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싶다
2004.12.06 00:05
사람은 희망을 먹고사는 존재이다. 밥을 먹지 못하면 육신에 영양실조가 온다.
희망을 먹지 않으면 정신과 영혼에 영양실조가 온다. 우리시대에 총과 칼을 맞고 쓰러진 사람보다 절망에 발목잡혀 쓰러진 사람이 훨씬 많다.
부모의 책임은 자녀들에게 밥과 옷을 공급해 주는 책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녀들에게 희망을 줘야한다. 기성세대가 신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유산이 어디 한 두가지이겠는가? 그러나 모든 것 다 주고도 희망을 물려주지 않는다면 과연 무엇을 주었다고 할 것인가? 국가건 정부건 국민들을 존중함은 국민들의 마음에 희망을 선물하는 것이다. 희망은 미래형이다. 희망을 준다는 것은 미래를 주는 일이다. 대입수능고사 조직적 부정사건의 해악은 정정당당하게 시험에 임했던 수많은 학생들에게서 희망을 박탈한데 있다. 희망의 등불이 꺼지면, 다른 어떤 노력도 무위에 그칠 뿐이다.
최근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서는 교회가 대로변에 심은 키가 제법 되는 느티나무 열다섯 그루에 화려한 옷을 입혔다.
온 몸에 붙어있던 잎새를 다 떨군 채 겨울의 침묵 속으로 들어가려던 계절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았다. 바로 은하수라고 지칭되는 반짝이 귀염둥이 전구 수천 수만 개를 줄기마다 가지마다 달아매었던 것이다. 실상 느티나무에게는 결례를 한 셈이다. 주인의 의사를 전혀 물어보지 않고 일을 치루어 냈으니 말이다.
예기치 않은 찬란한 패션으로 장식한 일렬횡대의 느티나무 점등식은 거리의 시민들과 모든 교우들의 입에서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였다. 시민들이 눈으로 보는 불의 제전 때문에 감탄사를 내었고, 각자의 마음에 따뜻하게 와 닿는 의미 때문에 감동의 언어와 표정을 아끼지 않았다. 빛이 그리운 때문이었다. 모두 희망에 고픈 때문이었다.
희망의 거리 점등행사에는
적지 않은 재정과 노력이 들었지만, 아깝다는 생각을 하는 한사람도 만나지 못하였다. 사람에게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게 마련이다. 사랑, 신뢰, 평화, 감동, 자유 이 같은 인생의 필수 영양소는 경제적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 차원에 자리하고 있다. 희망 역시 인간을 지탱하는 큰 버팀목중의 하나이다. 희망의 거리로 이름지어진 거리에 발을 딛는 시민들마다 마음속의 절망이 묶여지고, 소망의 합창이 울려퍼지기를 소원해 본다. 지금 시민들은 가계와 정신에 깊은 주름을 만들어내는 바닥경기와 행정수도 이전문제, 사교육비 감당에 허리가 휠 뿐 아니라, 거기에다가 현정부 집권후에 눈만 뜨면 들려오는 이념공방전, 어느 한 구석에서도 희망을 찾아내기가 힘든 때를 버텨가고 있다. 스스로의 힘으로 다잡아 가기에는 너무 기력이 소진되어 있다.
어려운때에, 힘들어하는 사람끼리 서로 격려하고, 일으켜 세워주기 위해서는 누구 한사람의 마음에 희망의 불이 켜져야 하지 않겠는가?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Victor Frankle)은 독일 나치 죽음의 수용소에서 상상을 뛰어 넘는 잔인한 고문과 형벌 속에서도 그를 생존하게 만든 것은 희망이었음을 직설법으로 표현했다. 그는 나치의 끔찍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마음속에 미래에 대한 꿈을 키워갔다.
“나치의 무자비한 고문은 언젠가는 끝이 난다. 그 이후 나는 이 수용소에서 나가 내가 결코 놓치지 않았던 삶의 희망을 수많은 세계의 사람들에게 적나라하게 알려 주겠다. 이 끔찍한 고문과 절망적인 환경을 넘어서서 저 건너편에 있는 희망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나는 굽히지 않고 고통을 견뎌 승리하겠다”
과연 이런 다짐 끝에 프랭클은 살아났다. 그의 생각대로 전후에 세계를 누비며 곳곳에 희망을 심어주는 스승의 모습으로 우뚝 섰다.
이제 역사의 저편으로 한 해가 넘어가고 있다. 한해의 끝자락은 또 다른 한해의 출발과 손잡고 있다. 마지막 남은 월력을 바라보노라면 누구인들 만감이 교차하지 않을까? 답답하고 아쉬운 일이 뇌리에 가득할 수도 있다. 뜨거운 눈물로 밤을 지새워도 막힌 가슴이 뚫릴 것 같지 않은 형편에 놓여 있을 수도 있다.
사방을 살펴도 속시원한 해답을 얻지 못할 때 위를 바라보는 마음의 여유를 회복하고 싶다. 마치 동방의 박사들이 메시야 탄생의 별을 보고 희망의 메시지를 읽어내었듯 말이다.
불꺼진 방에 촛불 하나 켜면 사위를 둘러싼 어두움이 일순간에 물러나는 것처럼
어두움이 가득한 인간세계에 영원한 희망으로 임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성탄의 밝은 빛이 온누리에 가득하기를 소원해본다.
이 시간도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각 사람의 지친 영혼과 거친 삶 속에 영원히 지울 수 없는 희망을 아로새겨 주시기를 원하신다. 역경중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비타민H를 주시기를 원하신다. 비타민H는 이미 짐작하겠지만 Vitamin Hope이다. 어둠을 딛고 일어서서 함께 희망의 노래를 부르지 않겠는가? 연말과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은 희망으로 무장하는 것이리라.
[대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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