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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한흠 목사님 소천

2010.09.02 10:28

권혁민목사 조회 수:2536





[쿠키 문화] 한국교회의 제자화를 이끈 거인이 쓰러졌다. 옥한흠 사랑의교회 원로목사가 2일 오전 8시 43분 급성폐렴으로 서울대병원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향년 72세. 1990년대 한국교회에 제자훈련이란 말을 정착시킨 그는 예수에 미친 광인론을 주장하며 탁월한 설교가이자, 이론가, 개혁자로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목회자로서 명성을 높였다.

그가 평생 부르짖었던 제자화는 쉽게 말해 예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치는 수준을 넘어 말씀 그대로 지키게 하는 훈련이었다. 즉 성도의 인격과 삶이 변화되어 교회와 세상에 나가서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옥 목사는 경남 거제 출생으로 성균관대 영문과와 총신대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미국 칼빈신학교에서 신학 석사학위를, 웨스터민스터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교단 개혁을 위한 교회갱신을위한목회자협의회(교갱협)와 한국교회 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한목협)의 산파역할을 했던 그는 85회의 제자훈련 지도자 세미나로 1만8380명의 목회자들에게 제자훈련의 비전을 심어줬으며, 99쇄나 찍은 저서 '평신도를 깨운다'로 수많은 한국교회 성도들을 사역의 동참자로 깨웠다.

증조부부터 예수를 받아들인 독실한 가정에서 자라났던 옥 목사는 평신도로 교회를 섬기고자 했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에 따라 신학을 시작했으며, 네비게이토와 한국대학생선교회의 선교자료와 방법을 연구해 1명에 불과하던 대학부를 350명으로 부흥시킨 일이 있다. 기존 교회가 강조하는 교리대신 복음을, 지도자 중심에서 구성원 중심으로, 대그룹에서 소그룹으로, 행사 위주에서 양육 위주로, 일방 통행식 전달방식에서 쌍방통행식 방법으로 훈련시켰다. 제자훈련에 미친 그는 유학을 떠나기 전날까지 제자훈련에 미쳐 다음날 가족들과 간단한 인사만 하고 떠날 정도였다.

38 세에 시작한 미국 유학에서 그는 제자훈련의 신학적 토대를 탄탄하게 구축했다. 미국 네비게이토 본부에서 머물며 훈련 자료를 수집하고 제자훈련을 현장에 접목시켜 성공한 교회들을 찾아다녔다. 박사학위 논문도 제자훈련과 관련된 것이었다.

옥 목사는 1978년 미국에서 돌아와 은평교회의 도움으로 서울 강남에서 교회를 개척했다. 그는 대부분의 교회가 채택한 부흥회나 심방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당장에 아무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제자훈련의 방법을 택했다. "예수의 제자를 만든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살려고 하는 크리스천을 만드는 것이다. 단순히 천당에 가기 위해 교회에 나오는 것과 예수님을 닮겠다는 확실한 목표를 갖고 신앙생활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82년 출석성도가 250명으로 늘어났고 85년 1200명의 성도에 이르자 현재의 서울 서초동 교회를 지었다.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피해 지하에 예배실을 만들고 지상 마당을 넓게 만듦으로 한국교회의 새로운 건축모델을 제시하기도 했다.

사랑의교회가 표방한 제자훈련 시스템의 핵심은 다락방이라 불리는 일반 교회의 구역조직에 있고 그 안에서 핵심은 순장에 있다. 교회에는 3000여개의 다락방이 있는데 다락방을 이끄는 순장은 제자훈련으로 배출된 '작은 목사들'이다. 순장은 새가족모임을 수료한 뒤 4년에 걸친 평신도 성경대학과 신앙특강시리즈, 가정생활 시리즈를 이수한 뒤 2년 과정의 제자·사역훈련을 받은 특공대다. 사랑의교회엔 3000명의 순장이 있는 데 이것이 사랑의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저력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12명을 데리고 3년간 훈련시킨 모델을 기본으로 한다. 즉 사람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잠자고 있던 평신도를 훈련과 교육으로 철저히 무장시켜 교회의 주인이 되도록 하는 게 바로 제자훈련인 것이다. 그는 제자훈련 지도자 세미나에서 늘 이렇게 외쳤다. "미치세요. 이 훈련을 주도하는 사람, 즉 목회자가 안 미치면 절대로 제자훈련에 성공 못합니다. 미치지 않았으면 제자훈련은 시작도 하지 마세요."

그는 한국교회가 당면한 위기상황 앞에서 선지자 예레미야의 심정으로 바른 목회철학의 정립, 소명자로서의 교회, 교회의 사도성, 제자도를 외쳐왔다. 특히 예장 합동 교단을 향해 "모든 지교회 및 치리회의 최고회(最高會)인 총회가 권위를 회복해야 한다"며 서슴없는 비판을 가했다. 이런 배경에서 1996년 교갱협과 1998년 한목협이 창립된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순탄한 길을 걸은 것만은 아니다. 군대 복무시절부터 폐결핵에 걸려 5년간 투병생활을 했으며, 1989년 병으로 쓰러져 1년간 목회 활동을 쉬기도 했다. 2003년 은퇴하고 이듬해 폐암수술을 했지만 재발해 최근까지 중환자실 신세를 져야만 했다.

거인은 영원한 천국을 향해 떠났지만 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남는다. "누가 한국 사람의 4분의 1이 기독교인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가!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교인도 자랑할 만한 그리스도인인가! 왜 이렇게 무력한 군중이 되고 말았는가! 오늘의 대한민국 교회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지금까지 사장되어 개발되지 못했던 평신도들을 작은 목사로 만드는 것이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백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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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조채희 기자 = "저의 목회철학을 한마디로 말하면 평신도를 깨워서 주님의 제자로 세우는 것입니다. '제자훈련' 목회철학이지요. 제자훈련 목회철학은 첫째 평신도를 훈련시켜 그 인격을 예수님을 닮도록 하는 것이고, 둘째 평신도를 훈련시켜 예수님의 사역을 계승하는 소명자로 만드는 것입니다."(옥한흠 목사 공식홈페이지 중에서)

한국 복음주의 교회의 어른으로 존경받은 고(故) 옥한흠 목사가 가장 강조한 것이 제자훈련이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작은 그리스도'라는 별명을 들었던 것처럼 평신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야하며, 따라서 제자훈련은 무엇보다도 사람을 바뀌어놓는 작업이어야한다"는 것이었다.

옥 목사의 제자훈련 프로그램은 "교회의 주체는 평신도"라는 신념 아래 나온 것으로, 옥 목사는 종교개혁의 중심사상인 만인 제사장의 개념과 상통한다고 밝힌 바 있다.

옥 목사가 1978년 사랑의 교회를 개척한 후 본격적으로 펼친 제자훈련 프로그램에 대해 당시 부흥회나 전도집회에 집중하던 교계에서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제자훈련을 받은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화제가 되면서 교파를 초월한 많은 목회자들이 사랑의교회에서 제자훈련을 배웠고, 옥 목사가 이끌던 국제제자훈련원의 제자훈련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그 결과 사랑의 교회는 목사들에게만 의존하지 않고 수천명의 평신도가 함께 이끄는 새로운 교회모델이 됐다.

옥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교단의 어른이면서도 한번도 교단 총회장을 맡지 않았다. 아울러 대외적인 직함을 맡은 활동도 적었던 편이다.

이에 대해 옥 목사는 "목회자는 성도를 향해 어미의 마음을 가진 자이다. 교회가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고 교회 사이즈를 가지고 떠벌리며 교회 밖으로 바쁘게 돌아다니는 목회자는 언젠가 자신도 모르게 양떼를 버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가 1996년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 1998년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설립을 주도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그는 "한국교회가 건강함을 되찾고 세상과 소통하고 회개해야한다"고 역설해왔다.

옥 목사가 65세 때인 2003년, 정년을 5년이나 앞두고 "교회와 목사가 함께 늙으면 안된다"며 후임 오정현 목사에게 담임목사직을 물려준 것도 한국교회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일부 교회에서 교회를 개척한 목사가 아들에게 담임목사직을 물려줘 사회적으로까지 논란을 낳은 것과는 달리 옥 목사는 남가주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를 전격적으로 초빙해 담임목사직을 맡겼다.

원로목사들은 보통 한달에 한 번은 설교를 하지만 옥 목사는 국제제자훈련원 원장직만 계속 수행하면서 1년에 2-3차례 설교를 했을 뿐 철저히 2선으로 물러났다.

옥 목사 시절 지성적이고 차분했던 사랑의교회가 오정현 목사 체제 이후 역동적이고 젊은 교회로 탈바꿈했다는 평가 속에서도 여전히 옥 목사를 그리워하는 교인들이 많았지만, 옥 목사는 자신이 아끼던 목사들이나 장로, 권사들, 평신도들과 개인적인 통화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옥 목사의 이런 모습은 한국교회 개척자들이 자식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세습관행에 자연스럽게 제동을 거는 효과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사랑의교회가 예배당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서초동 법원청사 인근에 2천여억원을 들인 대형 예배당을 짓기로 지난해 결정하면서 이른바 '메가처치' 논쟁의 중심에 서는 것을 목격했다.

2009년 사랑의교회가 예배당 신축을 결정하자 교계 일각에서는 초대형 교회가 무차별적으로 교세를 늘리면서 이웃 개척교회나 중소교회 교인들까지 흡수하고 권력화하는 것에 우려하면서 "사랑의 교회, 너마저!"라는 문구를 내세워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옥 목사는 공식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한 적은 없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9월 한 교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은퇴 후 나는 내 목회가 자체적으로 자기모순을 갖고 있지 않았나하는 우려를 했다. 왜냐하면 교회를 너무 키워버렸다는 생각 때문이다. 제 교회론에 부합한 교회는 너무 비대해져 버리면 그 정신을 살리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chaeh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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