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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연합신문시론


유종의 미(Finishing well)를 거두기 위해서는 좋은 출발(Starting Well)이 전제되어야 한다.
좋은 출발이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은 화려한 출발을 마음에 둔다. 사람들이 환호하기 때문이다.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끄는데 목을 매는 우리 시대의 정신은 감성을 자극(High Touch)하는 문화와 호흡이 잘 맞는다. 그러나 화려한 출발,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출발은 생태적으로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다. 겉꾸밈에 에너지를 쏟다 보니 속알참을 단장하는데 쏟을 에너지가 쉽게 바닥을 드러낸다는 사실이다. 특히 영적지도자가 사람의 관심을 사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히면 예외 없이 영적 외화내빈(外華內貧)을 맞이하게 된다. 슬픈 종말은 그에 합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왜 주님께서는 사람의 사고방식과는 다르게 번화한 예루살렘에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시고 사람들의 관심 밖의 영역인 베들레헴 마구간을 선택하셨는가를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성경과 교회사에서 발견하는 여러 인물들의 좋은 출발의 비결은 ‘관계의 중요성’을 터득한 사람들이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과의 친밀함(Intimacy with God)은 좋은 출발의 필요불가결한 요소였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면 모든 의미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주님과의 관계가 어색해지면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삶이 파행적으로 운행된다. 심히 가슴 아픈 일이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은 죄의 근성에 쉽게 노출되는 우리의 모습을 정제하고 새롭게 하는 능력을 부여한다. 이런 의미에서 좋은 출발은 눈에 보이는 공간과 시간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인격의 깊은 곳에서 이루어진다. 겉 사람이 아니라 속사람의 내면에서 이루어진다. 자기의 의지를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승화시키고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려는 마음은 속사람의 강건함이 기초가 된다.
한국교회의 평신도를 깨워 소명 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도록 하고 사역의 동역자로 세운 은보(恩步) 옥한흠 목사는 한국교회의 영적상황을 삼허(三虛) 곧 허세(虛勢) 허상(虛像) 허수(虛數)로 지적하였다. 아픈 마음으로 지적한 그의 이러한 예언자적 통찰은 오늘 그대로 우리들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삼실(三實) 곧 실세(實勢) 실상(實像) 세우는 일에 왕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주님의 임재 안에 자신을 세워가는 치열한 연단이 있을 뿐이다. 존 뉴튼(John Newton)은 그가 삶으로 체험한 놀라운 주님의 은혜(Amazing Grace)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그의 내면을 강건하게 세우는 일상의 원칙을 설정하여 시행함으로 자신은 물론 오고 오는 세대에 복음의 영향을 끼쳤다. 진실로 그는 그의 아픔의 세월을 십자가 사랑으로 녹여내어 다른 이들을 위한 은혜의 대로를 열어놓은 멘토가 되었다. 그는 좋은 출발을 하기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그의 삶을 통하여 검증된 축복의 원리를 제시하였다.
 
평범한 출발 같지만 비범한 열매를 맺게 하는 그의 원리를 들여다보자.
1. 하루를 하나님과 시작하고 하나님과 마친다.
2. 합당한 주제를 설정하여 치열함으로 성경을 숙독한다.
3. 주일을 온전히 주님과 동행한다.
4. 지금의 나를 더 성숙하게 이끌어주는 좋은 친구들만 사귄다.
5.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2016년 새해를 허락하신 주님의 뜻을 사무치게 가슴에 담자.
기회는 은총이다. 기회는 축복이다. 출발의 첫 단추를 주님과 함께 채워가기를 소원한다.
주님과 함께 시간의 문을 열어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