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증을 경계하라
2017.10.20 13:12
2017. 7 기독교연합신문 시론
오정호 목사(새로남교회)
조급증을 경계하라
조급증은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판단을 그르치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목회자가 빠른 성장에 대한 열망이 과하여 목회 조급증에 사로잡히게 되면 주님보다 앞서 행하게 된다.
사업하는 이가 대박주의에 사로잡히게 되면 속도조절에 실패하게 된다. 정치인들이 국민의 마음을 단번에 얻고자 새로운 프로젝트를 벌이면 졸속 사업이 될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목회자가 새로운 임지에 부임하면 먼저 심령의 평강을 도모하고 은혜로우신 주님께서 그동안 그 교회에 베푸신 은혜의 손길을 하나하나 살피며 마음에 담는 것이 급선무이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부임하자마자 과거 은혜의 흔적을 지워 버리고 의도적인 행사를 덧씌우려고 발 빠르게 처신한다.
무엇을 위한 조급증인가? 누구를 위한 발 빠름인가? 우리의 내면의 상태를 점검하지 않을 수 없다. 속마음의 방향과 내용을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 보아야 한다.
그동안 우리의 문화는 과정을 생략한 것을 능력으로 간주하였다. 절차를 생략하여 건너뛰는 능력이야말로 그 사람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이런 문화적 정신적 배경에서 경험한 것이 속전속결, 건너 뛰기식의 경제 구조와 오랜 시간동안의 고뇌와 갈등 그리고 시행착오를 통한 민주주의의 착근을 선택하기보다 절차를 생략하는 관행에 익숙하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헌법’위에 ‘떼법’이 자리 잡고 있는 기형적 모습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닐까? 목회자도 예외 없이 정도를 걷기보다 지름길을 택하는 것이 지혜로운 목회의 표지인양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하였다.
특히 목회자가 영적 조급증에 사로잡히면 다음과 같은 폐해를 남기게 된다.
첫째, 목회 동역자들과 교우들을 ‘동역’의 대상이 아니라 ‘동원’의 대상으로 간주한다.
동원과 동역은 어감이 비슷하게 느껴지더라도 결코 동종의 단어가 아니다. 동역은 목적 지향적이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손에 손잡고 함께 보조를 맞추어 나아가는 것이다. 거기에는 우연이 없다. 하나님의 섭리가 자리한다. 주님사랑으로 말미암은 사명감당과 헌신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동원은 수단 지향적이다. 목적 달성을 위하여 사람을 비인격화 시킨다.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들러리 세운다. 몇 몇 사람을 위하여 희생양을 양산한다.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셔서 사명자로 세우실 때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한 동역의 대상으로 여기셨다.
둘째, 소통보다 우격다짐으로 나아간다. 소통은 마음의 연결이며 상대의 존재와 인격을 최대한 존중함이다.
이에 반하여 우격다짐은 일방적이며 상대를 무력화 시키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동행하는 이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세미한 음성을 듣고 가슴 속에 확신이 각인되지 못하기에, 애초부터 상대를 존중함이나 설득함에 무게를 두지 않음이다. 교회안의 많은 프로그램들이 때로는 용두사미로 끝나는 이유는 소통함에 대한 준비 부족이거나, 아예 공동체를 설득하여 한 마음으로 묶어 내는 것을 권위에 대한 손상이라 여겨 불필요한 과정이라 믿기 때문이다.
셋째, 유종의 미를 거둠보다 중도하차 한다. 유종의 미는 완주의 열매이다. 중도하차는 목회현장의 낙과이다.
중도하차현상(DNF Syndrome/ Did Not Finish)이 기승을 부리는 요즘이다. 그 뿌리를 타고 내려가면 마지막에는 조급증이라는 괴물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성령보다 앞서지 말자” “말씀보다 앞서지 말자”는 구호로서만 존재해서는 안된다. 일상에서 매사에 삶의 태도와 방향을 설정하는 삶의 준거 틀로써 사용되어야 한다. 세상은 우리로 하여금 “빠르게 빠르게”를 외쳐 따르게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주님 앞에서 “바르게 바르게”를 고수해야 하리라.
나는 복음의 신실한 일꾼인가? 나는 조급증의 화신인가?
교회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내 속에서 작동하는 조급증의 DNA를 떨쳐버리고, 오직 주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기울이는 은혜를 지속적으로 경험하기를 갈망한다.
처음에 속히 잡은 산업은 마침내 복이 되지 아니하느니라(잠언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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