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마당에서 취미생활 좀 하고 오겠습니다 - 김창선 사모
2017.02.28 15:25
마당에서 취미생활 좀 하고 오겠습니다
김창선 사모(울산교회)
날씨가 꽤 추워졌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그리 춥진 않았는데 갑자기 추워진 것 같습니다. 11월이 되기 전에 화분들을 들여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추워지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부랴부랴 교역자 분기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젊은 목사님 몇 분이 오셔서 도와주신 덕분에 간신히 때에 맞춰 화분을 들여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온 마당을 하얗게 수놓았던 구절초도 이제 지려고 하고 만수국도 며칠 있으면 뽑아내야 할 것 같습니다. 아! 다알리아 뿌리도 캐내어 보관해야 하고요. 그렇게 가을걷이를 하고 나면 한동안 잔디며 꽃밭, 채전까지 겨울 동면에 들어가 제가 할 일이 줄어들 것 같네요. 그리고는 꽃 피는 내년 봄을 기다리느라 마음을 졸이겠지요.
<라일락>에서 ‘취미’에 관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저는 “저 자신이 취미도 제대로 없는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적 초등학교 시절에는 취미를 쓰는 난에 ‘독서’라고 적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실은 책도 잘 읽지 않으면서 썼던 것이지요. 특별한 취미가 별로 없는 아이들이 그렇게 적곤 했었지요.
결혼하고 사람 좋아하는 남편을 따라 살게 되면서 손님 접대하는 일을 즐겁게 하곤 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들이 없진 않았지만 목회현장에서 더 중요한 일들로 바빠지면서 엄두도 못 내고 말았지요. 물론 개척교회 시절에는 취미생활을 위해 시간뿐만 아니라 돈을 들이는 일도 쉽지 않았겠지요. 그래서 남편이 자주 놀리곤 했습니다. 조그마한 여자가 뭐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이 많으냐고요. 그래저래 성도들과 함께 지내며 심방하는 일이며 성경공부를 하는 일이 취미가 되었습니다. 지나고 보면 참 다행한 일이기도 합니다. 정말 중요한 일에 시간을 쓸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한 7년 전쯤에 이곳 시골로 들어오면서 새로운 취미생활이 생겼습니다. 남편이 심근경색으로 시술을 하고 나서는 시골 가서 살고 싶다고 하여 교회에서 이곳에 사택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교회에서 16km 정도 떨어진 ‘큰마을’이라는 동네지요. 한 번도 농촌에 살아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남편 따라 들어온 셈입니다. 물론 “나, 농사는 못 짓습니다. 이 체구 갖고 그런 일은 할 수 없으니 나더러 농사지으라고 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하며 다짐을 받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 평이 넘는 잔디밭이며 꽃밭 그리고 채전을 관리하려면 일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하루에 두 시간 정도는 마당일을 해야 관리가 그런대로 되거든요. 매일같이 물을 주고 수시로 잔디며 밭에 올라오는 풀을 뽑고, 꽃과 채소 모종을 심으며 가지를 잘 잘라주는 일, 뿐만 아니라 마른 풀들을 태우고 주위를 정리 정돈하는 일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정리정돈은 제 취미이고 특기입니다”라며 아예 외치고 다니지요. 제가 마당으로 나가면서 “이제 취미생활 좀 하고 오겠습니다”라고 하면 남편은 알아차립니다. 마당 한구석에 모아둔 마른 풀을 태우려고 나간다는 것을 말입니다.
마당일에 문외한인 저를 위해서 주님께서는 좋은 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시내에 사시는 어느 개척교회 장로님 한 분은 우리 마을에 있는 땅 오백 평과 좀 떨어진 곳의 오백 평, 천 평 가까이 밭농사를 지으십니다. 매일 아침 일찍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혼자 그 많은 농사를 지으셔서 모두 다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나누어주고 계시지요. 저희가 이사 온 첫날부터 저희 집 채전을 도와주고 계십니다. 땅을 일구어 거름을 주고 골을 만드는 일뿐만 아니라 당신 지으시는 채소 중에서 모종을 조금씩 갖다 주며 어떻게 손질해야 하는지도 가르쳐 주시고, 필요하면 약을 치는 일이며 지지대를 세우는 일들을 도와주십니다. 또 이웃 마을에 사시는 집사님 한 분은 자칭 미화부장이라고 하시며 꽃모종을 갖고 와서 심어주시기도, 제가 미처 하지 못한 풀 뽑는 일도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보면 우리 마당은 여러 성도들의 관심으로 가꾸어지고 있습니다. 매일 마당을 돌아보면서 철쭉 화분을 주신 집사님, 만리향을 심어주신 목사님들, 소나무, 종려나무를 심어주신 장로님, 라일락, 보리수를 심어주신 집사님, 복숭아나무를 주신 분, 블루베리나무를 주신 장로님, 베롱나무를 심어주신 분, 수국 화분을 주셨던 분들을 떠올리며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요. 그래서 저희 마당은 스토리와 감사가 넘치는 곳이 되지요.
손님 대접하는 일이 더 많아진 것도 또 하나의 변화였습니다. 시골집을 사서 수리하면서 남편은 꽤 큰 데크를 만들었습니다. 손님을 모시기 위해서라며 말입니다. 아파트에서 살 때는 거실을 식탁 대형으로 만들었지만 기껏해야 20명 미만의 손님을 모실 수밖에 없었는데 데크와 마당을 이용하면 이제는 오륙십 명, 많을 때는 구십 명까지 한꺼번에 식사를 할 수가 있게 되었지요. 물론 사십 명이 넘어가면 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어서 누군가가 도와주셔야 하지만 말입니다.
불신남편들을 위한 전도 축제를 하기도 하고 신학교의 외국인 학생들을 초대하기도 합니다. 연전에는 선교사님의 결혼예배도 우리 마당에서 갖게 되었습니다. 영국분이시고 좀 나이가 되신 신랑이 꼭 우리 집에서 하고 싶다고 해서 말입니다. 그때는 5월이라 하얀 ‘샤스타데이지’가 온 마당에 활짝 폈을 때라서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3월 초부터 개나리, 수선화를 시작으로 꽃이 피기 시작하면 곧 뒤따라 튤립, 백합으로 이어지면서 11월까지 끊이지 않고 달마다 다른 꽃들이 핍니다. 날씨가 추워지고 화분들이 집안으로 들어오면 그때부터 포인세티아 화분이 붉어지면서 12월에는 ‘크리스마스 꽃’이라는 별명에 어울리게 거실 창문 곁을 빠알간 색으로 물들이게 되지요.
언젠가 남편이 자기는 손님 접대의 은사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었는데 성도들이 수정을 해드렸습니다. “목사님은 손님 초대의 은사가 있으시고요, 사모님이 손님 접대의 은사가 있는 것 같은데요.^^” 사십 년을 넘게 살아오다 보니 저도 손님 접대의 은사가 계발된 것 같습니다. 한 번씩 남편이 저를 놀립니다. “나보고 사람 좋아해서 손님을 초대한다고 하더니 요즈음에는 당신도 나 못지않게 손님 초대하는 일을 즐기는 것 같은데….” 하긴 그 말도 맞는 말입니다.
손님이 오시는 날은 아침부터 집 안팎을 청소하고 정리하고 제 손발이 바빠집니다. 그분들이 차를 주차하고 내리면서부터 맞게 될 마당은 깨끗하게 쓸려 있어야 할 것 같고 꽃이 져버린 꽃대는 따주어야 합니다. 집에 들어오셨을 때 현관에서부터 식탁에 이르기까지 환영하고 대접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들이니까요. 그런데 아직도 저희 집에 오고 싶어 하시는 분들을 다 모시지 못했습니다. 남편이 주보 칼럼이나 설교시간을 통해 열심히 홍보(?)를 해서 많은 분들이 저희 집을 다녀가고 싶어 하십니다. 저희 성도님들은 제가 힘들까 봐 오고 싶어도 잘 못 오시는 분도 계십니다. 제가 집에 없을 때 살짝 다녀가시는 분도 있거든요.
무엇보다 이곳에 사는 것을 남편이 제일 즐기고 좋아합니다. 교회까지 차로 이십 분 정도 걸리는 시골길을 오며 가며 좋아하고, 아침마다 묵상하면서 듣게 되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와 창밖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도 좋아하며,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들녘을 바라보는 것도 좋아하고 아침저녁으로 붉게 물드는 하늘도 좋아하고, 집을 나서면 얼마 안 되어 들어서게 되는 산과 소나무 숲을 걷는 일이며 수시로 익어가는 무화과를 따 먹는 일도 좋아합니다.
정원일도 좋아한다고 늘 말하는데 제가 하루는 물었습니다. “당신 정원일 좋아하는 것 맞나요?^^” 남편이 “그럼! 내가 시간이 없어 그렇지”라며 웃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믿습니다. 워낙 바쁜 사람이라 시간을 많이 내지 못하지만, 내 일이 미루어지고 나 혼자서는 힘든 일들이 있으면 어쩌다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럴 때면 날짜를 잡아 한두 시간 그 일도 즐겁게 도와줍니다.
함께 사는 남편이 즐거워하고 사람들이 오고 싶어 하는 집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래서 내 취미가 '정리정돈’, '풀 뽑기', '풀 태우기', '채소 가꾸기', '꽃 가꾸기', '손님 접대하기'인 것도 참 감사합니다.
글/김창선 사모
울산교회 정근두 담임목사의 아내이며, 두 아들 내외와 손주 넷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