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칼보다는 펜을 - 이상규 교수
2016.06.22 15:53
칼보다는 펜을
- 로마제국 하에서의 기독교 변증 -
이상규 교수(고신대학교 신학과)
앞에서 초기 기독교는 로마제국에서 박해를 받았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기독교의 가르침은 당시 사람들이 볼 때는 받아들일 수 없는 가르침이었다. 바울과 그 일행이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할 때, 그곳 로마관리가 보여준 반응은 이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들이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습을 전한다”(행 16:21)고 보았고, “도시를 심히 소란케 하는 자들”(throwing our city into an uproar, 행 16:20)이라고 인식했다. 데살로니가에서의 반응도 동일했다. 바울 일행이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했을 때, 전도자들을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행 17:6)이라고 불렀다. 영어 번역이 보다 원문에 가깝다. 복음 전도자들은 “세상을 뒤엎는 자들(turned upside down the World)”이었다.
기독교 복음은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받아들일 수 없는 가치였다. 사실 이 점은 어느 시대나 동일했다. 그래서 미국의 크리스천 사회학자인 도널드 크레이빌(Donald B. Kraybill)은 기독교의 가르침을 ‘전도된 가치’라고 불렀고, 기독교가 추구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도된 왕국’(The upside down Kingdom)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볼 때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로마제국에서 박해받았던 것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그리고 감내할 수밖에 없는 희생이었을 것이다.
칼 대신 펜을 선택한 변증가
이제 우리의 관심사는 초기 3세기 동안의 박해와 순교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하는 점이다. 기독교인들이 폭력적인 박해에 직면하여 폭력으로 대항했을까? 아니면 박해를 피해 도피했을까? 그렇지 않다면, 흔히 소수자들이 취하는 방식이지만 박해자들을 은밀하게 응징하거나 테러를 시도했을까? 기독교인들이 복음을 증거하면서 자신들이 당한 수난과 환란, 그리고 핍박을 어떻게 이겨나갔을까?
한마디로 말하면 그들은 칼을 택하기보다는 펜을 선택했다. 그들은 격렬한 비난과 박해 중에서도 무력으로 대항하거나 싸우지 않았고, 도리어 비폭력과 무저항 평화주의를 택했다. 그들은 폭력을 거부했지만 동시에 현실을 도피한 것도 아니었다. 도리어 끝까지 참는 인내를 택했다.
라틴어로 문필활동을 했던 라틴 교부들은 이 인내를 ‘파티엔티아’(patientia)라고 불렀다. 영어의 페이션스(patience)라는 단어가 이 라틴어에서 기원하였지만 이 어의를 충분하게 반영하지는 못한다. 이들이 취했던 파티엔티아(인내)를 우리 말 성경에서는 “길이 참음”(약 5:7)으로 번역했는데, 확고부동한 의지로 참음으로써 승리하는 길을 의미했다.
그리스도인들은 박해자들에게나 무고한 도전자들, 그리고 의롭지 못한 이들에게 무력으로 대항하지 않고 펜을 선택했고, 자신들의 정당성을 변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하드리안 황제(117~138) 때로부터 2세기 말까지 기독교 신앙을 변증하는 많은 글을 남겼다. 이런 글을 쓴 이들을 ‘변증가’라고 부르는데, 세계사 책에서는 ‘호교론자’(護敎論者)라고 불렀다. 이들 가운데 최초의 사람은 하드리안 황제에게 변증문을 썼던 꾸아두라투스(Quadratus)였다. 그 외에도 아리스티데스(Aristides), 저스틴(Justin), 타티안(Tatian), 아데나고라스(Athengoras) 등이 있고, 미니키우스 펠릭스(Minucius Felix), 터툴리안(Tertullian), 오리겐(Origen), 키프리안(Cyprian) 등도 자신의 저서를 통해 기독교 신앙을 변호하였다. 이들 외에 디오그네투스(Diognetus)에게 편지를 쓴 무명의 저자, 고위 관리들에게 편지를 쓴 무명의 변증가들도 있었다.
변증가 출현의 배경
이런 변증가들이 출현했다는 것은 이 시대의 성격을 보여주는데, 3가지로 정리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기독교에 대한 물리적 탄압이었다. 기독교가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부도덕하거나 범법한 사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신앙, 혹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탄압을 받게 되자 기독교 신앙을 변호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이런 환경이 기독교 변증가들의 출현 배경이 된다.
둘째, 이단의 출현이었다. 이단이 대두하여 기독교 복음을 오도하고 왜곡하자 바른 기독교 신앙을 제시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이것이 변증가들의 출현한 두 번째 요인이 된다.
셋째, 이 당시 벌써 기독교를 이론적으로 비판하거나 공격하는 이들이 출현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출생의 루시안(Lucians of Samosada, 120?- )이었다. 에피큐리안 학파에 속했던 그는 180년경 『페레기너스의 죽음』(De Morte Peregrini)이라는 책을 써서 기독교 신앙과 생활을 비판했다. 이교철학자로서 기독교를 비난했던 대표적인 인물은 켈수스(Celsus)였다. 2세기 후반의 인물로 플라톤 학파에 속했던 그는 178년경 『참 말씀』(αληθης λογος)이라는 책을 써서 기독교를 공격했다. 비록 이 책은 현존치 않으나 이 글의 주된 내용은 오리겐(Orgen)의 반박문 『켈수스 반박론』(Contra Celsum)를 통해 간접적으로 헤아릴 수 있다. 켈수스와 동시대 인물인 프론토(Cornelius Fronto) 또한 기독교를 비난하였으나 그의 글은 남아 있지 않다. 기독교 신앙을 적대했던 또 한 사람은 프로피리우스(Porphyrius)였다. 신플라톤학파에 속했던 그는 15권의 책을 저술하여 기독교를 공격하였다. 그는 구약과 신약은 모순되고 예수는 거짓말쟁이이며 사도들 간의 분쟁이 심했다며 기독교를 폄하하였다.
로마 역사가들의 작품에서도 기독교를 곡해하거나 오해하였다. 플리니우스(111년), 타키투스(115년), 수에토니우스(122년) 등이 그들이다. 이들의 기독교 비난의 공통점은 기독교 신앙은 타락한 새로운 미신(superstitio nova et prava)이라는 점이었다. 당시 식자들은 공통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미신(superstitio), 혹은 해로운 미신(exitiablilis superstitio)으로 간주했다. 이런 비난은 오해에서 빗어진 것임을 변호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이처럼 기독교회가 부당하게 공격을 받게 되자 이들의 헛된 주장에 대항하여 기독교 신앙을 변호하고 방어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이것이 변증가 출현의 세 번째 배경이 된다. 이것은 동시에 기독교회가 처한 사회 환경이 어떠했던가를 보여준다.
시대의 가장 위대한 변증가, 저스틴
변증가들은 바른 기독교 신앙을 제시하고 황제나 원로원 등 통치자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의 무죄함을 변증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교(異敎)와는 다른 기독교 신앙을 체계적으로 소개하고자 했다. 특히 변증가들은 기독교도들을 향한 공격, 곧 무신론, 불법의 종교, 인육식(homophagia) 집단, 근친상간, 그리고 사회의 암적 존재라는 주장에 대해 방어할 뿐만 아니라, 이교의 부도덕성과 문제점들을 공격하고 바른 삶의 방식을 제시했다. 말하자면 변증가들은 자기들이 가진 신앙의 수호를 위해 칼 대신 펜을 선택했던 것이다.
이 시기 가장 위대한 변증가는 2세기 중반의 저스틴(Justin, 125-163)이었다. 사마리아 출신 헬라 철학자로서 기독교로 개종하여 위대한 변증가가 되었고 후일 순교자의 길을 갔기에, 그를 가리켜 교회는 ‘순교자 저스틴’(Justin Martyr)이라고 부른다. 그는 철학자이며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다. 그가 유리피데스, 크세노폰, 플라톤 등의 헬라 문필가들의 작품을 인용하고 있음을 볼 때 헬라철학에 대한 그의 식견과 박식함을 엿볼 수 있다.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저스틴은 이 시대에 활약한 사람들 중에 가장 뛰어난 인물이며, 철학자로서 하나님의 진리를 전파하였고, 또 자신의 저술을 통해 신앙을 위해 싸웠다”고 평가했다.
저스틴이 쓴 변증서로는 『제1변증서』(The First Apology, 대변증서), 『제2변증서』(The Second Apology, 소변증서), 그리고 『유대인 트리포와의 대화』(Dialogue with Tripho)가 있다. 그 외에도 『이단에 대하여』, 『말시온에 대하여』가 있으나 현존치 않고 있다. 『유대인 트리포와의 대화』는 가장 긴 작품인데 유대인들에게 기독교인의 신앙을 설명할 목적으로 쓴 글이다. 이 글에서 저스틴은 기독교의 우월성을 강조하였다. 즉 저스틴은 기독교의 정당성을 호소하고, 기독교인이라는 단순한 사실 때문에 박해하는 것은 부당하며, 국가는 불확실한 근거로 기독교인을 처벌할 권리가 없음을 지적하였다. 이 위대한 변증가는 안타깝게도 163년 아우렐리우스 황제 치하에서 순교하였다.
종교의 자유와 관용을 주장한 변증가, 터툴리안
기독교 신앙을 변증하는 가장 뛰어난 글을 남긴 사람은 터툴리안(Quintus Septmius Florens Tertullianus, c.160~c.220)이었다. 2세기 대표적인 라틴 교부인 테르툴리아누스는 160년경 카르타고에서 출생하였는데 그의 부모는 이교도였다. 그는 문학, 수사학, 법률을 공부하였고 법률가로 활동하였다. 이런 그의 교육적 배경은 그의 변증서를 더욱 호소력 있고, 또 그 믿는 바를 끈질기게 진술해 가는데 유효한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고문과 처형을 감수하는 신자들을 보고 감명을 받고, 195년경 기독교로 개종하였는데, 197년경부터 많은 변증서와 이단 배척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의 해박한 언어, 철학, 수사학, 그리고 법률지식과 천부적인 날카로운 지성은 그의 변증서의 가치를 더해 주었다. 히에로니무스(Eusebius Hieronymus)는 그를 가리켜 “작열하는 사람”(vir ardens)이라고 불렀을 만큼 열정과 분노를 지녔던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희랍어로도 글을 썼으나 현재는 라틴어로 쓴 31편의 글만이 남아 있는데, 그의 저서목록이 보여주듯이 그의 관심은 다양했다. 그 시대에는 아직 신학 용어가 분명하게 개념화되지 못한 시기였으므로 그가 사용한 용어를 신학적으로 석명하는 일은 용이하지 않다. 그는 바울이 그러했듯이 당시 통용되던 용어를 빌려오기도 했지만 그가 조어(造語)한 단어들도 적지 않기 때문에 그의 고대로부터 그의 글은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의 대표적인 저술은 『변증론』(Apologeticum), 『우상숭배에 관하여』(De Idololatria) 등인데, 이 작품을 통해 터툴리안은 기독교인들이 오해받고 있는 범죄 사실에 대해 무죄하며, 기독교는 일반인들이 납득할 수 있는 신앙이라는 점을 설명하고자 했다.
사실 터툴리안은 종교의 자유와 관용을 주창한 첫 인물이었다. 그는 권좌에 앉은 통치자들과 로마의 지식층에게 기독교에 대한 관용을 호소하고, 기독교라는 종교는 로마정부에 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신시키고자 했다. 또 기독교인들은 아무런 범죄도 하지 않으며, 모든 옳은 명령에 순종하며, 세금을 내고, 정치적 음모에도 끼어들지 않는다고 했다. “기독교는 인류의 원수가 아니라 단지 오류의 원수일 뿐이다”라고 변호한다.
이처럼 기독교 신앙을 변호하고 기독교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려는 시도는 결국 교리의 발전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 기독교의 가르침은 그 시대의 필요에 따라 체계적으로 제시되었던 것이다.
글/이상규 교수
미국 Calvin College와 Associated Mennonite Biblical Seminary 방문교수, 호주 Macquarie University 초기기독교연구소 연구교수, 고신대학교 부총장을 역임. 현재 고신대학교 신학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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