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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거짓 교사들 - 이상규 교수

2016.07.05 18:03

조회 수:965 추천:3


                                 - 초대교회에 나타난 이단과 교회의 대처 -

                                                                          이상규 교수(고신대학교 신학과)

초대교회에는 이중적인 위기가 있었다. 첫째는 교회에 대한 외부적인 탄압이었고, 둘째는 내부적으로 이단의 출현이었다. 이단은 교회사의 전 시기에 항상 있었던 문제였지만 2세기를 전후한 초대교회에도 여러 이단들이 교회를 위협했다. 이단(異端)이란 흔히 끝이 다른 것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이단(heterodoxy)바름’() 혹은 정통’(, orthodoxy)과 다른(, hetero) 가르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만들었다. 어떤 점에서 외부적인 도전보다 교회 내에서 일어난 이단이 더 위협적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 2:17)고 말씀의 바른 계승과 전파를 말하면서, 디모데에게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딤후 2:15)고 충고하였다. ‘분별하라’(오르토메오)는 단어는 신약에서 오직 한 번 사용된 희귀한 단어인데 똑바로 자른다는 의미이다. 바울은 복음의 변질을 보면서 디모데에게 사도로부터 전수받은(딤전 1:18-19; 2:7; 3:9; 4:1,6,16; 6:12,20,21) ‘바른 교훈’(딤전 1:10, 6:3)을 고수하고 가르치라고 권면한 바 있다.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이단은 에비온파, 영지주의 사상, 마르키온파, 그리고 몬타누스 집단이었다. 당시 이단은 크게 두 가지 배경에서 출현했는데, 첫째는 유대주의적 혹은 율법주의적 배경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교철학 곧 헬라철학이었다. 이런 이단의 출현은 교회의 조직과 정치 제도의 발전, 정경의 형성, 그리고 신앙고백서의 출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번에는 이런 이단들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에비온파

교회가 직면했던 첫 번째 이단은 에비온파(Ebionites)였다. 교회의 발전 과정에서 직면했던 한 가지 문제가 유대교와의 관계였는데, 유대교는 근본적으로 민족종교이고 유대민족이라는 한계 안에 있었다. 물론 비유대인 가운데서도 개종자가 없지 않았지만 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기독교는 사도 바울의 1차 전도여행(13-14)을 경험하면서 탈민족적인 보편종교로의 성격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안디옥교회는 바울의 전도여행의 거점이자 최초의 이방지역 교회였다. 안디옥을 중심으로 전개된 1차 전도여행의 결과로 할례받지 않는 이방인의 구원 문제가 심각한 토론의 주제가 되었다.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모인 최초의 교회 회의가 49년에 소집된 예루살렘교회 회의(15)였다. 이 회의에서 이방인에게 유대 율법의 의무, 곧 할례를 요구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그러면서도 유대적 배경의 구성원들과의 조화를 위해 피 흘린 것을 멀리할 것 등 유대교 전통의 준수를 권장하는 선에서 화해를 도모하였다. 이 결정은 사실상 유대교와의 일정한 선을 긋는 것으로서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유대교와는 다르다는 선언이었다. 동시에 예루살렘교회 회의는 이방인에게로 나아가는 장애물을 제거했다는 점에서 이방인들에 대한 적극적 선교를 시작하는 전기를 마련하였다.

그런데 이런 결정에 반대하면서 유대적 전통의 고수를 주장하는 의견들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일종의 기독교의 유대주의화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집단이 바로 에비온파였다. 에비온이라는 말은 가난’(poor, 6:20 참고)이라는 히브리어에서 유래하였다. 자신들이 주님의 참 제자로서 주를 위해 가난한 삶을 이상으로 살아가는 무리라고 자처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모세의 율법을 강조하며 안식일제도, 할례의식, 레위기에 나타난 음식 규례를 여전히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이외의 어떤 존재에도 신의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독특한 기독론을 주창하였다. 이들은 예수의 메시야성은 인정했으나 예수의 신성과 동정녀 탄생은 부인하였다. 또 예수를 인간으로 보았다.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 출생했을 뿐이며 세례를 받은 후 성령이 임할 때 하나님의 양자로 택정되었다고 주장한다. 마태복음 외의 복음서와 바울 서신을 부인하거나 경시했고, 엄격한 금욕을 강조하는 금욕주의적 성격도 지니고 있었다.

이처럼 에비온파가 바로 유대교적 배경에서 유래한 이단이었다. 이와 유사한 집단으로 나사렛파(Nasarenes), 엘케사이파(El Kesaites)도 있었다. 이런 유대주의적인 이단은 복음이 이방 세계로 확산되어 이방인 수가 급격히 증가하게 되자 자연히 소멸되었다.

 

영지주의

에비온파가 유대교적 배경에서 생성된 이단인 반면,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는 헬라적 배경에서 기원한 이단인데, 그 기원이나 사상을 하나의 체계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영지주의란 지식을 의미하는 헬라어 그노시스(gnosis)에서 유래하였는데, 이들은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특별히 구별된 신비로운 지식을 소유해야 하며 이 지식은 구원에 이르는 비밀 열쇠라고 주장하였다. 영지주의의 지도자들은 개인적으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독특한 지식, 곧 그노시스를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자기 집단의 독특성을 주장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영지주의자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이런 주장은 사도적 기독교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었다.

영지주의는 신과 인간, 영혼과 물질을 이원론으로 파악한다. 신과 영혼은 선하지만, 물질은 악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신은 물질세계와 무관하다고 믿었으며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부인하고 성육신과 십자가, 부활을 부인했다. 이들에게 물질세계는 최고의 존재인 신으로부터 우주가 흘러나와 생겨난 것으로, 그 유출된 존재를 에온(Aeon)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에온 중에서 최하위층에서 물질이 만들어졌다고 말하는데, 이 최하위층의 에온을 세계의 형성자라는 뜻으로 데미우르고스(Demiurgos)라고 불렀다.

이 영지주의는 육체를 정신의 감옥으로 보았으므로 금욕적 성격이 짙었다. 육체와 물질을 악이라고 보았으므로 그리스도는 육체를 가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육신을 가지신 것으로 묘사된 신약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이들은, 실제는 육체를 가지지 않았으나 육체를 가진 것처럼 보였을 따름이라 하여 가현설’(假顯說, Docetism)을 주장했으며 하나님의 창조, 성육신, 십자가와 부활 등 기독교의 핵심 교의를 부인했다.

영지주의는 2세기 기독교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었는데, 교회사학자 하르낙(Adolf von Harnack)은 영지주의를 기독교의 극단적인 헬라화’(the extreme Hellenization)라고 보았다.

 

마르키온

마르키온(Marcion)은 비두니아 지방 본도(Pontus)의 시노페(Sinope) 출신인데, 영지주의 사상과 구약의 하나님을 부정했던 케르도(Cerdo)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독자적인 교회를 설립하고 이단사상을 가르쳤는데, 이들이 마르키온파(Marcionites)라고 불렸다. 마르키온파는 구약의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을 구별하였다. 그리스도의 강림과 함께 구약성경은 완전히 쓸모가 없어졌고, 그 권위도 없어졌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들은 반()유대주의적 성격을 지닌다. 이들은 이방인의 사도였던 바울만이 예수님의 복음을 오염시키지 않았던 유일한 사도이며 율법의 대적자, 복음의 대변인이라고 보았다.

반유대적인 이들은 결국 잘못된 정경관을 제시했다. 마르키온은 구약의 하나님은 유대인만을 사랑한다고 보았으므로 구약 전체를 부인했을 뿐만 아니라 유대적 색채가 짙은 마태, 마가, 사도행전, 히브리서 등을 정경(正經)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자기들의 주장에 반대한다고 생각된 목회서신도 부인하였다. 그래서 구약적 성격이 희박한 누가복음과 바울의 10편의 서신만을 정경으로 인정하였다.

마르키온파가 영지주의와 일면 유사한 점이 있다는 점에서 어떤 학자들은 마르키온파를 영지주의의 일파로 분류하기도 한다. 마르키온파는 창조, 성육신, 부활 등의 교리를 부인하거나 극단적으로 재해석할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독자적인 정경과 교회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막강한 금력으로 교회를 위협하여 당시 교회에 심각한 위협이 되었다.

 

몬타누스

어떤 운동이나 사상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는데, 몬타누스(Montanus) 이단운동은 초기교회의 세속화 현상에 대한 반발로 일어났다. 기대하던 예수님의 재림이 지체되자 신앙의 해이와 속화현상이 나타나고 있었고, 영지주의의 도전으로 교회가 혼란한 상태에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몬타누스 이단운동이 일어났다.

이 이단은 156년경 소아시아의 부르기아(Phrygia)에서 시작되었는데, 시벨레(Cybele)라는 이교의 제사장 출신인 초신자 몬타누스는 자신을 보혜사 성령이라고 주장하고 페푸자(Pepuza)에 새 예루살렘이 임할 것이라는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했다. 이들은 곧 당시 교회로부터 이탈하여 교회를 설립하고 자기들의 교회야말로 충분한 복음을 지닌 특수한 교회이며, 자기들은 영적 엘리트라고 주장하였다.

즉 몬타누스 집단은 임박한 재림을 강조하여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고, 예언과 방언, 환상 등 영적 은사들을 강조했다. 또 금욕적 생활을 강조하여, 독신을 권장하였고, 결혼 후 재혼은 간음으로 간주하였다. 이들은 성경에서 침묵하고 있는 재림의 때를 산정하는 등 새로운 예언을 강조하였는데 결국 거짓 계시운동’(僞經運動)으로 발전하였다. 몬타누스 이단은 교회사에서 끊임없이 재기되었던 최초의 시한부 종말론자들이었다.

이 이단이 상당한 인기를 얻고 급속도로 전파되었던 것은 당시의 상황과 관련되어 있다. 그때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가 황제로 있을 때였는데,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심했고, 가뭄과 기근으로 사회적 빈곤이 극심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임박한 종말에 대한 선포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고, 가난하고 굶주린 백성은 이 땅에서 평안을 얻을 수 없었으므로 임박한 종말론에서 도피처를 찾았던 것이다. 당시 최고의 신학자였던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조차도 이 이단운동에 가담했을 정도였다. 몬타누스 이단은 종말 예언이 거짓으로 판명되면서 추종자가 급속히 줄어들었으나 이 이단운동은 6세기까지 계속되었다.

 

이단에 대처한 정통교회

이상에서 소개한 이단들이 출현했을 때 교회는 어떻게 대처했을까? 다음의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정경(正經)의 집성을 촉진하게 되었다. 이단들의 잘못된 정경관 때문에 정통교회는 바른 정경관을 제시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오늘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정경 목록은 367년 알렉산드리아 감독 아타나시우스(Athanasius)가 쓴 부활절 편지에서 처음 나타났고, 북아프리카의 히포(393), 카르타고회의(397)에서 확인되었다.

둘째, 신앙고백서를 제정하게 된다. 바른 신앙은 신조(creed)의 형식으로 공포되었는데, 사도신경이 대표적인 것이었다. 사도신경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Credo in Deum omnipotentem)로 시작되는데 이것은 신앙의 상징으로 불렸고, 수세(受洗) 대상자의 신앙고백으로(baptismal formula) 사용되었다. 사도신경은 150년경 로마에서 기본 골격이 갖추어졌고 그 후 오늘의 고백으로 정착되었다. 이단의 출현은 바른 신앙에 대한 공적 고백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셋째, 사도적 가르침의 계승, 곧 사도전승과 감독의 권위를 강조하게 되었다. 이단의 출현과 교회를 이탈하는 분파운동 때문에 기존의 정통교회와 감독의 권위를 강조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후일 감독이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는 감독권의 강화를 주장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이단과 분파운동을 막기 위한 교회 권위의 강조였다.

이단의 출현에 대항하여 교회의 교사들은 교회의 권위와 교리의 정통성을 수호하기 위해 여러 문서를 남겼다. 대표적인 작품이 유스티누스의 마르키온과의 논쟁모든 이교도들에게 보내는 글, 리용의 이레네우스(Irenaeus, 202년 순교)가 쓴 이교들에 대한 논박, 로마의 히포리투스(Hippolytus)의 작품 이교도들에게 보내는 글등이다. 이들은 이단의 거짓된 주장을 공격하고 그 주장의 부당성을 지적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이단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초대교회에 나타났던 동일한 이단들이 새로운 옷을 갈아입고 다시 나타났고, 오늘 한국 교회에도 위협이 되고 있다.

 

 

/이상규 교수

미국 Calvin CollegeAssociated Mennonite Biblical Seminary 방문교수, 호주 Macquarie University 초기기독교연구소 연구교수, 고신대학교 부총장을 역임. 현재 고신대학교 신학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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