있고 깊이 있어졌다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은퇴한 후이니 참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앉아서 공부하는 준비를 조금만 하면 이것을 매우 유익한 결과를 한국 교회에 줄 수 있습니다. 사모님들도 자신을 위해서 성경을 진지하게 읽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셋째는, 정말 좋은 신학자 한 사람을 찾아서 – 그저 유명한 신학자 말고, 참으로 성경에 충실하고 바른 교회를 잘 대변한 신학자들을 찾아서 – 연구하는 일을 시작하셨으면 합니다. 요즈음처럼 은퇴 후의 긴 세월이 있는 상황에서 그런 좋은 신학자에 대한 탐구를 한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전문가는 안 되어도 아마추어로서는 상당한 식견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아마 오전 시간의 반은 성경 연구에 들이고, 반은 신학자를 탐구하는 일을 지속한다면 여러 면에서 많은 유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성경을 더 연구하고 바른 신학을 조금씩이라도 읽어 가면서 은퇴한 후에도 공부하는 목사님의 모습을 가지면 우리의 성숙한 강해에 대한 요구가 더 많아질 수 있습니다. 주께서 이렇게 우리들의 은퇴한 삶을 유용하게 사용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넷째는,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는 복음 전도자의 모습이 은퇴한 목회자들에게서 나타났으면 합니다. 나이 맣은 분들에게도 접근 가능하고 젊은 사람들에게도 접근 가능한 우리들의 전도 노력이, 여러 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교회를 다시 부흥하게 하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진가를 발휘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와 같이 한다면 우리의 은퇴한 삶은 과연 영광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나이가 더 들수록 주께 나아가기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날마다 기쁘게 주님을 만날 날을 준비하며 고대하게 됩니다. 부디 우리들의 은퇴한 삶이 이와 같이 복된 삶으로 나타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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