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이야기
새성전 건축은 우리의 뜻과 계획이 아닌 온전한 하나님의 계획으로 이뤄진 우리의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새사명, 새땅, 새생명을 꿈꾸게 한 만년동 성전. 앞으로도 하나님의 백성을 잘 세우기 위해 꼭 필요한 공간으로 귀하게 쓰임받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계획, 새로운 건축의 시작
"왜 새로운 건물이 필요했나?"고 물으면
교회를 흔드는 시련의 비바람 속에서도 이미 움트기 시작한 영적인 변화의 새싹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빛을 쬐며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침체된 예배가 살아나고, 새신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교회의 위치는 대전 도심에서 벗어난 뒷골목에 있었습니다. 약도가 없이는 찾기가 힘든 곳이었습니다. 4~5백 명 남짓 수용하는 교회의 대예배당은 지하에 있어 날씨가 흐리거나 장시간 집회가 이어지면 금세 공기가 답답해졌습니다. 하지만 소문을 듣고, 전도를 받아 찾아노느 성도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좋은 교회에 갈증을 느껴 찾아왔다는 성도들도 늘어났습니다. 부임 전에 교회가 가지고 있던 1억여 원의 빚도 부임 1년 만에 다 갚았고 성도들이 점점 늘어나서 주차장 부지를 새로 구입해야만 했습니다. 교회가 성도들을 수용할 수 없을 만큼 하나님께서 차고 넘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런 외적인 변화는 교회의 내적인 변화, 즉 영적 성장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습니다. 이제까지 목회자에게 집중된 사람 중심의 신앙이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젖만 먹던 신앙이 성장해, 사람을 따라 좌지우지 되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우선순위를 두고 자기 일을 돌아볼 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 화합하는 공동체적인 안목을 가지는 성숙한 신앙의 모습으로 점차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이 "왜 새로운 건물이 필요했나?"고 물으면 하나님께서 매주 새로운 사람을 보내주셨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대답을 하게 됩니다. 아기가 태어날 때 배냇옷 하나 준비하지 않는 어머니가 어디있겠습니까? 교인들의 자연 증가를 보니 이제 교회 건물이 포화상태가 될 것이라는 당연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당시 교회 재정은 경상비를 쓰고 남을 정도였습니다. 그 때 우리교회가 그 돈으로 좋은 일하면 새로남교회가 잘 퍼주는 교회, 돈 잘 쓰는 교회로 소문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보다 우리교회가 영혼을 얻는 센터가 돼야겠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새롭게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한 영혼 한 영혼을 통해 드러나야 한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이 꿈이 교회 건축의 청사진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마음에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하나님
제가 처음 교회에 부임하기 위하여 대전 땅을 밟았을 때의 일입니다. 처음으로 대전 지역을 둘러보며 지금의 행정타운인 둔산 지역을 돌고 있었습니다. 그때 장로님께서 빈 공터를 보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바로 여기가 정부 청사가 들어오는 땅(부지)입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저는 마음속으로 '대한민국의 정부를 위해 일하는 청사가 들어온다면 The Kingdom of GOD,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힘 있게 역동적으로 일하는 대표 교회가 어디에 있는가?'라고 스스로 질문을 했습니다. 즉, 정부를 대표하고 국민들을 이끄는 청사가 있다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이고 이것을 지역사회에 펼쳐낼 수 있는 교회는 어디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마음의 이런 소원을 기뻐하시고 정부 청사 옆에 있는 지금의 은혜롭고 접근성이 용이하며 보기에 아름다운 교회를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종들이 마음에 거룩한 소원을 두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또한 이 소원을 이루기를 기뻐하십니다. 목회자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돈이 있으냐 없느냐, 배웠느냐 못 배웠느냐가 아니라 그에게 주님을 향한 불타는 꿈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정말 하나님을 위한 미래지향적인 꿈이 있느냐, 이 시대의 비전의 사람으로 쓰임 받고 있으며 또한 그렇게 쓰임받기를 열망하고 있으냐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한국교회에 존경하는 많은 목사님들이 있지만 또 한편으로 주님을 위한 꿈이나 양떼들을 위한 영적 성숙과 역동성을 위한 꿈이 없고 사역에 대한 기대도 없는 목회자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꿈이 있어도 이것을 구체화시키지 못하는 것을 볼 때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저도 꿈이 없이 살았다면 하나님께 제대로 쓰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꿈을 간직하고 그것을 발전시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저를 사용하신 것이라 믿으며 감격하는 마음뿐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비전과 자신의 욕심을 실현하려는 야망은 그 출발부터 다르다는 것을 분별해야함은 당연지사입니다.
저의 또 하나의 생각은 '지역거점교회'를 만들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안디옥교회, 예루살렘교회, 빌립보교회, 에베소교회처럼 한국의 지역거점교회를 세우겠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박사학위를 포기하면서까지 여기에 왔는데, 주님이 저를 쓰기기 원한다면 영향력 있는 교회를 이루게 해주세요. 지역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동료 교회에 활력과 역동성을 불어 넣는 지역거점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제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세요.'
이것이 제가 늘 주님 앞에 엎으려 아뢰는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주님께서 이런 저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네 잎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 81:10)',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시 2:8)'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저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 응답해 주셨습니다.
제가 구한 것은 결코 교회 건물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영혼을 구했습니다. 이 교회 건물 안에서 함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영혼들을 달라고 구했습니다. 여기서 꿈을 품은 성도들이 열방을 변화시키는 그 모습을 달라고 구했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수많은 각 민족과 백성과 열방들이 모여 여호와의 영광을 찬양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에서 보여주는 승리하는 천상의 모습이라면 우리는 왜 이 모습을 지상에서 이룰 수 없는가?' 우리가 앞당겨서 이 땅에서 이 모습을 이룬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 것인지 생각했습니다.
이런 저의 마음은 우리교회 비전선언문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여, 천국의 확신(영생의 선물)을 가지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하여, 하나님 나라의 정병(예수 그리스도의 군사 / 복음의 증인)으로 세운다."
너무도 분명한 영혼 구원에 대한 간절한 희망과 확신을 교회의 중심모토로 담았습니다. 고린도에서 전도하다가 어려움을 당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도 바울에게 천사가 나타나 "이 성중에 나의 백성이 많도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지금은 대전 시민이 150만이지만 내가 처음 부임했을 당시에는 123만 여명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대전 땅의 어른들과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일으키셔서 주의 이름을 높임을 받기를 꿈꾸었습니다. 이것은 목회자라면 당연히 꿈꿔야 할 영혼 구원의 꿈인 것입니다. 목회자가 아니더라도 믿는 자라면 당연히 가져야할 미래지향적인 비전과 포부라고 생각합니다.
교회 건축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잘 세우려고 필요한 공간을 만들게 된 것이 오늘날 교회 건축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적금 타던 날
우리 부부는 교회에 부임하자마자 적금을 하나 들었습니다. 그 때는 아직 교회 건축에 대한 아무런 계획이 없었던 때입니다. 다만 미리 준비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뜻을 세우시고 하나님의 일을 이루신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나를 대전에서 목회하게 하신 것은 지금의 현장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꿈과 비전을 이루기를 원하신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부임한 후 처음 마음은 건축보다 성도들끼리 화합하고 분위기 좋고 따뜻한 교회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예배당 건축은 사실 이 모든 것의 보너스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적금을 타던 달이 건축을 위해 땅을 계약하는 달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복된 인도하심이었습니다. 이것은 사람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후 마음에 감동된 성도들의 헌신이 모여 하나씩 순서를 밟아서 토지 공사 소유로 있던 현재 만년동의 땅을 매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적금을 붓고 돈을 드렸어도 제 마음에는 정말 이 건축의 동기가 저의 욕심으로부터인지, 하나님의 역사하심인지를 분별하기 위한 고민을 해야 했습니니다. 적어도 저의 동기에 불순물이 끼지 않고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확신을 갖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교회 건축을 향한 소원, 이것이 자아의 소리나 세상의 소리가 아닌가, 혹시 장로님이나 몇몇 성도의 소리는 아닌가, 아니면 진정한 성령님께서 주의 종에게 주시는 음성인지를 확실히 알아야만 했습니다.
저는 목회자가 주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것을 지하수에 비유합니다. 지하수를 깊이 파면 샘물이 터집니다. 이 샘물이 터지는 지점이 지하 100m라면 95m까지만 파서도 안되고 99m까지만 파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지하 100m, 내 의식의 가장 깊은 심층부까지 내려가서, '이 건축이 대토목공사를 일으키는 목회자의 영웅심인가, 내 옆의 교회가 지으니까 나도 짓겠다는 마음인가' 분별해야 합니다. 이런 인간적인 생각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음성이라는 확신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었지요.
이 과정 동안 저는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얻은 결론은 이 일은 해야 하는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아무리 돈과 에너지가 많이 들어도 하나님께서 영혼을 구원하기를 원하시고 구원받은 영혼을 양육하는 일에 우리 교회가 쓰임을 받을 수 있다면 이것은 만사를 제쳐놓고라도 반드시 이뤄야 할 일이라는 확신으로 하나님께서 저를 인도하셨습니다. 이러한 내적인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과정은 그 후 건축과정에 닥친 쉽지 않은 순간들을 강한 확신으로 이겨나가는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졌던 확신은 성도들에게도 넉넉히 이길 수 있다는 마음의 여유와 배포를 갖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는 얘기를 후에 전해 들었습니다.
성도들과 이 확신이 공유되기 시작하면서 초기의 제자훈련을 마친 집사님들을 중심으로 이 일들을 잘 준비해보자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이 제안은 1998년에 새로남건축위원회의 전신인 교회발전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고 하신 말씀처럼 첫 출발을 당신의 뜻대로 시작하신 주님께서 과정도 역사하시고 결말까지 인도하시리라는 강철같고 불같은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런 확신 속에서 저는 하나님께 또 하나의 표징을 구했습니다.
"주님, 이것이 정말 주님의 뜻이라면 성도들이 모두 기뻐하게 해주세요. 이 일들이 모두 순적하게 이루어지게 해주세요. 만일 성도들이 반대하면 교회 건축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교회 건물을 지으러 온 목사가 아니라, 양떼들의 영혼을 세우는 목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양떼들이 건강한 신앙의 집을 짓도록 해야지 눈에 보이는 건물을 세우는 것은 최선이 아닌 차선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00%는 아닐지라도 99%에 달하는 성도들이 압도적으로 교회건축에 찬성했습니다. 헌금을 내느냐 안내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온 성도가 마음으로 찬성해서 하나가 되어야 온전한 목회를 이룰 수 있다고 여긴 생각 그대로 였습니다. 심지어 전임목사님이 개척한 교회에 따라간 성도들까지도 교회는 지어야 한다고 하면서 이 일은 하나님께서 아주 기뻐하시는 일이라며 지지해 주었습니다. 이 과정을 보며 교회 건축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며 사람들에게도 큰 기쁨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무는 열매를 보면 안다고 했던 말씀처럼 모든 건축 과정을 주님이 인도하셨고, 결과적으로 오늘까지 교회 건물로 시험에 들거나 시비를 거는 사람이 없음을 보니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이었음에 감사와 찬양을 돌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에는 반드시 좋은 열매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이기적인 욕심이나 불순한 동기로 시작한 일에는 반드시 사고가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주님의 음성을 듣는 과정입니다. 어떤 교회의 성도나 목회자들이 다른 곳에 에너지를 쏟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은 주의 음성을 듣는 일에 주력해야 합니다. 주의 음성을 듣는 일은 아무리 목회가 바쁘다할지라도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일입니다.
새로남 비전 2000, 새천년 선포식
하나님의 음성과 확신으로 시작된 일은 아무 무리 없이 물 흐르듯 순적하게 이루어져 나갔습니다. 현재 교회가 건축된 둔산동 토지의 매입을 당회에서 결정하고, 1998년 구성된 교회뵐전위원회는 2000년대를 내다보면서 교회 발전 5개년 계획을 세우고 교회 건축에 관한 여러가지 방법을 함께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만년동 부지는 준주거지역이라 교회 건축이 가능하고 대전시 주요 간선도로의 교차점에 위치해서 교통이 편리했습니다. 또한 가까운 문예공원과 갑천 둔치 등은 주일학교의 야외 교육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어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저와 교회발전위원회 장로님, 집사님들은 건축될 교회의 규모를 가늠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필요한 재정과 법적인 사항들을 실무적으로 검토하면서 꿈이 차츰 현실 속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토지매입을 위한 첫 건축헌금 작정이 교회에 선포됐습니다. 건축에 대한 성도들의 적극적인 마음은 헌금의 과정을 통해서 잘 드러났습니다. 세 번의 건축 토지 매입 작정과 헌금이 진행되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하나가 되었고, 이것이 축복의 과정이라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드디어 가슴 뛰는 준비과정을 거쳐 2000년, 엑스포 과학공원으로 향하는 대로변에 노란 바탕의 '새로남교회 신축부지'라는 푯말을 우뚝 세울 수 있었습니다.
2000년이 시작되기 전에 우리 교회는 '새천년 선포식'을 가졌습니다. 새천년이 시작되는 12월 31일에 배재대학 21세기 관에서 선포식을 열었고 또한 평송 청소년수련원에서 '새로남 비전 2000'이라는 이름으로, 앞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이루실 일을 꿈꾸면서 전 교우가 마음을 모았습니다.
주제는 '새 사명(New Commission), 새 땅(New Place), 새 생명(New Life)'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8-20절에 기록된 하나님이 위임하신 지상명령에 순종하며 모든 민족과 이웃을 제자 삼아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룩한 '새 사명'에 헌신하는 교회, 우리 각 사람이 성령의 거룩한 처소로서 하나님의 작은 목자가 되어 빛이 없는 세상을 하나님의 거룩한 '새 땅'으로 변화시키는 교회, 에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보여주신 오직 한 가지 사역인 모든 영혼을 사랑하여 '새 생명'을 얻게 하는 거룩한 사역에 집중하는 몸 된 교회가 되자는 것이었습니다.
새천년맞이 예배에서 화상으로 처음 공개된 새로운 교회의 모습은 온 성도들의 가슴을 벅차게 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건축 비전을 온 성도가 즐거워하며 모두 함께 성전 건축의 일꾼으로 쓰임받기를 원했습니다. 성전을 건축하는 동안 서로가 힘을 주는 성도가 되자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새성전 건축
예배당 건축의 십계명
- 건축에 관계하는 그 누구로부터도 종이컵 커피 한 잔이라도 대접 받지 않는다.
- 성도는 건축에 관한 조언과 재능 기부는 할지언정 재정과 관계되는 어떤 일도 맡지 않는다.
- 건축회사와 거래처와 개인적인 접촉은 일절 금하고, 창구는 하나로 통일한다.
- 우리 교회 건축이지만 한국 교회의 대표성을가진 건축이라 생각하는 마음으로 임한다.
- 예배당 건축은 단순하게 벽돌로만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눈물의 기도로 건축된다.
- 건축위원들은 그 섬김이 장로의 직분을 받는 징검다리가 아니라, 주님사랑과 교회사랑으로 깔끔하게 순수함을 유지한다.
- 각 위원회(비전사역위원회, 재정사역위원회, 건축사역위원회)는 전문성을 가지고 봉사하되 상호 존중의 태도를 바탕에 둔다.
- 우리 교회는 건물을 지은 교회로 소문나기보다,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는 교회로 소문나기를 사모한다.
- 건축하는 전 과정이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하는 현장이 되도록 한다.
- 건축하는 중에 선교헌금을 비롯한 외부후원 재정을 줄이거나 중단하지 않는다.
새성전 입당 감사예배 (2004.06.14)
새로남교회 건축 연대표
새성전 헌당 감사예배 (2008.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