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사실이면서 진실을 추구하는가
2018.03.02 18:17
기사입력2018.02.23 오전 12:02
내 고향은 충청도가 아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대전에서 목회한 지 어언 23년이 되었다. 대전이 ‘제2의 고향’이 된 셈이다. 새롭게 자리 잡은 터전의 인문학적 배경과 지정학적 사연에 관심을 쏟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어느 해 전북 무주를 들렀다 오는 길에 무주 제1경(景) 나제통문(羅濟通門)을 방문했다. 무주군 설천면과 무풍면 사이 석모산을 뚫어 건축된 암석 터널이다. 이 굴은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의 국경 출입소로 알려져 왔다. 그 아래 흐르는 설천과 높이 50m 정도의 낮고 기다란 석모산 줄기는 이쪽과 저쪽을 확실히 나누는 경계다. 통문 앞 다리 아래 설천에는 작은 소(沼)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터널은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여행문화 전문기자 박종인 선생에 따르면 나제통문은 1914년 일제가 무주 광산 개발을 위해 뚫은 인공터널이다. 터널로 진입하는 30번 국도는 1925년 닦은 신작로였다. 나제통문이라는 이름은 한참 뒤인 1963년 그 지역을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일 뿐이다. 필자가 처음 나제통문을 방문했을 때 역사를 좋아하는 심성은 필자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기구도 변변치 않았을 삼국시대에 어떻게 이 딱딱한 돌산을 뚫어 통문을 만들었을까’ ‘신라와 백제의 눈물겨운 사연은 없었을까’ ‘신라의 총각과 백제의 아가씨가 서로 만나 국경을 초월한 사랑을 꽃피우지는 않았을까’ ‘그 시대 여기를 오갔던 선조들은 후세에 여기를 오가는 나 같은 사람을 상상해 보기나 했을까’….
그런데 이 모든 생각은 사실(Fact)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후에 급조된 사실 위에 상상의 나래를 펼쳐냈던 것뿐이었다. 삼국시대부터 존재했던 굴인 양 왜곡된 정보에 의해 나도 모르는 사이 꾸며진 가공의 역사에 휘둘린 것이다.
심지어 나제통문은 1996년 고등학교 국사 국정교과서 삼국시대 대목에 버젓이 사진으로 실리기까지 했다. 이렇게 쉽게 역사가 왜곡돼 다음세대의 정신을 세우는 교과서에까지 실린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지. 장황하게 나제통문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은 사람이 사실을 인지하는 것도 쉽지 않고 진실까지 꿰뚫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기록자로 알려진 누가는 이방인 출신 의사였다. 그는 예리한 감각으로 복음은 사실이며 진실임을 기록으로 남겼다. 또 독자들의 눈높이를 의식해 복음의 역사성을 담담하게 풀어내면서 사람들을 견고하게 세우는 치밀성을 보여줬다.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눅 1:3∼4)”
복음의 품격은 사실성과 진실성에 있다. 사람의 계획과 의도로 만들어낸 작품이 아니다.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말씀을 대하는 태도를 점검할 시점이 됐다. 우리가 고백하는 대로 하나님 말씀인 성경은 사실인 동시에 진실이다. 여러 내용이 그렇지만 주님과 관계되는 모든 부분이 진리 중의 진리, 생명 중의 생명이다.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 삶과 고난의 절정인 십자가 사건, 이어 전개되는 부활 생명 사건은 역사 이래 가장 확실한 사실이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보여주신 진실이다. 우리의 신앙은 역사적 사실과 진리를 바탕으로 한다.
우리 시대의 아픔은 정보가 넘쳐 난다는 사실에 있다기보다 거짓 정보가 난무한다는 사실에 있다. 그리고 그것을 맹종하는 이들이 적잖은 게 현실이다. 대표적으로 한국교회를 음해하고 성도들의 영혼을 유린하는 이단 사이비는 사실도 아니요, 진실도 아니다. 교주의 비틀린 주장과 그들이 만들어낸 경전에 그 권위를 담보하고 있을 뿐이다. 거짓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거짓일 뿐이다. 그리고 그 거짓에 목을 매는 사람들의 종말이 어떠할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신앙의 척도는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주님과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과연 하나님의 자녀로서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바람직하며 열매 맺는 태도인지 치열하게 점검할 때다.
오정호 (새로남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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