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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들에서 일구는 기쁨, 개야교회

 

개야교회 최미애 사모

interview

 

120여 가구만이 남아 농사를 생계수단으로 삼으며 살아가는 강원도 홍천 개야리 마을. 꿈이 없는 시골 아이들을 위해 다양한 음악 교육을 무료로 가르쳐 주고, 교회 문을 활짝 열어 마을 부녀회원들을 초대해 갖가지 강좌를 해주는 교회가 있다. 성도는 50명도 채 되지 않는데 선교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뛰어가는 교회. 바로 개야교회이다. 전도사 시절부터 농촌목회에 뛰어든 권영남 목사와 아내 최미애 사모의 밝고 따뜻한 사랑의 사역 이야기를 들어보자.


Lilac. 사모님의 어릴 적 모습은 어떠셨나요?

Choi. 군인이셨지만 따뜻하시고 자상하셨던 아버지와 무뚝뚝하시고 엄하셨던 어머니 슬하에 딸 다섯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모태 신앙은 아니었지만 걸음마를 뗐을 때부터 언니들 손에 이끌리어 교회가 놀이터가 되었고, 부모님들도 곧 신앙생활을 시작해 기독교 교육을 받으며 신앙 안에서 자랄 수 있었습니다.

군인이셨던 아버지께서 군 제대 후에 여러 가지 사업을 하시다가 실패를 겪으신 후, 강원도에 정착하며 생활의 안정을 찾았을 때였습니다. 아버지께서 간암 선고를 받게 되셨고 4개월 만에 하늘나라로 가게 되셨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열세 살이었습니다. 나이 차가 많이 났던 언니들이 결혼하고, 어머니가 장기적으로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어 저 혼자만 남게 되었습니다. 작은 집조차 얻을 형편이 되지 않았기에 교회 식구들의 배려로 교회 기도실에서 생활하게 되었고, 저를 가엾게 여기신 목사님과 사모님이 한동안 저를 맡아 키워주셨습니다. 사춘기적 반항은커녕 나에게 왜 이런 아픔이 왔을까,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고민하며 하나님께만 매달려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Lilac. 목회자의 아내로 부르심을 받기까지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Choi. 진학과 취업 문제로 서울에서 홀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유아교육과를 야간으로 다니며 학업을 병행하였는데 후에 하나님의 은혜로 어린이집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밤낮없이 일에 매달리며 몸도 마음도 많이 쇠약해져 갈 때쯤, 이런 삶이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일까 고민하며 간절히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강원도 작은 미자립교회로 청년부 수련회를 가면서 그곳에서 전도사로 사역하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Lilac. 첫 목회의 시작은 어떠셨나요?

Choi. 그 지역은 씨족 마을로 거의 친인척이 모여 사는 특성이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 배척이 심한 고립된 지역이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가가호호 전도를 다닐 때면 소금을 뿌리며 전도용품을 마당에 내동댕이치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러나 결혼 전날까지도 일에 매달렸던 저로서는 농촌목회의 시작이 제 삶에 찾아온 안식과도 같았습니다. 작은 텃밭에서 몇 그루 안 되게 심은 방울토마토의 열매 두어 개를 따서는 교회로 달려가 감사기도를 드리며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고, 쌀이 떨어지자 어떻게 아셨는지 성도님이 쌀자루를 메고 찾아오셔서 놀란 적도 있었습니다. 더 이상 무엇을 먹고 입느냐는 걱정거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목회자의 가정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먹이시는구나! 감탄하며 감사드렸습니다.

그러던 중, 선배 목사님을 통하여 임지를 옮기는 것을 제안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다면 지구의 반대편 오지라도 가겠다는 마음과 이곳에 정주목회를 원하신다면 심기운 나무처럼 머물겠다는 생각을 저나 남편이 똑같이 해왔기 때문에 무턱대고 거절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간절한 맘으로 기도하게 되었고 지금의 개야교회로 임지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Lilac. 당시 개야교회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부임하시던 때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Choi. 강원도 홍천군에 위치한 개야교회는 감리교단으로 1975327일에 창립되었고, 성도들이 벽돌 하나하나 손수 건축한 교회입니다. 교통수단이 불편하여 보건소나 작은 마트에 가는 것도 도보로 1시간이나 걸리고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는 아주 낙후된 지역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고, 교회 구성원도 농업을 하시는 노인층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당시 개야교회로 부임하여 첫 예배를 드린 후의 일입니다. 이곳 마을 분들에게 인사드릴 겸 떡을 나누려 했더니 그런 데에 쓸 교회재정이 없다며 성도님들 대부분이 만류했습니다. 목회자 가정에서 감당한다고 해도 안 된다 하시며 떡을 아무리 돌려도 교회 나올 사람 하나 없다고 핀잔을 주시는 겁니다. 마음이 아팠지만 생각을 접었습니다. 그래도 감사했던 것이 새벽예배에 오시는 교인이 두 분 계셨고 함께 기도하는 성도님들이 있어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지금은 부흥이 좀 되어서 10여 분 정도가 모여 새벽예배를 드리고 있고, 30명의 장년과 15명의 교회학교 아이들이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Lilac. 개야교회와 지역을 섬기기 위한 사역들을 어떻게 펼쳐 가셨는지요?

Choi. 이곳에 처음 부임했을 때 마을에 아이들이 5명밖에 없었고, 교회학교 예배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들과 산으로 위험하게 다니는 것과 꿈도 없이 시간을 보내는 모습들이 안타까워 우선 적은 인원이지만 교회학교를 구성했습니다. 교육관을 건축하고 무료로 공부방과 피아노 교실도 운영하였습니다. 이듬해부터는 개야무료선교센터를 개설하여 마을 주민들과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 인터넷학습관, 한글지도 등의 활동을 꾸준히 해오며 문화센터사역을 진행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처음 사역을 시작했을 때보다 시나브로 부흥케 해주셨지만 아직도 많은 분들이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며 특히 청·장년층의 전도가 쉽지 않았습니다. 마을의 청·장년층의 전도를 위해 기도하던 중 새벽부터 밭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남편이 일주일에 한 번 빵과 음료를 나누고 있고, 요즘은 부족한 솜씨지만 떡케이크를 만들어 떡과 음료를 나누는 일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Lilac. 규모가 작은 교회인데도 문화센터사역을 진행하신 점이 흥미롭습니다.

Choi. 문화센터사역을 진행하면서 폐강 강좌와 신설 강좌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인터넷 학습관이나 한글학교 강좌는 폐강되고, 비누 만들기와 떡케이크 만들기 등이 신설 강좌로 열렸습니다. 농한기를 이용해 부녀회를 중심으로 천연비누 만들기와 떡케이크 만들기를 통해 마을의 청·장년층과 소통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초등·중학교를 대상으로 남편이 일주일에 두 번씩 공부방을 하고, 저는 아이들에게 피아노와 플루트, 오카리나를 무료로 가르쳤습니다.

그러다가 4년 전쯤 교회학교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방과후학교 음악 강좌를 해달라는 요청을 해왔습니다. 무척 부담이 되었습니다만, 초등학교 아이들의 학원 복음화가 우리 교회의 기도제목이었기에 요청을 수락하고 12학년은 오카리나, 34학년은 리코더, 56학년은 피페 강좌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5일제 수업으로 전환되면서 토요 방과후학교에서 종이접기, 클레이 등의 미술 강좌를 강의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다른 학교에서도 방과후학교를 하고 있고, 오전엔 초등학교에서 복식 강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Lilac. 성도들과 한마음으로 진행하는 사역도 다양하다고 들었습니다.

Choi. 비록 작은 교회지만 4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는 우리 교회는 성탄 행사로 마을 분들에게 만둣국을 나누고 성탄 새벽에는 마을 전체에 새벽송을 도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전통을 살려 지속적으로 지금까지 성탄절 전날 만둣국을 함께 나누고 새벽 4시부터 온 마을에 새벽송을 돕니다. 도시교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개야리 마을 분들은 불을 환히 밝히시고 저희를 반갑게 맞이해 주십니다. 그 이른 새벽에 따뜻한 음료로 대접해 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정성껏 봉투에 축 성탄을 쓰시고 헌금이라고 부끄럽게 건네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성탄의 기쁨을 온 마을과 함께 나눌 수 있어 매해 뜻깊은 성탄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작은 변화들이 생겼습니다. 교회가 워낙 재정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부활절, 추수감사절, 성탄절과 같은 절기에 마을 전체에 선교물품을 나누는 일에 인색하셨던 성도님들이었지만, 지금은 절기마다 선교용품을 준비해 온 교인이 가가호호 전도를 함께 다닙니다.

속회도 2개의 속에서 4개의 속으로 부흥되면서 각 속회헌금은 우리 교회보다 더 어려운 교회를 섬기고, 컴패션을 통해 콜롬비아의 아이에게 후원하고 있으며, 남성속회는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마련하여 섬기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미약하지만 지금까지 작은 미자립교회로 섬김만 받아온 저희들이 받은 사랑을 전하고자 실천하려고 성도님들과 다 같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3년 전부터는 성탄을 준비하며 강림절에 아프리카 신생아 돕기 일환으로 정성껏 신생아 모자를 떠 세이브더칠드런기관을 통해 아프리카로 보내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이라면 성도님들 모두 열심히 참여하십니다.

 

Lilac. 힘든 사역이지만, 그 가운데 보람도 많이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Choi. 빈들이라도 아골 골짜기라도 주님이 함께하시면 어디든 따르겠다고 나섰던 저에게는 목사님의 목회를 도우며 여러 가지 어려운 점들은 당연히 찾아오는 것들이라 여기며 기쁨과 감사함으로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지금 섬기는 교회에 부임하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많이 벌이다 보니 그렇지 않아도 재정이 부족하여 목사님 사례비도 제대로 드리기 힘들었던 교회였는데, 어린 목회자 부부가 선교 사업으로 무료 문화센터와 몇 군데 선교지를 섬기는 일등 여러 가지 벌여놓은 일들 때문에 성도님들은 걱정과 불만 가득한 시선으로 우리를 지켜보셨습니다. 늘 재정은 적자였고 사례비를 받는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라면 하나님께서 선교단체의 후원이든 어떤 방법으로든 채워주시는 은혜를 경험하며 지금까지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행할 수 있었습니다. 성도님들이 이젠 더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시고 교회의 일들을 감사와 기쁨으로 봉사하고 헌신하십니다.

한 달 전 한창 농번기로 일손이 바빠 성도님들 모두 지쳐 계실 때였는데도 교육관의 화장실 배관시설이 고장 난 것을 아시고 남 성도님들이 낮에는 농사일, 밤이면 고단한 몸을 이끌고 교육관 수리를 하셨습니다. 불평 없이 힘든 상황 속에서 기쁨과 즐거움으로 감당하시는 성도님들을 바라보며 죄송스러운 마음 한편, 가슴 뜨거워짐을 느꼈습니다. 비록 외관상은 시골의 작고 보잘것없는 교회로 보일 수 있지만 주님의 일이라면 수고와 어려움을 기쁨으로 여기시는 성도님들이 있는 저희 교회가 진정으로 따뜻하고 넉넉한 교회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봅니다.

 

Lilac. 앞으로의 비전과 사역의 방향, 기도제목을 말씀해 주세요.

Choi. 마을의 중심이 되어 이끌어가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교회라는 비전을 가지고 작은 것이라도 섬김과 나눔의 일들을 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20평 남짓한 교회 건물이 행정상의 착오로 번지수 오류가 생기면서 등기 불가 건물이 되어버린 상태입니다. 낡고 훼손된 교회건물을 분기별로 수리하고 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붇기처럼 끝없는 수고를 온 교인이 감당하고 계십니다. 교회 건물을 건축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나 대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건축에 앞서 교회 부지를 위해 합심하여 기도하고 있는 중입니다.

마을도 여러 가지 농촌사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노인회를 중심으로 한 오카리나 학습과 청장년들이 중심이 된 천연비누 만들기 사업입니다. 강사로 제가 세워졌는데 이 일이 이 지역에서 교회의 역량 강화와 복음화를 이룰 수 있는 길이 되길 기도합니다.


Lilac. 마지막으로 사모님들과 나누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Choi. 몇 해 전 농어촌교회를 후원해 주시는 선교 단체에서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보내주셨습니다. 가는 곳마다 저에겐 큰 은혜의 시간이 되었지만 특히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해주셨던 광야를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40년의 광야시간 동안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시원하고 따뜻하게 보호해 주셨던 하나님의 사랑이 새삼 더 뜨겁게 느껴졌습니다. 그들에게 광야는 고통과 연단의 시간만이 아닌 축복의 시간이었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섬기고 있는 이 지역이 광야인지 아니면 축복의 가나안땅인지 알 수 없지만 이곳이 만약 광야라면 불평과 원망으로 광야의 시간들을 보냈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달리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가나안 정복의 기쁨만이 큰 기쁨이 아닌,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온전히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면 지금의 환경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발견하고 늘 선한 곳으로 인도하시는 그분의 섬세한 손길을 경험하게 되시리라 확신합니다.

 

 

최미애 사모

남편 권영남 목사와 개야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11녀의 자녀를 두었다. 현재 모곡초등학교 토요방과후학교 미술교사, 한서초등학교 방과후학교 음악악기 지도교사, 한서초등학교 복식 강사로 학생을 지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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